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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Mar 08. 2021

지옥을 맛보다

수술편

아픈 건 정말 싫다. 그날 그것은 육체가 절단 나는 어마 무시한 고통이었다. 어떻게 하면 몸이 그렇게 아플 수가 있을까? 지금 글 쓰는 순간에도 그날을 떠올리면 몸서리쳐진다. 남은 생의 통증을 미리 소환해서 몽땅 아파 버리는 거라면 차라리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중학교 때인가? 야리야리한 여선생님이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는 30cm 자를 세워 손등 때릴 때 그 뼈 아팠던 거, 고단하면 어김없이 입안이 허는데 빨간 김치 들어가면서 눈물 핑 돌게 아픈 거, 자동차 문 닫다가 미쳐 손을 빨리 못 빼서 손톱이 빠지도록 아팠던 거. 택시에 받쳐서 공중 2회전을 하고 떨어진 적도 있었다. 여하튼 이 모두를 합친 총량의 열 배도 그것과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허리디스크 수술이었다. 일명 추간판 탈출증이다. 참다 참다 입원을 했고 휠체어를 엄마가 밀어주며 수술을 위한 각종 검사를 받았다. 엄마가 휠체어 운전이 서툴러 내 발이 벽에라도 닿으면 고통은 끔찍했다. 복도에 “악” 소리를 스테레오로 흘려가며 검사를 다 마쳤으나 하필 병원 사정으로 수술 일정이 미뤄졌다. 하루를 그냥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금식도 연장되었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빨리 수술시켜달라는 드라마 속 비운의 여주인공을 이제 알 것 같다. 내 다리는 진통제가 소용없을 정도여서 밤새 신음소리를 냈고. 드디어 수술실로 나설 때 오히려 반가워한 분은 내 신음소리에 한잠도 못 주무셨다는 옆 침상의 환자 아주머니였다. 수술실로 가며 보이는 병원 복도와 엘리베이터 천장은 앞으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드디어 수술실로 나설 때 오히려 반가워한 분은 내 신음소리에 한잠도 못 주무셨다는 옆 침상의 환자 아주머니였다.

수술 시작하기 전부터 사실 불편했다. 수술부위가 허리이다 보니 배에 쿠션을 깔고 산 모양으로 엎드리는 자세여야 했다. 눌린 코는 고개를 돌려서 해결했지만 문제는 가슴이었다. 누구도 갖고 싶어 하지 않는 풍만한 허리에 잘록한 가슴에도 불구하고 눌린 가슴은 너무 아팠다. 말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삼사십 분을 견딜 수는 없었다. 얇은 수건 한 장이라도 좀 깔아주면 좋으련만 의사는 좀 참으라는 말만 했다. 


 어떤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나는 ‘의사들의 세계란 것이 남성이 많다 보니 여성에 대한 배려는 당연히 부족할 거라는 편견은 하지 말자’ 하는 생각의 여유까지 있었다. 어쨌든 어깨와 턱을 꼼지락거리면서 가슴이 좀 덜 아픈 자세를 취하려니 움직이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본인들만 수술하기 편하면 다인가. 짜증이 확 났고 그 시간부로 여긴 추천하고 싶지 않은 병원이 되었다. 


하물며 우리 동네 치과에서도 음악방송을 보여주며 긴장을 풀게 해 준다. 수술받을 환자에게 시크한 유머와 편안한 미소를 보여주는 의사는 미드에서나 있는 건가? 수술 준비로 자기들끼리 바빴다. 눈 맞춰주는 의사 하나 없었다. 나랑 눈 맞자는 것도 아닌데 불안한 환자는 그저 실험실 개구리 처지가 된 기분이었다. 수술 시작을 알리는 마취가 이루어졌고 곧이어 손 망치로 척추를 쳐대는 것 같은 둔탁한 느낌은 불안하긴 했어도 아프진 않았다. 이제 시간만 가면 된다. 


지금부터는 신경을 건드려가며 수술이 이루어질 거라니 그런가 보다 했다. 건드려볼 테니 아픈지 말하라니? 얼마나 어디가 어떻게 아픈가를 말하라는 건지? ‘아파요’, ‘안 아파요’, ‘예스’, ‘노’로만 대답하면 되는 건지? 확실한 거 좋아하는 나는 좀 자세히 설명을 해주면 좋으련만 했으나 조금 전의 핀잔에 주눅이 들어 잠자코 있었다.


일단 해보면 알겠지 했다. 확실한 거 좋아해 봤자 소용없었다. 까무러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국소 마취를 하는 이유는 내시경 수술이라 부위가 작아서라고 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 거 같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말해줘야 하니까 전신마취를 안 한 거 아냐, 딱 그 선에서 의학이 발전을 멈춘 게 분명하다. 내 생각도 거기서 멈추어버렸다. 속은 느낌이었다. 건드리면 안 될 것, 마치 뇌관을 건드려 폭발시켜놓고는 아프면 말하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내가 그렇게 크게 비명소리를 낼 수 있는지도 그때 알았다. 하마터면 득음할 뻔했다. 소프라노와 록커의 콜라보, 비명소리와 울부짖음의 하모니가 수술실을 밖까지 울려 퍼져 나갔다. 너무 울어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숨이 안 쉬어졌고 수술은 멈췄다. 산소호흡기를 대주었다. 가수 방탄소년단이 공연하고 있을 때 콘서트 무대 뒤에서 스텝들이 들고 대기한다는 그 산소호흡기, 춤도 안 춘 내가 산소호흡이 필요할 줄이야. 울음이 그쳐지고 수술은 이어졌고 또 소리지르고 또 멈췄다가 그랬다. 나는 무척이나 외로웠다.


의식이 하나의 육체 감각하고만 링크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실히 느꼈다. 철학의 본질이 사유에 있다고 누가 그러던가, 철학의 본질은 육체에 있다. 육체는 스스로 주권도 없다. 육체는 그 자체로서 한계이다. 한계에서 철학이 안 나오면 무엇이 나올까? 언제 어디서부터 내 삶이 삐끗하였기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나 하는 상념이 훅훅 스친다. 내가 이걸 견뎌낼 수 있을지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일제강점기에 살았다면 친일파는 안될지라도 고문 앞에서는 동지를 제일 먼저 불어버릴 배신자는 될 거라는 평소 농담을 시험받는 것만 같았다. 뭘 불어야 이 고통이 끝날까.

출처 : https://blog.naver.com/zlfmdk90/221940354378   단테  <신곡> 제8지옥

그렇게 산소호흡기를 댔다 떼기를 서너 번 정도를 반복하고 수술은 끝났다.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다. 회복실에서도 고통의 잔상으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엄마 전화기로 내 울움 소리를 들은 아빠는 따라 우는 엄마에게 역정을 내는 듯했다. 진통제 더 달라고 하지 뭐하냐는 아빠 목소리가 들렸고 내 울음은 서러움으로 장르가 바뀌었다. 숨을 쉴 수가 없다고 겨우 말했더니 울음을 그쳐 보라는 간호사의 탁월한 조언을 들었다.  여하튼 수술은 끝났다.


입원실로 돌아왔다. 나라고 말할 수 없는 너덜너덜해진 살덩어리가 누워있었다. 내 육체는 오로지 고통을 느끼는 매개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생각하고 있는 내 머리는 분명 나인 것 같은데 내 것이 아닌 게 몸처럼 달려있는 기분이다. 그날 밤, 나는 몸이 없는 시체처럼 동동 머리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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