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푸른 바다 (I)

by 황부장

몸치인 나, 체육시간이 즐거웠던 적, 결코 없었다. 시골학교는 교실이 탈의실이었다. 맨살과 속옷이 보이든 말든 쉬는 시간 10분 안에 체육복을 갈아입어야만 했다. 복도를 지나가는 남자선생님들을 의식할 수치심 따위 챙길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즉각적으로 비교당하는 너와 나의 몸들. 나는 거기서부터 불쾌했다.


교련수업. 체육실기시험, 체력장, 봄가을 운동회, 가장 최악은 매스게임이라는 단체 공연연습이었다. 틀리기라도 하면 전교생 앞에 나오게 해서 창피를 주고 신체적 고통을 가하고...... 숨을 곳 없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나의 저주받은 체력과 운동신경에 나는 내가 참 안됐다 싶었다.

몸의 우월한 정도로 점수 매기기, 이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면 덜 힘겨웠을까? 나의 체육선생님은 자신을 바라보게 세우고 단체 줄넘기 연습을 시켰다. 우리의 가슴들이 한 사람을 향해 출렁출렁거렸다. 그리고 선생님의 실기시험은 간단했다. 한 명씩을 자신 앞에 세웠으니 앉아있는 자신의 코앞이 여학생의 가슴이었고 그의 시선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발육상태가 유난히 좋았던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차례가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친구를 너무 안쓰러워했었다. 왜냐면 줄이 발에 걸렸어도 기회를 준다는 핑계로 계속 줄을 넘게 할 걸 우린 다 아니까. 야만의 실기시험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토록 내가 예체능과 멀게 살아왔던데는 어쩌면 실기시험의 추억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지 않기를 바랐던 건 음악수업도 체육수업 못지않았다. 같은 노래를 같이 부르는데 왜 이상한 음이 나한테서만 삐져나올까? 보잘것없이 따로 노는, 혼자 다른 산맥을 넘고 있는 내 음정, 원체 명랑한 나로서도 감당 안되게 창피했다. 그래도 나에겐 립싱크라는 위장 필살기가 있어서 합창은 그런대로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또 오고야 마는 실기시험. 번호 순서대로 한 명씩 앞에 나와서 무반주로 지정곡을 부르는 거였다. 아. 뭔가 겁나 험한 것이 나올 텐데... 어쩌려고...... 나의 저주받은 육성을 온 세상에 천기누설 안 할 도리가 없게 되었다. 뭐, 그까짓거하며 불러젖혀버리는 깡따위는 나에게 애당초 없으니 개미똥구멍만치로 작디작은 소리가 겨우 겨우 기어서 나왔다.


“울....밑....에....서어어어언~~ 봉..선...”

“땡. 들어갓!”


그날의 실기시험 결과는 1차 대전 참호만큼이나 처참했다. ‘땡’하는 그 쇳소리가 총알이 되어 내 심장을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난 차라리 감사했다. 그때 선생님이 멈추지 않았다면 아마 두 번째 소절 ‘봉선화야~♬’에서 나는 바지를 적셨을지도 모른다. 더 들어보려고도 안 했던 선생님이 나에겐 얼마나 다행인가. 비록 전교생 최단소절이라는 주홍글씨를 얻었지만 말이다.


“다음 누구니?”


선생님은 노래 잘하는 친구에게는 점수 “A”를 주었고 더불어 끝까지 부르도록 해서 반 아이들이 감상할 수 있는 시혜까지 베풀었다. 부러웠다. 노래를 못하니 자신감이 없고, 자신감이 없어서 더 노래를 못하고...... 나는 이 원인과 결과가 서로 꼬리를 물며 도르마무처럼 무한 반복이다.


나는 모태 음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엄마 아빠도 음치다. 오빠들도 음치다. 나는 그들의 제대로 된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나를 재울 때 엄마가 자장가를 불렀나? 난 아니라고 본다. 유년시절의 우리 집에서는 농기구들은 널렸어도 음향시설이 있다거나 풍악이 울렸거나 했던 기억이 없다. 후천적으로도 음치 육성에 꽤 적합한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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