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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Jan 17. 2021

여자 혼자 모터보트


여행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여행 도서를 선호하는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집어든 것은 순전히 작가를 좋아해서였다. 첫 단락부터 좋았다. 중국에 도착했는데 비자 발급을 준비 못한 실수로 푸둥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추방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 기분이 의외로 최악의 기분은 아니었다고 한다. 난생처음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 있는 진귀한 경험인 만큼, 언젠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고 한다. 역시 소설가의 면모답다.



나의 첫 혼자 여행은 정동진 이어야 했다. ‘고현정 소나무’는 광주 금남로 다음 정도는 되는 민주화의 메카 같은 곳이다. 드라마 <모래시계>가 종영하고도 강산이 변할 정도의 세월이 흘렀건만 나는 그 강렬함이 무뎌지지는 않았다. 주말여행으로 계획했으니 금요일 야근 마치고 밤 10시쯤 출발하는 게 딱 적당했다. 그 무렵은 회사일이 삶의 낙인 시절이었고 더구나 방전이란 없는 늘 체력 가득 혈기 왕성한 청춘 그 한가운데인지라 그런 일정이 그다지 무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숙박비도 아끼고 시간을 잘 쓰는 효율적인 계획이었다. 네 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도착한 칠흑 같은 바다를 잠깐 걸었고 차에서 두어 시간을 잤다. 아무데서나 잘 자는 나의 노숙 기질도 있고 따듯한 초여름이라 가능하기도 했다. 어둠이 느슨해지고 있었다. 멀리 수평선이 빨개지고 있었으니 알람을 맞추어 놓은 것이 필요가 없었다.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 혀처로 드리워 물 속에 풍덩 빠지는 듯싶으더라.”
<동명일기> 의유당 남씨


교과서에서 배웠던 고전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영조 때 함흥 판관으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유람하던 의유당 남씨는 뜨는 해를 ‘소 혀’ 같다고 했다. 그 앞에 여러 미사여구가 있지만 유달리 저 표현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서 지금도 나는 ‘해돋이’ 하면 ‘소 혀’가 바로 떠오른다. 


그 당시 지구 저편 유럽은 시민혁명으로 내달려가고 있고 조선은 이후로 나날이 기울어 ‘지는 해’의 운명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 나가는 남편 따라 하인들을 거느리고 여행하며 기행문을 쓰는 조선 양반 여인이란 상황이 그냥 인상적이었다. 거시와 미시를 단순 비교한다는 게 적절치는 않지만 두 상황을 동시에 그려본다는 것,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재미가 있다.

지금도 ‘해돋이’하면 ‘소 혀’가 바로 떠오른다

뜨는 해를 보는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태양숭배 DNA 때문이리라. 나도 동해까지 왔으니 한참을 지켜보았다. 소 혀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황홀하여 도무지 헛기운인 듯싶다는 의유당 남씨만큼 감흥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생애 유일한 일출이었다.


나는 아침 바닷가를 잠깐 걷고 전혀 고현정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고현정 소나무’를 한번 쓱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크루즈로 갔다. 언덕 위의 압도적 비주얼은 노아의 방주가 연상되었다. 나는 암수가 아니라 규칙 위반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침 식사로 멋지게 경양식 칼질을 하고 싶었다. 동해가 보이는 넓은 창가에서 비싼 가베(커피)도 한잔 마시며 가베 애호가인 구한말 고종의 못다 이룬 꿈도 음미해보고 말이다. 고독하지만 멋있는 척하는 혼자 여행자의 온갖 유치한 행태. 


하지만 때때로 포기는 빠른 게 좋다. 예상한 가격으로는 샌드위치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커피까지는 마실까 말까 고민했다. 창 넓은 자리로 만족하자. 내 맘을 알아서일까. 샌드위치 옆에 나이프가 놓여있는 것은 아마 비싼 곳이여서겠지. 그러나 칼질은 하지 않았다. 

언덕 위의 압도적 비주얼은 노아의 방주가 연상되었다.


대체로 나의 소비는 가난과 검소 그 사이 어딘가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 정도 낭만은 좀 부려도 좋았을 것을. 지금의 나는 그 좋아하는 커피도 불면증 때문에 못 마신 다는 걸 그때의 내가 알 턱이 있나. 커피 콩알만큼의 낭만이라도 존재할까 싶은 갱년기라는 게 이렇게 성큼 올 줄이야.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데. 커피를 참아야 하다니. 커피를 못 마시며 인생을 논할 수는 없다.


“오호라. 칼질은 못했어도 이건 타야지“ 수상 모터보트였다. 매표소는 없지만 딱 보면 안다. 바닷가를 걷고 걸은 보람이 있었다. 최대 4인 탑승이며 정액제였다. 사장님 말은 비용만 내면 혼자도 태워주지만 손님들끼리 4명을 만들어 타는 것이 손님 입장에서 제일 저렴하다는 것이다. 손님이 더 오면 나에게 제일 좋다고 설명해주었다. 그쯤은 수학도 아니고 산수라서 나도 아는데 장황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어쨌든 세 명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보트는 부앙부앙 힘찬 모터 소리와 함께 벌써 몇 차례나 출발해 돌아왔다. 바다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어느새 커플들이 와서는 두 커플씩 대기 중이 돼버리고는 했다. 먼저 뽑은 나의 번호표는 궁색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커플은 고사하고 손님 자체가 뜸해졌다. 여기 정동진 바닷가는 애초에 세 명짜리 손님이 나타난다는 게 이상한 곳이었다. 꿋꿋이 기다리는 나에게 사장님이 보트 위에서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침에 혼자 모터보트 타러 온 여자는 처음 보네

“어이, 아가씨. 태워줄께요. 일루 와요. 혼자 값만 내셔.“

“네? 진짜루요?"

“내가 여기서 몇 년째 영업하는데, 아침에 혼자 모터보트 타러 온 여자는 처음 보네. 진짜루 내 신기해서 태워줄라고.”


보트를 기울여서 한쪽 물살을 높게 만들어 주실 때마다 고마움의 비명을 꽥꽥 질러드렸다. 자고로 인간의 측은지심이야말로 사단 중에 으뜸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돈 아깝지 않게 즐길 수 있어서 좋은 것도 있었지만 때와 장소 안 가리고 발현되는 나의 성실한(?) 우직함에 자화자찬 아니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세 명짜리 손님이 왔다 해도 나랑 같이 탄다는 보장도 없었을 텐데. 세월아 네월아 그걸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좋게 말해 ‘꾸준한 끈기’라고 해두자. 


그러면서도 나 역시 김영하 작가처럼 기분이 의외로 최악은 아니었다. 예상에 없던 진귀한 경험이라는 것 자체로 나쁘지 않았다. 이런 의외성이 여행의 맛인 것 같다. 멋 부릴 돈은 없고 멋은 부리고 싶었던 첫 혼자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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