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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Feb 16. 2021

회사 명절 선물로 뭐 받았어?

프리랜서는 요일 감각만 없는 게 아니다. 친척 만나는 것이 불편하여 명절을 혼자 지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명절 감각도 없어졌다. 회사를 그만둔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일 년에 두 번, 선물 상자를 받아 들고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좋아 보일 때가 있을 뿐이다.  


퇴사하고 백수의 소양을 갖추려면 모름지기 중고나라에 호적을 올려야 하는 법, 명절 이삼일 전부터 스팸 상자가 매물로 엄청 올라온다. 그제야 ‘아, 명절이구나’라고 실감한다. 명절이 지나고 산처럼 쌓인 분리수거장의 빈 과일 상자를 보면 ‘나도 저런 거 받을 때가 있었는데’ 하며 그 자리에서만큼은 아주 조금 부럽다. 


회사생활은 전혀 그립지 않은데 쌓아놓고 며칠을 실컷 먹었던 그 명절 참치캔 맛은 잡채보다 더 그립긴 하다. 명절이면 나도 선물을 했다. 바로 회사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주머니와 식당 영양사님, 요리사님들이었다. 평소 감사한 사람에게 작게 마음을 주고받는 것을 명절에 하면 좋지 아니한가. 선물의 진짜 맛은 주는 데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선물 상자를 받아 들고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좋아 보일 때가 있을 뿐.

우리를 지켜주고 더러운 것을 청소해주고 맛있는 밥을 해 주시는 분들, 낮은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항상 고마움이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우리는, 적게 버는 노동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 사회 재생산과 유지에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에 진짜 필요한 일을 하니까 고소득 노동자가 많이 벌겠지’하는 생각이 깨진 계기라고도 한다. 소위 그림자 노동이라고 말하는 각종 돌봄 직종이 그동안 얼마나 저평가되었나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도 코로나로 배운 것 중에 하나 아닐까.


입사 첫 명절 때 선물을 드리면서 알게 되었다. 그분들 모두가 정직원이 아니라서 회사 명절 선물을 못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두어해 지나면서인가 한솥밥 먹는 사람에게는 모두 다 같이 지급된 걸로 기억한다. 사소한 차별이 더 치사한 법인데 다행이었다.


그분들과의 소소한 추억이 떠오른다. 청소 아주머니와 모닝커피 한잔하며 화장실에서 나누던 이야기들, 요양보호사 준비하신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셨을까? 혼자 사니까 잘 먹어야한다고 직원들 몰래 챙겨주시던 식당 아주머니의 누룽지도 생각났다. 퇴사하고 몇 달 지나 업무상 방문했을 때 경비실 서랍에 챙겨진 퇴사 후의 내 우편물들을 보고는 뭉클했다. 


나에게 이번은 유난히 사람이 그리운 명절이다. 사실 명절뿐이 아니다. 두어 달째 계속 그런 중이었다. 전국에 염병이 창궐하여 사람들과 같이 하는 취미생활이 모두 멈추었다. 프리랜서에게 취미는 밥과 같은 것. 그거 하려고 퇴사했건만 빠삐용도 아닌데 방구석에서 혼자 하는 취미만 하고 있다. 일까지 줄어들어 완전 백수 상태가 된 지 몇 달째이다. 사람도 그립고 명절 기분도 내고 싶었다. 비록 적을 둔 회사는 이제 없지만 감사하게도 친구는 있으니 말이다.


SNS 문자로 기프티콘 선물하기는 가끔 하는 편이다. 기프티콘을 처음 사용할 때는 이것이야 말고 정말 필요한 것이라며 환호했다. 서로 시간을 따로 들이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주고받는 데는 딱이었다. 멀어서 또는 바빠서 못 만나는 친구라던가 대면하지 않고 마음을 전달할 대상에게 굉장히 효과적이다. 


그런데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간관계가 너무 간편하게 해결되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가 그렇게 간단하게 쌓은 우정은 아닌데 기프티콘으로 친구의 기념일을 챙기다 보니 우리 사이도 덩달아 간단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편하게 마음을 전달하면서부터 만나는 횟수도 사실 줄은 면이 없지는 않지 않을까. 바쁜 핑계로 못 만난다는 마음의 빚을 기프티콘으로 안전하고 편하게 탕감받고 싶은 심리 일지 고민해본다. 


물론 만나고 싶지만 퇴사하고 보니 나 빼고 다 바쁘다. 언제부터인가 ‘바쁜 현대인’이라 쓰고 ‘정상인’이라 읽는다. 다들 조국을 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들 바쁜지, 조국은 전생에서나 구할 것이지 말이다. 평일은 통째로 생존을 위해 써야 하고, 그 생존에 지친 영혼이 휴식하려면 주말이 필요하니 삶을 즐길 요일을 하나 더 만들던가 해야 할 지경이다. 여하튼, 바쁜 친구는 계속 바쁘라 하고 이번 명절에 나는 시내 친구만이라도 기프티콘 대신 작은 선물을 하고 싶어 졌다. 직접 포장하고 손 편지도 써야겠다. 서프라이즈는 그 자체로 감동을 주니까. 

서프라이즈는 그 자체로 감동을 주니까.


택배비 아끼면서 대면하지 않고 부담 없는 선물을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아파트 문고리에 걸오 놓고 오는 생각이 떠올랐다. 친구들 아파트 동호수를 평소에 알아놔서 다행이었다. 마침 오늘이 연휴 전날이라 다들 일찍 퇴근할지도 모르니 서둘러야 했다. 손 편지를 씩씩하고도 짧게 써서 선물과 같이 담았다. 동선을 정해서 첫 번째 친구 아파트에 도착했다. 


이런, 동호수만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전에 열 수 없는 문 앞에 멈추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택배차가 왔고 나는 기사님을 따라 들어갈 수 있었고 다음 아파트에서는 청소 아주머니께서 도와주셨다. 입주민이 아닌 거 같아 쳐다보며 들어가는 입주민 따라 재빨리 들어가기도 했고 다 방법이 있었다. 무슨 비밀공작 수행하듯이 그렇게 모두 성공했다. 걸어놓기만 해도 안전하다. 우리 한국 사회는 아파트 복도 택배 상품을 도둑 안 맞기로 유명하지 않나.

친구들 아파트 동호수를 평소에 알아놔서 다행이었다.

그 뿌듯함에 혼자 취해있을 때 한 명씩 전화가 왔다. 퇴근하고 집 앞에서 맞이한 문고리 선물 사진이 전화보다 먼저 날아왔다. 들인 비용에 비해 너무 기뻐해 주었다. 역시 덕담과 감사와 사랑한다는 수다는 문자보다 육성으로 나누어야 명절 잡채만큼이나 기름지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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