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빨간책에 대한 추억이 두 가지 있다. 중학교 때 유행한 손바닥 크기의 하이틴 로맨스 소설책이 그 하나이다. 수업시간, 무색무취의 지루한 교과서 따위에 깔리느라 빛을 못 본 비운의 그 책 말이다. 야해서 ‘빨간책’으로 불렸고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였다. 로맨스라는 장르에다 다채로운 성적 묘사는 가히 여학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그 자격이 차고도 넘쳤다.
남자 주인공의 짜릿한 러브 스토리는 교실 뒷자리에서 연일 화제였다. 명랑한 두어 명이 소설 속 어떤 상황을 재연하면 주변 학생들은 꺄~하는 비명을 질러대 교실의 엄중한 공기를 깨부수곤 했다. 까르르 웃는 여학생들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표정들이었고 볼은 늘 복숭아의 그 분홍색이었다. 예뻤다. 선생님에게 뺏기는 단골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돌려보는 순서에 사활을 건 듯했다.
이쯤 되면 나의 이야기 같겠지만 슬프게도 그 돌려보기 순서에 나는 없었다. 교과서만 읽는 교실 앞자리의 답답한 범생이 중 한 명이 나였던 것이다. 뒤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하길래 어째서 저렇게 즐거운 걸까? 나는 왜 그것이 전혀 안 궁금할까? 욕망을 누르며 범생이 코스프레를 한 것인지 진짜 어떤 일탈도 없이 어른들의 기대대로만 자라고자 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나를 잘 모르는 시절이었다. 그러면서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우리는 그들을 놀기만 한다며 일명 ’날라리’ 라 불렀다. 사실 그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런 책이나 읽으면서 인생 망치고 싶냐"
선생님 말씀을 무슨 절대 진리인양 따랐다. 아무튼 그 책이 선생님에게도 제일 기다려지는 압수품이었다는 걸 안 것은 아주 나중이었다. 그 책으로는 인생 망치지 않는다는 것도 이젠 알고도 남는다. 생각해보면 하이틴 로맨스 소설책은 그 시대 그 세대만의 특권이었는데 나는 그 알싸한 추억을 누리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반세기쯤, 세월이라 불러도 좋을 시간을 살아보니 나는 궁극적으로 날라리처럼 살고 싶어 졌다.
그 날라리가 오히려 시집 잘 가서 잘 산다더라, 서울 어디서 사업가가 됐다더라는 동창들의 풍문을 들을 때면, 그 시절 나는 알지 못하는 그 빨간책이 떠오르면서 작은 웃음이 난다.
두 번째의 빨간책 추억은 중학교 입학 시절이다. 버스로 통학하는 일은 나에게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다. 일찍 일어나기부터 버스에 늦지 않기, 만원 버스에 어떻게든 발 올려놓기 등 시골 소녀에게 고난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
책가방의 수난도 함께 시작되었다. 버스 안은 콩나물시루 자체라서 책가방을 등에 멜 수가 없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학생 무릎에 서로 책가방을 쌓았다. 앉은 학생은 책가방들이 쌓이면 뒤로 뒤로 넘겼다. 그땐 그랬다. 더구나 기센 학생들이 만만한 학생의 가방을 천덕꾸러기 취급하며 가지고 노는 듯했다. 이쯤 되면 내릴 때 가방 찾기는 뉴욕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자식 찾는 지경이 되었다.
읍내 종점에 도착하면 서로 먼저 버스에서 뛰어내리려고 몸을 날리는 육탄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가방을 찾느라 이리저리 치이고 허둥대다가 모두 내린 빈 버스에 홀로 남겨지기 일쑤였다. 처참히 널브러져 있는 가방과 함께 말이다. 이럴 때 기사님의 다정한 한마디는 동화에나 있는 법. 애처로운 학생에게 빨리 내리라는 호통뿐인 것이 현실이었다. 버스는 그렇게 잔인했다.
1교시 시작도 전에 녹초가 된 나는 더 녹초가 된 가방을 열어본다. 내 교과서는 오늘도 빨간책이 돼버렸다. 김치 국물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내 도시락 반찬은 늘 김치였다. 점심시간에 친구들의 기름 반질반질한 햄을 보고있는 눈동자를 내 의지로는 이길 수가 없었다. 대체 저런 건 어디서 나는 걸까? 시골 농사일과 층층시하 시집살이에 고된 엄마에게 반찬 투정은 하는게 아니란 것 정도는 나는 알고 있었다.
난 학교에서 수돗물에 교과서를 빨아야 했다. 창피했다. 차라리 여러 색깔로 물들면 좀 덜 창피했을까. 나만큼 허둥대며 김치밖에 싸줄 수 없었던, 지금의 나보다 더 젊었을 그때의 우리 엄마, 그리고 그때의 나. 생각하면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면서 모두 아련하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가방을 여는데 드디어 교과서가 다른 색깔로 물들었다. 검은색이다. 콩장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