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푸른 바다 (II)

by 황부장

대학교입학하고였으니 벌써 30년도 더 전이였다. 그때는 대학가에 막걸리 주점문화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일명 “과 단합대회”라는 명목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왁자지껄 떠드는 술자리가 나는 좋았다. 떼창의 민족 아니랄까봐 그렇게들 다 같이 노래를 불러댔다. 거기까진 좋았다.


꼭 누군가 선창을 했고 시계방향 앉은 순서대로 해야 하는 국룰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은근슬쩍 자리를 드나들면서 내 차례를 피하는 일은 어설픈 첩보 작전 같았지만 늘 성공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어찌하여 잠깐 방심한 사이에 애매하게 광속으로 내 차례가 와버렸다. 모두 내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헛둘~ 살리고~♬ 살리고~♬

“아. 그게...... 나 노래 못해. 아는 노래가 없어“

“그럼 그냥 <소양강 처녀>라도 불러”


이 신나는 떼창의 맥을 한없이 끊고 있는 나에게 보다 못한 동기 한 명이 지정곡 배려를 베풀었다. 설마 이 노래도 모를까 하는 거였다. ‘안다고 다 부를 수 있다면 내가 왜 음치가 됐겠냐, 이 바보야.’ 빨리 부르고 싶으니 어서 시작하라는 기대의 표정들. 어떤 친구는 이미 박수로 박자를 맞춰주고 있었지만 그 박자에 첫 소절을 자연스럽게 얹을 수 있는 내가 아니란 말이지.


헉! 그러고 보니 우리 한 번도 저 친구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하는 늦은 각성의 눈동자들. 나이 스물 너머 할 게 아닌 옹알이를 하고 있는 나에게 눈치 빠른 친구의 처방전이 내려졌다.


“그럼, 딱 해~ 저~어믄 고것만 해. 그럼 우리가 다같이 바로 이어 불를꺼야.”

“알았어. 해보께.”

“헛! 둘~~ 살리고~♬ 살리고~♬ 쿵짜라쿵짜~~시이~~작!

“해애 저어어믄”

“다같이~ 아싸! 소~오양강에~ 화~앙혼이 지~이~며~언~”


형편없는 도입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나기만 했다. 이후로 노래방이 남조선을 휩쓸었지만나는 노래를 즐겨본 적이 없다. 2002 월드컵 축구경기 보는 것 말고는 어떤 체육활동도 한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삭막한 일상이었을까. 노래와 몸을 가져가셨으니 대신 머리와 얼굴을 주신 것도 아니고, 신은 가져가신 것과 주신 것의 최소한 기계적 공평에 어떤 시늉도 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나한테는 단 한 번 일회용 삶인데 말이지.


그런데...... 어찌어찌 살아오다 보니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됐다. 음치박치몸치 트리플 못난이인 내가 지금은 매일 노래와 함께 춤을 춘다. 마침 지난주에는 그놈의 “소양강처녀”로 댄스수업을 했다. 내 앞의 단체 댄스 풍경과 30여 년 전 주점의 떼창이 오버랩되면서 ‘감개가 무량한다는 말, 이때 쓰는 거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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