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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Feb 27. 2021

베지밀 마시다가 혼이 나가다

친구 MOON의 반가운 문자에 얼른 채비를 하고 나갔다.
밤 산책이었다. 나는 찬 공기 알레르기성 만성 비염이라 꽁꽁 넉넉히 싸매고 나섰다. 약속 장소까지 걸어갈 요량이었다. 차를 타고 가자고 마음을 바꾼 것은 아파트 앞 사거리 신호등을 기다리면서이다. 만나서 한참을 걸어야 할 텐데 지금부터 굳이 걷지 말자, 무리한 운동은 반드시 후회를 남기는 법. 더구나 나는 얼마 전 이별했었고 베겟잇에 눈물도 마르기 전인데 병까지 나기는 싫었다.


늦게 도착해서 난 미안했고 MOON은 개의치 않아해 주었다. 코로나 이야기, 친구 직장 이야기, 내 건강 아니 서로의 건강 이야기, 글쓰기 이야기, 나의 구질구질한 이별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독서 이야기. 운동도 할 겸 빠른 걸음을 걸으며 서로의 근황도 어서 나누어야 했다. 봄날을 기다리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내가 집에서 답답해할까 봐 바람 쐬어주고 싶었다는 친구 MOON의 말은 정겨웠다. “답답하다고? 갱년기 환자를 이 엄동설한 오밤중에 불러내다니, 이런 무례를 보았나? 여봐라! 밖에 아무도 게 없느냐? 매우 쳐라”라는 나의 핀잔에 한바탕 같이 웃을 수 있는 친구라 좋다.


‘이별했음. 잉여 남자 사람 소개 바람. 바로 연애 가능’ 이별을 공지한 후의 첫 연락이었기에 나의 구박은 더 천박하고 경솔하기 그지없었다. “간도 크지, 빈손으로 나를 불러내다니? 시방 너 제정신이냐? 네가 내 친구라면 남자 전화번호 하나 정도는 가지고 나와야지. 이럴 거면 앞으로 우리 보지 말자” “야, 어떻게 아무나 막 해주냐?” “그냥 아무나 막 하라고 막~. 그렇게 안 봤는데 말귀를 못 알아듣네” 도발적인 내 말에 당황해하지도, 부담도 갖지 않는 친구라 마냥 편했다.


우리의 대화는 편의점에 들어와 앉았다  나는 따듯한 베지밀을, MOON은 시원한 밀키스를 집어 들었다. 둘 다 어쩜 그렇게 취향마저 서로의 시대에 정직할까. 여하튼 저 찬 것을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만 봐도 내 말초신경에는 벌써 오한이 온다. 빠른 걸음에 검정 롱 패딩 등짝이 후끈했겠지만 그럼에도 따듯한 것을 마시라고 권유하는 나는 얼마나 자비로운 갱년기 선배란 말인가.


말할 때 손짓이 크다 보니 그만 베지밀 병을 건드리고 말았다. 유리만 아니었어도 ‘에고, 떨어진다~’ 하며 멀뚱 바라보고 있었겠건만, 죽을힘으로 추락하는 유리병을 잡고야 말았다. 순간을 압도하는 내 몸동작은 와호장룡의 장쯔이였다고 믿으면 딱 맞겠다.

순간을 압도하는 내 몸동작은 와호장룡의 장쯔이였다고 믿으면 딱 맞겠다

“어……살아있네. 이 순발력” 친구는 감탄했다. 유리병은 엔트로피 법칙을 거슬러 살아날 수 있었고 대신 내 혼이 나가버렸다. 투명하며 히끄무리한 것이 진짜로 눈앞에서 둥둥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제대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 다니라는데 나야말로 겨울 끝물에 육체 에너지는 절대 쓰는 게 아니거늘 너무 큰 에너지를 순간에 써버렸다.


빠져나간 혼은 어딘가로 가버리고 남은 혼으로 사는 것인가? 아니면 아직 난 버젓이 살아있으니 내 몸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인가?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동안 들락날락했었나? 우리 이야기는 영혼의 존재 이야기로 이어졌다. 죽어서 내 영혼과 의식은 어떻게 되나?


1.     죽으면 끝, 아무것도 없다.

2.     무엇으로든 윤회한다.

3.     지옥이든 천국이든 영혼의 세계는 있다.

4.     다시 나로 태어나 내가 살았던 삶을 영원히 반복한다. 영원회귀설.


외계인설도 5번에 쓰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지만 일단은 제외하도록 하자. 모태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인 나는 영혼을 믿지 않는다. 영혼과 의식이란 현상은 육체의 부산물이라는 일원론이 나에게는 당연했다. 육체와 뇌의 죽음이 곧 의식의 종말인 것이다. 그러니 정답은 1번이다. 나머지는 문학적 소재로 퍽 유익한 인간의 상상력이라 생각했다.


다양한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랬다. 힌두교 책을 읽으면서는 윤회사상에, 니체를 알고부터는 영원회귀설에 매료되었다. 서양사를 공부하려니 아브라함 선생 족보와 기독교 공부는 선택이 아니었다. ‘생사(生死)는 상반되는 고정된 실체적 현상이 아니다’ 라는 생사불이 (生死不二)라던가,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고, 제법(諸法)이 무아(無我)하며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불교 이야기는 나이 들어서인가 요즈음에 격하게 가슴에 와 닿아 꽂힌다.


대학교에서 운동권 선배 따라다니며 귀동냥한 게 유물론이라 그저 익숙했을 뿐 다른 관점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다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는 것마저 모르는 것이다. 책 안 읽은 사람보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이제는 영혼에 대한 내 생각은 ‘모르겠다’가 맞을 것 같다. 아직은 말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만이 사상과 종교같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을 믿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또한 이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인간만이 대규모 협력이 가능했다고 하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그래, 모든 다양한 상상과 허구를 나는 존중 하노라.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인간만이 대규모 협력이 가능했다

친구 MOON 역시 한 가지 관점에 단정 짓지 않아 논쟁이 아닌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기에 언제라도 꼰대는 될 것 같지 않은 몇 안 되는 친구이다. 아무 연고 없는 낯선 군산으로 이사 와서는 독서동호회에서 MOON을 만났다. 첫인상부터 학식과 지성의 포스가 남달랐다. 저 높은 곳에 있는 듯해 다가가지 못하는 나에게 먼저 친구 하자고 했고 내가 당황해서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쌀과 책을 처음으로 선물한 친구이다. 여전히 나를 언제나 독서와 사유의 길로 인도하는 동갑내기 친구이다.


영혼 이야기는 신 이야기로 이어졌다. 친구 MOON은 원시 신앙의 대표적인 토템이즘과 샤머니즘이 자신에게 신성하고 따듯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과학이 신의 경지인 시대를 살면서도 현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자연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모습을 아직도 간직한 곳이 몽골이라고도 말했다. 친구 MOON의 몽골 사랑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멋져 보였다. MOON의 처음 닉네임이 ‘멋쟁이’였다.


오래전부터 인간의 존재 양식은 바로 ‘정신’이었다. 서양 철학을 굳이 몰라도 육체가 원죄 취급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소크라테스 ‘육체는 정신의 감옥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3.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게 주야장천 ‘이성’만 좋아라 하더니 마침내 참혹한 세계대전을 치르고서 인간(사실 서양 인간)은 서둘러 각성하였다. “이게 아닌게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겨?” 그리하여 다윈, 프로이트, 니체를 시작으로 인간의 육체성과 동물성을 부각하기 시작했다. 육체파인 나로서 무척 기쁘다.


단, 나의 격정은 그대로인데 몸은 노쇠하여 베지밀 마시다가도 혼이 보일 지경이니 애꿎은 세월만 탓해야겠다. 가끔 멍 때리더라도 정신줄 꼭 붙들어 매고 살자며, 그러면서 몸 또한 떠받듯이 살자며 우리는 헤어졌다. 아무 이야기나 막 하는 우리의 대화는 늘 삼천포로 빠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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