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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Jun 25. 2021

우정과 사랑의 변증법

평론가 고미숙을 좋아한다. 고전과 철학만큼이나 남성의 영역이  있을까.  땅에서 보기 드물게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나는  일처럼 마음이 좋다. "가족은 생사만 확인하시면 됩니다" 청중은  터졌다. 말도  된다며 어이없어 웃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나처럼 ‘맞아 맞아하며 반가워 웃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오로지 가족끼리만 뭉치는 . 모든 바깥과의 연대가 빈약한 . 믿을  가족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나는 공감을  못한다. 그런 평소의  생각에 날개를 달고 강연장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동창 친구들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만나서 대학 생활 이야기, 직장 이야기할 때 참 좋았다. 비슷한 시기에 거의 결혼하면서부터 시댁, 육아, 자녀 학원 이야기뿐이었다. 아기 응가로 두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난 그저 놀라웠다. 그 대화 속에서 나는 안드로메다를 체험했다. 화제를 바꾸는 것은 한반도 역사의 물길을 돌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고 듣고 있기만 하자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견뎌내야 했다. 우리는 동창인가 친구인가를 고민하다 결국 나는 ‘동창회는 나가는 게 아니야’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 남은 친구의 상실감을 이해 못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들을 헤아리지 못했듯이 말이다. 결혼 후 만나기 어려워진 친구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었다. ‘가족의 탄생’이 누군가는 ‘가족의 상실’일 수 있다고. ‘친구란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결혼한 친구들의 주말 행사 1순위는 누가 뭐래도 시월드이다. 그러다 보니 2순위는 친정, 3순위는 남편과 외식. 4순위는 남편과 집에서. 5순위는 혼자 휴식. 내 차례는 어감도 별로인 육순위이다.

‘친구'란 내가 선택한 가족

모든 앞 순위가 비어버리는 기적도 발생한다. 바늘구멍을 뚫고 나온 낙타의 심정으로,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짧은 반가움 뒤에는 반드시 친구 가족의 긴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시댁, 남편, 자녀 이야기뿐이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없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내 양손에는 친구 남편의 근황 한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아. 그나마 지난번처럼 남편과 자녀를 안 데리고 나온 것을 다행이라 여기기로 했다.


결혼 전에 우리는 책 이야기, 시사를 이야기했고 지구, 우주, 우리들 이야기를 했다. ‘그래, 육아만 끝나면’ 하는 나의 기대는 틀렸다. 입시의 헬리콥터가 되어가는 친구들을 보아야 했다. “부모인가? 학부모인가를 한번 고민해보는 건 어때?” “대학만을 목표로 하는 공부보다는 스스로 의미를 찾는 자기 주도성이 핵심 아닐까?” 같지 않은 나의 조언이야말로 안 하느니만 못했다. “역시 너는 애를 안 키워봐서 몰라”라는 답변을 듣기도 전에 후회하곤 했다.


반백 살이 되어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우린 서로 힘든 시절이었다. 나는 나만 보았다. 돌이켜보니 친구들의 만만치 않은 노력들이 있었다. 회사 다니며 집안 살림과 지친 육아에 어떻게든 친구라도 한번 만나보겠다고 남편의 양해를 구한다는 것이 간단한 게 아니란 걸 나는 모르니 말이다. “그게 왜 어렵지? 부부는 동등한데” “야,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아” 우리의 대화는 어긋났지만 아직까지 크게 변하지 않고 서로 연락하고 지내고 있는 지금에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다.


친구 이야기는 사실 예민하다. 처음으로 쓸까 말까를 고민한 이유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내 친구가 있다면 특별하지도 않은 나라는 사람을 친구로 생각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70억 인구 중에 나와 연락하고 지내는 내 친구들을 존경한다. 그리고 나는 비혼주의일뿐 가족이 의미 없다거나 가족 반대론자는 더더욱 아니다.


어느 날 그냥 숨을 쉬다가 생각했다. 다인 가정은 마치 샐러드 볼에 담긴 요리 같아서 하나의 소스로 버무려져 있기 때문에 단독 재료로서의 맛을 내기 어려운, 그 그릇의 본질이 본래 그렇겠다는 것을. 가족 구성원의 일상들은 서로의 두텁고도 깊숙한 교집합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 분리가 불가능한 아니, 분리하면 안 되는 중첩된 자아들의 공동체.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것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남편의 근황을 나한테 왜 자꾸만 알려주는 걸까? 왜 주말마다 시댁에는 꼭 가는 걸까? 내가 몰라서 그렇지 그것은 친구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거라는 것을, 나는 그렇게 내 방식대로 공감이 돼버렸다. 그리고 친구에게도 ‘때’라는 것이 있을 테고 나의 긴 안목 없음은 아쉽기만 하고, 인생이란 게 시절에 맡겨야 하는 무언가도 있나 보다는 작은 전술을 찾았다고나 할까.


모든 인연에도 질서가 있다고 한다.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지천에 두고도 못 만날 수 있고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끼리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면 그것만큼 든든한 게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마치 내가 국민학교 때 소 키우는 애들끼리, 혹은 고추 밭농사하는 애들끼리 부족처럼 어울리듯 말이다. 그렇다고 비혼인 내가 친구 따라 결혼을 할 수는 없는 법.


그리하여 나의 태세 전환이 불가피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다. 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바로 지인을 범주화하고 카테고리별로 목록 관리하는 이유이다. 정말이지 이 쓸데없는 신기한 작업을 한지 꽤 오래되었다. 인맥이 아니라 나를 대상화하고 관리하는 이상한 기록들 중 하나이다.


친구 맺기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실연의 감정을 감당해야 할 우정과 사랑보다는 느슨한 연결고리의 관계를 선호하게 되었다. 정체성이나 취향을 기반으로 하는 그 힘을 믿는다. 어쩌면 가족보다 강력한 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예비 무연고자 즉 우리 비혼 독거인끼리 어떻게 하면 서로를 준가족의 테두리에 담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고 싶다. 그래서 아주 아주 나중에는 주거방식까지 함께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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