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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편덕후 Feb 27. 2021

사람이었네

남편덕후 비긴즈 6


퇴근길에 루시드폴의 노래, <사람이었네>를 들었다.

어느 문 닫은 상점 / 길게 늘어진 카페트 / 갑자기 내게 말을 거네
난 중동의 소녀 / 방안에 갇힌 14살 / 하루 1달러를 버는

난 푸른 빛 커피 / 향을 자세히 맡으니 / 익숙한 땀 흙의 냄새
난 아프리카의 신 / 열매의 주인  / 땅의 주인

문득 어제 산 외투 / 내 가슴팍에 기대 / 눈물 흘리며 하소연하네 /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난 사람이었네 / 공장 속에서 / 이 옷이 되어 팔려 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 어느 날 문득 / 이 옷이 되어 팔려 왔지만

난 사람이었네 / 사람이었네
난 사람이었네 / 사람이었네

자본론을 조금씩 읽으면서 떠오른 가사. 커피 뒤에 숨겨진 사람을, 값싼 스파 브랜드 옷 뒤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들이다. 마르크스는 '본질'과 '현상'을 구분한다. 현상은 고민 없이 하는 나의 소비, 본질은 누군가의 노동력과 시간을 착취하면서 유행을 가속화하는 자본의 특성. 그러고 보면 다들 이렇게까지 야근을 하는 것도 돈 때문이지. 세월호의 무리한 증축, 값싸게 팔린 낡은 배, 기준 이상의 무리한 적재량. 유족을 비하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달거나 조롱을 위한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다 돈, 돈, 돈... 일 년이 넘게 진전이 되지 않는 고구마 같은 정치 현실도 고구마 줄기 끝에는 돈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세상에 아무 위화감 없이 녹아들어 있는 나. 현상만 보고 살던 나에게 본질의 세계가 다가오는데, 너무 거대한 이야기라 오히려 무력해진다.

물건의 가치든 노동의 가치든, 화폐 가치로 바뀌는 순간 본래의 빛을 잃어버린다.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도 '천 원'이라고 값이 붙으면 '천만 원'이라는 가격이 달린 물건보다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 돈의 힘이니. 돈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순간 그 속에 들어 있는 사람과 이야기는 증발한다. 그렇게 사람에게도 '연봉'이나 '몇 평짜리 아파트' 같은 가치가 매겨진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좋은 값이 매겨진 삶을 살기 위해 인생을 바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다르게 만드시고 있는 그대로를 아름답다고 하시는 분이신데. 돈의 힘이 그것을 역행하게 하는 건가. 그것이 바로 스승님이 알려주신 '이 시대의 우상', '보이지 않는 신'일지도 모르겠다. 이 우울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긍정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지가 나의 큰 숙제로 여겨진다.

함께 나눈 스승님과의 카톡 대화는 다행히 이어지고 있다. 가끔 스승님께 질문을 보내는데 놀라운 것은 새벽 두세 시에도 장문의 답장이 온다는 것. 주말에 작은 공부 모임을 하신다는데 퇴근한 이후에 그 준비를 하신다고 한다. 덕분에 두 가지 이득이 있었는데, 하나는 언제든 책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든 개인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한 챕터 겨우 다 읽고, 있는 그대로의 질문과 무력감을 적어 보내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어떤 대답이 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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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우리는 우리가 항상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상 우리 대부분은 기존 체제의 지배 질서가 주입하는 세속적 욕망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살던 우리가 어느 순간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과 만나게 될 때, 이해될 수 없는 낯섦을 만나게 될 때, 익숙하게 보이던 세상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할 때, 든든히 발 딛고 있었던 삶의 터전이 속절없이 흔들리게 될 때, 현상 너머에 있는 본질을 보기 시작할 때... 바로 그때 비로소 "생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삶과 역사의 질곡, 시대의 우상과 권력에 대한 자각입니다. 그래서 아프지요....아마 지금 많이 아프실 거고...앞으로도 많이 아프실 겁니다...그러나 그 애통함 속에서 우리는 시대의 우상과 역사의 질곡을 초극하는 새로운 삶이, 새로운 희망이 이 어두운 역사 속으로 이미 뚫고 들어왔음을 또한 보게 될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가 우리에게 증언해 주고 있는 바이며, 신앙하는 삶의 본질인 것이지요^^
애통하는자 복이 있나니 저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위로해주시는 은총을 신뢰하며 주님이 부여하신 소명의 길을 묵묵히 뚝심 있게 걸어가시길...
모든 인간은 길 위의 존재이며, 신앙은 답이 보이지 않는 인생을 살아갈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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