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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Aug 07. 2020

나는 나를 도발한다

 그녀의 손이 나의 어디든 톡 하고 무심히 닿는다. 나는 마치 태고적부터 잠들어있던 것만 같은 그 케케묵은 잠에서 깬다. 푸석한 석고 덩어리 내 몸이 미끄덩거리는 생물로 변신을 한다. 그래. 태초에 난 동물이었지. 더구나 우리는 물에서 시작했지. 대체 바다에서 얼마를 살다 왔더라?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인어 출신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 않나. 그래, 어쩐지 가끔 가려워 긁으면 비늘이 떨어지지. 그녀는 나에게 원초적 본능만을 느끼라고 마치 주문하는 것 같다. 벌거벗은 나는, 엄마가 쓰다듬어주길 기다리는 아기 같기도 하다.

다시 나는 눈을 감는다. 그녀의 손이 지나는 곳마다 내 살 껍데기가 툭툭 숨 트는 게 느껴진다. 그 틈으로 푸른 풀들이 풀풀 연이어 돋아난다. 다시 내 몸이 초원으로 변신했다. 아프리카물소 떼가 내 가슴 골짜기를 지나 넓은 배 그쯤 어딘가를 내달리고 있다. 내 거죽이 파이도록 더 더 거칠게 발길질을 해주면 좋겠다. 내 몸은 그야말로 야생을 품은 세렝게티의 무성한 초원이다. 나는 감각의 제국 첨탑에 걸린 바람 가득한 풍선도 된다. 곧 욕망으로 터질 것만 같은 그 빵빵함에 젖은 탄식을 하고 만다. 그녀는 프로다. 나의 탄식을 결코 의식하지 않는다.


여기 목욕탕, 나는 이렇게 벗고 누워있으면 명랑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나를 인어로, 아기로, 초원으로, 풍선으로 변신하게 만드는 그녀는 바로 목욕탕의 세 신 사이로다. 내가 목욕탕에 가는 이유이다. 이태리 원단만큼이나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사회적 신분은 다 벗고 입장하는, 완벽한 해방 공간의 조물주이시다. 그녀는 피그말리온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아프로디테가 아닌가. 메타포가 너무 거창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그렇다. 세신사라는 이름 말고 좀 그럴듯한 호칭을 부여받지 못한 현실이 오호통재라.

  나는 어느날에는 나비로 어느날에는 물고기로 어느날에는 고대 건강한 원시인으로 변신하여서는 물고기와 함께 그 초원을 헤엄치고 나비들과 엉켜 뒹구는 상상을 한다.  

  나는 현재 퇴사한 상황에서 수입과 상상력은 반비례하는가보다. 씀씀이를 가능한 줄여야 하는데 나는 이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포기 못할 것 같다. 상상하는 비용, 언제까지나 누릴수 있는 나의 유일한 사치가 이것이면 좋겠다. 그녀와 함께라면 신분도 시간도 공간도 초월한 신나는 상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는 내가 또 무엇으로 변신하는 상상을 하게 될 지 나는 오늘도 그녀 만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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