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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May 30. 2021

방지턱을 넘어

외로움 : 혼자가 되어 적적하고 쓸쓸한 느낌
고독 : 홀로 있는 듯이 외롭고 쓸쓸함


사전 검색 결과는 내 생각과 달랐다. 나는 평소에 고독이란 것을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의 의미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인간이라 하면 삶에 반드시 어느 정도의 ‘고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삶에 한 번도 고독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고독할 줄 아는 사람이 매력있다. 


나와 제일 잘 맞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서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롭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혼자 외식, 혼자 극장, 혼자 산책, 혼자 노래방, 혼자 등산. 나와 마주하는 내면의 고요를 좋아한다. 생의 끝자락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나의 예비 장례식을 치르고 혼자 고독사 하고 싶다.  바람 불면 날이 저무는 것과 같이.


내 안에는 내향성과 외향성이 비슷한 비율로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의 강한 ‘유대감’ 만들기도 좋아한다. 친분과 애착 감정은 너무 따듯하고 부드럽다. 사람을 만나서 왁자지껄 웃고 이야기하는 들떠있는 시간은 내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친구들, 다양한 취향의 모임들, 또 문화생활과 취미 두세 개 정도면 정말이지 외로울 틈이 없다.


‘고독'과 '유대’라는 양 날개의 균형 있는 날갯짓을 위해서 나는 독거 비혼을 선택했다. 독거 비혼이야말로 완전한 자유가 전제되기 때문에 양쪽 세계의 장점을 다 누릴 수가 있다. 현재 법적 상용화되고 있는 가족제도 중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쓸 만한 상품이다. 삼사일을 꼼짝 않고 방해받지 않는 칩거도 가능하며 걸릴 것 없는 바람처럼 누구든 만날 수 있고 언제든 떠날 수 있다. 

그렇게 지금까지 신나게 맘대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나이 오십 즈음에 고비가 찾아왔다. 몸을 다쳤고 건강도 급격히 안 좋아졌고 오래 만난 남자 친구와 이별도 했다. 펀치가 쓰리 콤보 세트로 날아왔다. 마치 힘들게 넘어야 할 높은 방지턱에 걸려버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부딪힌 충격으로 몸과 마음의 나사, 스프링이 여기저기 튕겨나가 버렸다. 반세기 살아온 기념을 이런 식으로 거칠게 할 줄이야.


“방지턱이면 그나마 나아. 넘어가면 되잖아. 나는 진흙뻘이야. 허우적댈수록 빠져나올 수 없어."


선배 말이 위로가 되긴 했다. ‘그래, 그까짓 거 사실 다친 건 잘 나으면 되고 남자 친구는 다시 사귀면 되고 갱년기는 죽을병도 아닌데 뭘’ 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긴 하다. 의외의 복병은 따로 있었다. 아플 때 내내 곁에 있어주었던 녀석. 바로 ‘외로움’이란 녀석이었다. 사람들과 만날 수 없는 신세로 외로움이 길어졌다. ‘고독’과 ‘유대’의 균형은 망가지고 한쪽만 떨어진 시소처럼 고독만 남아버렸다. 지독한 외로움을 알겠다. 내가 이렇게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혼자 살 거야”라고 했을 때 어른들의 흔한 말. “나이 들면 외로워” 나는 이 말을 지금도 인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프면 외로워’라는 것은 이제 확실히 알겠다. 노화와 병마는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니 우리 비혼  독거인에게는 치명타다. 배운 게 있다. 늙더라도 아프더라도 외롭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나이 오십의 방지턱은 시작일 테고 남은 인생은 늙어 갈 일과 아플 일뿐이라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니 그래서 더 외로워질 것이란 것을 받아들이자. 내 마음 같은 걸 신경써주는 사람을 기대하지 말고 제로 베이스를 전제로 하자. 이번 일 년의 고생은 남은 반세기의 외로움을 잘 준비하라는 불친절한 시그널이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 할 것인가? 길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데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이 길 위 어디쯤인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 문제에 부닥쳤을 때 종이를 꺼내는 것이다. 바로 오늘 밤 내가 할 일이다. 몇 개 크게 줄을 긋고는 쓰는 것이다. 문제를 쓰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는 그것이 아닌 것들로부터 바라봐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거, 가지고 있는 거. 하고 싶은 거. 내 지인들을 죽 써본다. 생각나는 대로 써놓고 그냥 보는 거다. 어쩌면 내 삶이 이 종이보다 가볍게 느껴져 허무해 질지도 모르겠지만 해법은 아니더라도 키워드 간의 우연하고도 엉뚱한 연결이 발랄한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만의 특별하고도 귀여운 필살기 하나 장착하면 좋을 것 같다. 

내 남은 인생의 화두는 이제 ‘외로움’

해법이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꼭 극복해야만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잘 견디기만 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을 듯싶다. 한번 외로움이랑 만나보고 나니 다음번에는 처음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덜 당황하여 견딤이 수월할 것 같다.


외롭다고 징징대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재테크나 보험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다. 내 남은 인생의 화두는 이제 ‘외로움’이다. 지금부터 찬찬히 고민해볼 것이다. 오히려 나를 사랑하듯 나의 외로움마저 사랑하며 잘 안고 달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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