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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Sep 03. 2020

좌우지간, 인생은 아름다워

남자는 결심했다이번엔 어지간하면 결혼하겠다고. 무조건 얼굴 볼 것도 없이 말이다. 그동안 아가씨를 수도 없이 소개받았단다. 10번까지 세어본 지가 이미 오래다. 맘에 안 들기도 하고 번번이 연결이 안 되어 소개해준 분에게 영 낯이 없단다. 아니, 결혼을 면목이 없어서 하다니. 이런 '따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사람이 있나.

 
집이 즐겁지 않은 여자가 있었다. 여자의 엄마는 늘 술에 취한 새 남편 대신에 행상을 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으니 집안 살림이 이 여자의 차지가 된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여자는 중학교를 마치고 보육원에서도 일하고 화장품 외판원도 했다. 닥치는 대로 일하는 동안 다섯 동생들은 모두 서울대와 이대를 사이좋게 나눠 합격했다.
 
약속한 소개 날, 남자는 여자의 얼굴은 보았으나 청혼은 했다. 맘먹은 게 있었으니 말이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 남자는 유리 공장 기술자였다. 서울이라도 그만한 스펙의 남편감은 쉽지 않았다. 여자는 결혼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욱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잘 베풀고 말재주가 좋아 그 남자 주변엔 늘 사람이 모였다. 모두 부러워하는 가장 좋은 조건은 바로 장남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아들을 둘 낳고 그다음 딸은 뱃속에 품은 채 남자와 여자는 서울을 떠나야 했다. 남자의 형이 부모를 못 모시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부친은 취미는 무능이요, 특기가 도박, 자랑이 외도라 누군들 편히 모시고 살 성싶지 않았다. 특히 남자의 모친은 딸만 연달아 셋을 나은데다가 성격까지 강한 첫째 며느리를 이뻐할 턱이 없었다.
 
“할 수 없지 뭐”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착한 남자는 장남이 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유리 공장 기술자는 하루아침에 농부가 되었고 여자는 남자 동생들의 난닝구와 스타킹을 빨아야 하는 시집살이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쯤 되면 이 여자는 인생 주가 갭 하락이지 싶다. 호미질 한번 해본 적 없는 서울 여자는 서툰 농사일로 시부모한테 구박받기 일쑤였다. 그때는 다 그렇듯이, 그저 부모님 심기만 챙기는 이 착한 남자의 효심만큼 여자의 서러움도 컸으리라.
 
   남자의 형제들은 출가하고도 친정이랍시고 두어 달이 멀다 하고 찾아왔다. 남자의 가훈은 우애였기에 동생들을 매번 잘 먹이고 싶어 했다. 여자는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다. 남자의 형과 그 부인은 상황이 나아져도 시부모를 모셔갈 생각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시부모는 이 여자의 수더분함과 이 남자의 월급이 좋았다. 살고 싶은 자식은 따로 있는 법. 맘 편하고 능력 있는 자식 덕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렸다.
 
여자는 친구가 없다. 놀이터 시소처럼 번갈아 가며 시부모 병 수발하는 동안 서울 친구들과 연락은 이미 다 끊겼다. 자식과 자식이 사준 선물 자랑만 들어야 하는 마을회관엔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서로 같은 서울 생활권인 서울대 이대 동생들은 자기들끼리는 잘 교류하는 듯하다. 희생한 누나, 고생한 언니라고 고마워하는 만큼 이 여자를 조금만 들여다 봐주면 안 될까. 여자는 조금은 덜 외로울 텐데. 살림이 넉넉하다고 마음까지 넉넉하기는 어려운가 보다. 


농사와 공장일, 때론 과수원과 축산업 등 군사정권 경제 개발하듯 무지막지하게 일했고 아들딸 모두 출가하고 남자와 여자는 이제 조금 돈독해진 듯하다. ‘욱’하고 남에게만 다정했던 남자는 이제 설거지도 빨래도 제법 한다. 서로에게는 서로밖에 없는 바늘과 실이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행복하다고 한다. ‘네 아부지가 집안일을 해준다 야. 오래 살고 보니 이런 좋은 날이 온다’고 엄마는 아이같이 웃는다.


두 분의 일생을 각각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 자신의 인생을 가지고 있는 엄마라는 여자, 아빠라는 남자가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서로 만날 당시를 인터뷰할 때는 흥미진진했지만 쓰면서는 많이 울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뿐 멈출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공기처럼 당연히 나와 같이 영원히 존재해야 하는, 나의 반반 생물학적 지분의 보유자, 그들의 무한한 사랑을 내가 천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을까.


내 동생이 있었다고도 했다. 엄마가 낳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아빠의 기억이고, 엄마는 아빠가 지우자고 했단다. 둘은 서로가 틀렸다고 또 티격태격한다. 이래서 같이는 인터뷰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암튼, 50년 전쯤의 내 동생 사건은 진상규명이 꼭 필요할까 싶어서 미제사건으로 남겨두는 걸로 하자. 다시 태어나도 서로 또 결혼하겠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엄마랑 산책할 적마다 난 유쾌하게 물어본다.

“엄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거 같아? 엄마는 인생을 뭐라고 생각해?”

“인생이 뭐가 있니? 목숨 붙었으니 사는 거지”
 
엄마의 대답은 동그라미처럼 쉽고 간결하다. 늘 같은 대답이다. 인생은 뭐가 없다는 거. 이상하게 입에 촥 달라붙는다. 무학의 통찰이로다. 엄마는 나에게 끝없는 이야기, 엄마, 사랑해요. 내가 숨 쉴 때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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