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부장 Feb 03. 2021

안 본 눈 삽니다


우리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자각하기도 전에 도처의 다양한 추행과 함께 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년 시절에는 동네 아저씨, 학교에서는 남자 선생님, 출근길 지하철 남자. 종목도 선수도 참 다채롭다. 어디부터 써야 할까. 수위 조절은 어떻게 할까. 시리즈로 몇 편이 나오는 건 아닌지 나도 궁금하다. 그래, 직장 이야기를 우선 써야겠다. 직장을 빼면 앙꼬 없는 찐빵이니까. 


사장님과 함께하는 부서 회식이었다. 어디나 그렇듯 ‘직원과의 대화’라는 타이틀의 자리는 편하게 소통하자고 마련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밥만 먹는다. ‘사장님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 는 부장님의 경고가 이미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1차로 식사, 2차로 맥주, 3차는 노래방, 이것은 한반도 모든 직장 회식의 표준 매뉴얼. 


당연히 문제는 노래방이었다. 사장님은 여직원들을 본인 양옆에 앉히는 것도 딱히 그러려니 하던 시절이었다. 사장님은 바로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았고, 직원들도 따라 나가 각자 최선을 다해 분위기를 띄웠다. 직장 회식에서 너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때였다. 사장님은 앉아있는 나를 이리 나오라며 자신의 옆으로 손짓했다. 안 나갈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가? 사장님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손을 잡고만 불렀다. 나는 노래가 빨리 끝나기만 바랬다.


“야 인마, 어제 너 그게 뭐여? 어떻게 사장이 손잡는데도 가만히 있냐? 너 그러면 못써. 여직원 중에 네가 언니인데 모범을 보여야지. 그러면 안돼는 거 아녀?”


다음날 출근하자 부장님이 날 세워놓고는 다 들리도록 크게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가. 참나, 누가 거절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겠나. 그 자리에 있었던 본인도 사장한테 한마디 못 했던 건 마찬가지면서 말이다. 정작 당한 것은 나인데 혼나니까 속상했다. 


한편으로는 나의 불쾌함에 저런 식으로 공감해주는 건가 보다, 사장님의 행태에 자신은 이제라도 분노를 안 할 수는 없다는 것처럼도 보였다. 다음에는 우리 ‘을’이 같이 가만히 있지 말자는 연대의 메시지인가? 부장님이 조금 괜찮아 보였다. 사실 부장님 말이 맞다. 내가 거절했어야 맞지.



나는 공대에서 남자들의 어지간한 음담패설을 많이 봐왔었다. 그게 면역이 되어서인가 직장에서도 어지간한 건 넘겨버릴 수 있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나. 전날의 불쾌감도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사내에 노조는 당연히 없고 신고센터 같은 것도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게 끝인 줄 알았다. 아니다. 문제는 우리 부서 회식이었다. 사장님 위주였던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부장님은 제대로 놀고 싶으셨나 보다. 다른 여직원은 식사 후 가버렸고 또다시 노래방이다. 분위기 무르익었을 때 부장님은 할 말 있는 표정으로 나에게 왔다.


“난 자네가 여자처럼 일하지 않아서 참 맘에 들어. 남자 두 몫은 일한다는 거 내가 알지. 자네는 프로야. 앞으로도 부탁해.”


도대체 이게 말인지 당나귀인지?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역시 내 성격에 흘려버렸다. 그리고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모르는 아가씨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나를 보더니 순간 아주 잠깐을 움찔했지만 “들어와, 들어와” 부장의 한마디에 뒤이어 서너 명이 더 따라 들어와 앉았다.



“옆 방에서 왔어요?” 아까 움찔하던 아가씨가 나에게 물었다. 먼저 불려 온 아가씨가 있었구나라는 상황 정리가 충분히 가능했나 보다. “얼렁 나와요” 친절하기도 하지. 나한테 함께 하자고 까지 하다니.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건 말건 남자 직원들은 벌써 와이셔츠 단추처럼 정신도 풀려 있었다. 머리엔 넥타이를 운동권 인양 질끈 동여 멨다. 그다음이 과간이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가씨를 한 명씩 안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마이크 잡지 않은 손은 스킨십을 하느라 낭비가 없다. 마이크가 없는 남자 직원은 손이 두 개나 남으니 더 많은 것을 할 수가 있었다. 


사원부터 부장까지 직급을 허물고 일체가 되어버린 진정한 팀워크였다. 보기엔 그냥 노래방이지만 구매자와 판매자가 대목을 만난 활기찬 화개장터랄까. 혼은 없고 백골만 둥둥 떠있는 그로테스크한 천국 같았다. 나는 내 두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그야말로 ‘안 본 눈 삽니다’. 전날 사장님의 부적절함은 차라리 발랄하다고나 할까. 함께 회의하고 일하던 그 동료들은 어디 갔나.


“한국 남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만나는 여성들을 동료로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훈련되어 있지 않다.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도 자신이 사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의 연장으로 본다.” <페미니즘의 도전> 62쪽-정희진

이제야 나는 그 뜻을 알았다. 내가 프로라는 부장님의 칭찬은은 이제 아가씨를 부를 타임이라는 시그널이었던 것이다. 역시 다음 회식에도 부장님은 술에 취했고 토씨 하나 안 틀리게 같은 칭찬을 하였고 어김없이 아가씨가 들어왔다. 적은 늘 우리 안에 있는 거라더니 딱 그 꼴이다. 나는 그 후 더 이상 노래방을 가지 않았다.


그동안 여직원은 늘 식사까지만 했었고 그래서 남은 그들은 아가씨들과 함께 하지 못할 이유가 없던 것이었다. 어느 날, 집에 가지 않는 여직원이 입사를 한 것이다. 그들은 태도를 바꿔야 했으나 관성의 법칙을 따르기로 했다. 못 볼 거 보게 될 테니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라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항상 더 문제는 그 너머에 있다. 아드레날린의 흥분을 함께 했다는 강한 동지의식과 결속력을 직장에서 업무로 이어졌다. 배제와 포함의 방식으로 부적합한 업무에 있어 서로 덮어주고 이끌어주고 말이다.


“야, 너는 눈치 없이 머더러 노래방까지 따라가냐? 남자들은 그러고 놀고 싶은데 네가 계속 따라오면 퍽 좋아라 하겠다.

“아니, 엄연한 부서 회식이고 나도 회식을 즐길 권리가 있잖아. 다른 날 자기네들끼리 그렇게 놀던가 왜 부서 회식에서 그러는 거냐고?

“그럼 너도 아가씨들하고 같이 놀던가”


친구와의 대화는 산으로 가고 있었다.


사회는 많이 바뀌었다. 많이 그대로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도 그동안 남성적 문화에 적극적으로 맞추어 지냈을 것이다. 누구와도 원만한 성격 좋은 여직원으로 보이고 싶었을 테니까. 내가 먼저 목소리를 내었더라면, 또 그런 ‘나’들이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 그 회사는, 이 사회는 한걸음까지는 아니어도 반걸음 정도는 나아져 있지는 않았을까. 싸우자는 게 아니라 다른 목소리가 분명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말해야하고 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만이 아니라 모두는 그 ‘다른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목소리를 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일 수는 있으나 가능성도 없는 사회니까. 


작가의 이전글 여자 혼자 모터보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