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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May 17. 2021

그들의 시간을 욕망하는, 상사화

퇴원 후 회복편

누우니 하늘이 보였다. 전주 하늘부터 군산 하늘 까지를 다 보았다. 택시 뒷자리는 꽤 흔들렸지만 퇴원이라 좋았다. 하늘을 보며 나 지금 항공 퇴원? 웬 호사인가 생각했다. 언제 들어도 불편한 내비게이션의 여성 목소리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하늘이 어디쯤인지 알려주니라 열심이다.


열흘만에 내 집에 왔다. “띠리릭~” 현관문 앞은 오랜만에 나타난 집사에게 투쟁하는 격한 시위 현장을 방불케 했다. 나의 고양이 ‘나뷔’와 ‘벙벙이’는 곧이어 투쟁이 투정으로 온도가 바뀌었고 어찌나 치대던지 나만큼 외로웠을 생각에 눈물이 났다. 미안하기도 했다.


뭐든 혼자 해결하는 편이다. 남에게 부탁을 잘 못한다. 도움이 필요할 일을 만들지도 않거니와 부탁할 생각조차 안 해 버린다. 그날도 사료와 물을 넉넉히 놓아두고는 어떻게든 고양이들이 잘 버텨주기를 바라며 굳게 문을 닫고 집을 나왔었다.


병원 침상에서 마침 연락 온 친구에게 어렵게 부탁을 해보았다. 입원을 일주일 예상했기 때문에 두 번 정도만 다녀가 주면 좋으련만 했다. 수락해준 친구에게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2~3일 치 응가가 쌓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의 입원이 길어졌고 그 친구도 중간에 사정이 생기기까지 해서 냥이와 응가의 피치 못할 동거가 길어졌다.


사료와 물그릇은 언제부터 비었던 걸까. 응가의 푸짐함은 물론이고 길냥이도 이렇지는 않겠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거지꼴이었다. 아니, 얼굴에는 상처까지 있는 게 아닌가. 분리 불안 스트레스 때문에 아마 둘이 격전을 벌인 듯하다. 표정도 화가 나있다.


물부터 주었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주린 배를 채우고서야 냥이들 눈동자에 노곤함이 보였다. 나야말로 누워야 했다. 냥이들이 따라 올라와서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내 양 옆구리에 찰싹 붙어있다. 이것은 우리의 진정한 삼위일체 대형이다. 좌나뷔 우벙벙, 우리는 밤새도록 그렇게 꼼작 않았다.


너무 편안했다. 내 집이 이렇게 좋을 수가..…. 천장의 싸구려 벽지 무늬가 마치 천재 화가 폴락의 액션 페인팅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바야흐로 사방이 명화인 것이다.


입원하러 가는 날, 나는 자못 비장했었다. 전투를 앞둔 병사가 내무반 정리하듯이 꽤 쓸고 닦았다. 서지도 못하고 다리를 질질 끌고 댕기면서 뭘 그렇게 하냐고 엄마는 성화를 냈다. 멀쩡한 몸이 되어 돌아왔을 때 집이 호텔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깨끗하고 정돈된 호텔방에서 쉬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내 심정은 속상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난 오늘 아침 수술하러 가면서 청소를 하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이 디스크 수술은 예정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근 일 년을 몸을 혹사하다시피 많은 활동과 밤샘 컴퓨터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다 운동과 각종 병원 투어는 어느 하나 차도가 없었다. 모든 정황이 수술이란 한 곳을 가리키는 막연한 느낌 끝에 결국 나는 울며 아빠에게 전화를 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허리 디스크는 재발률이 높기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이제 회복이 중요하다. 허리 숙일 일 없도록 어지간한 세간살이들은 모두 가슴높이로 올려야 했다. 수술은 허리인데 손이 무슨 심뽀인지 뭐든 잘 떨어트린다. 인쇄 상태가 정말 조악한 병원의 회복 매뉴얼을 보면, 주울 때는 무릎을 굽히라는데 며칠만 해보면 무릎도가니가 나갈 것 같아 못할 짓이었다.

너무 조악하여 어디다 내놓기 부끄러운 병원 인쇄물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집게’였다. 아파트 뒤 하천 쓰레기 주울 때 쓰던 긴 집게를 다시 꺼냈고 철물점에서 세 개를 더 샀다. 앞뒤 베란다에 하나. 부엌에 하나 욕실에 하나를 비치했다. 바지를 입고 벗는 일은 옷가게에 있는 고리가 달린 긴 작대기가 딱이었다. 집게와 작대기와 함께 하는 완전 신세계였다. 역시 ‘호모 파베르’다.


발가락 양말 신기가 가장 난제였다. 손가락이야 말로 어떤 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엄청난 신체기관이란 걸 깨달았다. 침대에 누워 손가락이 발에 닿도록 몸을 옆으로 활처럼 휘어서 기기묘묘하게 신어야 했다. 머리 감는 건 또 어떻겠는가. 내가 가야 할 길은 최대한 안 씻고 가능한 안 갈아입는 것이었다.


국물 음식은 당연히 불편했다. 눕는 생활에 최고의 반찬은 스팸이었다. 대충 구워서 밥 위에 얹어 침대에 올려놓기, 거기까지였다. 내 허리로 서서 할 수 있는 것은. 누워서 먹는 스팸은 하루 세끼가 다 맛있었다. 손주가 태어난 날 “건강해야겠다”하며 딱 끊었던 우리 아빠의 그 담배처럼, 나도 어느 날 “건강해야겠다”하고 끊었던 너를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너무 힘들 땐 굽지도않고 먹었다는......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는 상투적이지만 또 이만큼 적절한 비유도 없지 않나 실감했다.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와 보탬이 되는 무언가를 보내주었다. 가까이 사는 친구들은 와서는 나의 수술 스토리를 다 들어주냐고 고생쯤 했을 성싶다.


큰 고통을 겪고 나면 대상이 없는 어떤 감정의 앙금이 있다. 수술 부위는 아물었어도 기분 나쁘게 여운처럼 존재하는 ‘마음의 내상’같은 것? 그냥 서럽다. 그걸 속으로 깊이 삭이거나 훌훌 털 심성이 나는 못된다. 맺힌 그 무언가를 친구나 붙잡고 풀 의도는 아니지만 또 이야기하자면 풀어지는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햇빛이 닿아야 쌓인 눈이 녹아내리듯 말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이야기를 매번 반복해도 질리기는커녕 또 그다음 그다음 이야기도 나는 더 할 수 있는데 더 이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현실에 외로웠다.


이 작은 아파트와 누워만 지내는 혼자의 시간은 빠져나갈 수 없는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같았다. 누워서 하는 독서도 만만치는 않았다. 출구없는 고립감속에 손톱만 한 어떤 의욕도 안 생긴다. 젖은 모래 속에 빠져있는 것 같은 날의 연속이었다. 이제나 와줄까 저제나 와줄까. 그들의 시간을 욕망하고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고 서운해하는 나는 상사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보고픔을 토하며 날마다 길어진 꽃술. 뭐든 혼자 해결했고 또 그렇게 사는 게 나 답다고 여겼으면서 정작 혼자 해결 못하는 무언가를 끌어안고 우는 내 모습이 꼭 이파리 없는 꽃......같다.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skwonh85/221902782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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