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덕후 이야기 022

근로자의 날

by 남편덕후


늘 다니는 지하철역을 걷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너무 깨끗했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쓰레기통, 반질반질한 벤치.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데 먼지 하나 없다니. 그 생각의 끝엔 고마운 청소 노동자분들이 계셨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에 등장하는 스텝들처럼, 남들이 활동하지 않는 시간에 몸을 써서 일하시는 분들. 그 덕에 나는 매일 차도녀인척 깨끗한 지하철을 활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늘 정리되어있는 공원과 분리수거 쓰레기통, 평생 닳지 않는 것 같은 공공장소의 형광등...모두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누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집도 마찬가지다.
신나게 음식 준비를 시작하려고 보면 늘 당연한 듯 주방이 깨끗하다. 미루지 않고 설거지를 해주는 고마운 남편 덕이다. 분명 새벽에 좀 추웠는데 아침엔 포근하게 잘 잔 느낌이 든다면, 분명 종수님이 새벽에 먼저 일어나 보일러를 틀어주신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왜 늘 그대로지? 남편이 때에 맞춰 쓰레기를 비워주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잘 나지 않고, 특별히 잘 해도 현상유지일뿐인 일들. 그러나 생활을 위해 꼭 해야 하는 일들. 집안에는 그런 그림자 노동이 가득하다.
결혼 전에는 엄마의 희생으로 포착되지 못했던 일들이, 결혼을 하고 나서야 선명하게 보인다. 이런 노동들은 번거롭고 사소하게 느껴지기 쉽지만, 사실은 우리의 일상의 뿌리 같은 것이어서 어쩌면 사회에 나가 이루는 대단한 일들보다 고귀한 일일지 모른다. 먼지를 털고, 세면대를 닦고, 옷을 정리하는 것과 같은 일은 서로의 삶을 지탱해주기 위한 노력이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서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니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얼마나 고마운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그 노력들은 얼마나 필요하고 값진 일인지.
근로자의 날을 맞아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모든 노동자분께도 감사하게 된다. 나 하나 잘 돌본다고 해서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도 평범한 하루를 보냈음을 기억해본다. 특별히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산업현장의 노동자분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시는 모든 분께 감사하며, 인기나 수완이 아닌 몸 노동으로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가시고 사회를 유지해주시는 모든 노동자분의 처우 또한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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