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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Jan 04. 2021

나는 '갱년기 얼리어답터'

‘내가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매달 그 유혈 낭자한 전쟁에 한 번쯤 이런 생각 안 해본 여자가 있을까. 생리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중학교 때 생리대 수업 날이었다. 그때 선생님의 눈동자는 창피해하고 있었다. 남자 선생님이 행여 볼까 불안하여 호기심 많은 여중생들의 피드백 따위는 무시하고 얼른 수업을 끝냈던 걸로 기억한다. 사회가 생리에게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버린 것은 그때인지도 모를 일이다.  


포유류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폐경. 나는 전부터 폐경을 일찍이 바랐다. 나에겐 필요 없는 임신. 지속적 생리는 꽤나 비효율적이다. 여성으로서 끝났다는 심리적 상실감 따위는 나에게 없다. 호르몬에게 애쓰지 말라고 귀띔한 지 오래. 내가 진작 말했잖아, 난 됐다고. 여하튼, 그동안 고생했다. 이제 나는 35년간 피 튀기는 전장이었던 내 몸을 아기처럼 보살펴야겠다. 이제부터 치를 ‘늙음’이라는 새로운 잔치를 위해서라도. 


사거리 한복판에서 '당당한 생리대'를 퍼포먼스 하는 여고생들의 기사를 보았다. ‘그래 맞아. 저거지’ 그 선생님이 비교되어 떠오르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아이고, 난 이제 다 끝났지롱~'이었다. 허리 수술 날이 하필 딱 생리 날이었다. 상관은 없다. 상관없을 줄 알았다. 수술의 고통이 대단해서일까 그날 이후로 내 생리는 없었다. 폐경인 것이다. 시험 날, OT 날, 수련회, 물놀이, 여행, 데이트 날들이 그것과 겹치기를 용케 잘 피해왔더니만 결국 수술 날과 겹치며 대장정의 막을 내릴 줄이야.

절벽 아니다. 인간과 삶을 관조하게 되었다.

모성은 본능? 글쎄, 난 모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진화의 산물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여성 몸의 일생은 호르몬이라는 극작가가 잘 짜 놓은 생애 주기 시나리오 대본 같다고나 할까. 이런 몸을 배제한 내 자아가 가능할까? 세계와 경험들을 해석하는 데는 나의 정신과 몸이 같이 그 기능을 한다. 나아가 그 몸이 정신을 초월하는 그 특이점을 누구나 어느 정도 다 경험하지 않나.


사춘기부터 나를 지배한 호르몬은 탄력 있는 피부와 봉긋한 젖가슴을 장착해주었다. 교교한 눈웃음과 아이가 예뻐 보이는 성스러운 착각은 내 인식이라기보다 이 호르몬의 농단이지 싶다. 이 이기적 호르몬에게는 번식이라는 위대한 사명이 있다. 1프로의 임신 가능성만 있어도 몸 구석구석 다양한 지원 사격을 해야 하겠지. 호르몬의 입장이 있으니까.


어느 날 그 입장을 철회한 것이렸다. 여성들은 안다. 호르몬의 화력이 점점 불규칙해지고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번식의 불씨는 꺼져가고 이제 서식지를 포기하고 있다. 전쟁은 끝났고 피부도 젖가슴도 눈웃음도 서서히 전의 것이 아니게 된다. 호르몬은 안다. 이제 저 입장에서는 쓸모없는 몸이라는 것을. 내 몸이 비로소 호르몬의 지배에서 벗어나 만신창이가 되어 나에게로 왔다.

오히려 제일 젊은 오늘, 좀 더 체력 있을 때 찾아와 준 것이 나쁘지는 않다.

폐경을 예감하긴 했었다. 갱년기 증상이 먼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부지런도 하지. 시작은 꼭 감기처럼 으슬으슬했다. 내과만 드나들며 감기약을 주야장천 복용했다. 워낙에 평소 약골에 감기를 달고 사니 그러려니 했다. 갱년기는 남 일이었으니까. 


이게 갱년기구나 한 것은, 갑자기 줄줄 땀이 흐르고 후끈거리고 열났다가 추워서 벌벌 떨다가를 시작하고부터였다.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상체는 불이 하체는 나고 얼음물 속에 담긴 것처럼 시리다. 한 여름에도 양말을 벗을 수가 없었다. 체온조절 기능은 상실했고 온 몸이 예민해져 있다. 이 냉탕과 열탕 사이를 안 겪은 사람은 진짜 모른다. 몸이 부위별로 지방자치제를 하고 싶은지 로컬을 추구하고 있다. 뜨거운 머리와 땀 차는 가슴, 차가운 발.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모르겠다. 이게 바로 한 지붕 세 가족. 


아파트에 불이 났나 싶어 잠에서 깨보지 않고는 진정한 갱년기라 할 수 없다. 웃옷을 벗어젖히기를 하루에 골백번을 한다. 흐르는 땀과 그 열과 불쾌감에 샤워가 잦을수록 감기 증상은 더 발전했고 체력 소모가 반복됐다. 


지금은 그렇게 안 한다. 한 해 겪고 나니 다스리는 요령을 터득했다. 우선 그 전조 증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열이 확 달아오르는가 싶을 때에는 하던 것을 다 멈추고 명상하듯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 그냥 나를 바라보는 것이고 흐르는 땀과 열을 그냥 느낀다. 나에게 그리고 호르몬에게 말을 걸며 기다려준다. ‘그래, 너도 힘들겠다.’ 불쾌하지 않다. 


닥치니 공부가 필요했다. 나는 약은 복용하지 않았다. 휴식과 독서와 유쾌한 생각과 꾸준한 운동에 애쓴 편이었다. 반드시 에너지를 다 쓰지 않았다. 아침에 눈뜨면 가만히 누워서 몸을 스캔하며 그날의 활동량을 조정한다. 항상 몸에 집중하고 살피고 아꼈다. 

반드시 에너지를 다 쓰지 않는다.

그때 회사를 그만둔 일은 내 인생에 정말 잘한 것 중 하나이다. 출근하고 빠르면 한두 시, 늦어도 두세 시면 어김없이 피로감과 무기력감이 찾아온다. 몸이 지하로 지하로 떨어지는 느낌. 눕고만 싶어서 미칠 지경이다. 표시도 안 난다. 출근은 공포스럽고 일을 줄일 방법, 퇴근을 서두를 방법이 없다. 여름에는 에어컨과 싸우기 위해 꽁꽁 싸매는 전투복이다보니 직원들의 시선이나 고립감에서 오는 우울까지는 돌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제일 젊은 오늘, 좀 더 체력 있을 때 찾아와 준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벌써 갱년기면 어떻게 해?”라는 지인들의 반응은 어떻게 몸을 관리했길래 그러냐는 듯한 뉘앙스로 들리기까지 했다. 내가 삶을 통째로 잘못 살은 기분까지 들게 한다. 내 앞에 절벽만 있을 것처럼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절벽 아니다. 일거리 먹거리 놀거리 등 전반적인 전환과 성숙을 가져오게 되었다. 인간과 삶을 관조하게 되었다. 갱년기의 본질은 누적된 신체의 스트레스인 것이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동안 너무 지나쳤으니 나를 한 번쯤 돌아보고 이제 제2의 인생을 새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오히려 갱년기와 그 시기 퇴사야 말로 나의 제2의 인생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그래서 완경이라고 하지 않나.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아팠지만 좋은 점도 있다. 갱년기 얼리어답터로서 친구들에게 선지식을 나름 전도할 수 있었다. “친구야. 나처럼 아무 준비 없다가 갱년기를 맞이 하지 말고 나를 보며 너도 지금부터 몸을 살피렴. 너에게 집중하고 너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생 2막 시나리오를 써보렴. 잘 먹고 꾸준히 운동 잊지 말고.” 


인생은 언제나 꽃이 아닌 때가 없다. 또 다른 꽃을 피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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