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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부장 Oct 11. 2020

그토록 낭만적인

그토록 낭만적인                               


우리 집 남존여비 사례는 하늘의 별만큼 많다. 가부장적인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추 달고 나온 손주한테는 끔찍이도 지극정성이었다. 그렇다고 살갑지 않은 엄마와 무뚝뚝한 아빠라도 상대적으로 나를 더 챙겨야 하는 기계적 균형도 딱히 없었다. 입을 것에서부터 스킨십까지 나의 대부분 기억은 사랑받는 상황의 반대쪽이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날 할아버지는 계집애가 나왔다며 술에 취해 집에 안 들어왔다는 풍문은 여러 번 들었다. 아장아장 다가가는 나를 할아버지는 툭 밀쳤다고도 했다. 


국민학교 때 목장 호미 사건은 우리 마을에 나름 유명했다. 판문점 도끼 사건은 차라리 귀엽다고나 할까. 바람 끝에 풀내가 나는 봄날. 나물 냉이를 캐기 위해 우린 뭉쳤다. 금광이라도 캘 기세였다. 마을 뒤 언덕 위에 큰 목장이 있었고 올라갈수록 소똥이 거름이 되어 냉이가 실하고 많았다. 중간 소꿉장난도 마다하고 나는 포크레인처럼 호미질을 해대었다. 많이 해가서 칭찬받고 싶었다. 땅거미 어스름이 깔리고 친구들보다 한 움큼은 더 수북한 냉이와 당연히 받을 칭찬 생각에 개선장군처럼 대문을 열어 제켰다. 칭찬이 너무 고팠던 게지, 꿈이 과했다. 나를 맞이한 건 내쫒김이었다.


“호미는 얻다 버리고 온 거냐? 어여 호미 찾아오거라”


아뿔싸, 호미가 왜 없지? 대청마루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온 식구들 어느 누구도 할머니 호령에 토를 달지 못했다. 당연했다. 할머니로 말할 거 같으면 심기가 불편할 적이면 엄마를 내쫓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셨던 권력자였으니. 찌개를 뜨는 숟가락 소리들, 달큰한 반찬 냄새들을 등 뒤로 그대로 돌아서서 내달렸다. 깜깜한 목장을 얼마큼 더듬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더듬다 소똥도 만졌을라나. 호미는 찾았겠지? 대체 호미가 뭐라고? 뭣이 중헌디? 자신이 작은 농기구보다 못한 존재라는 서러움을 꼬맹이는 느꼈을까. 돌아왔을 땐 밥상이 다 치워진 빈 대청마루인 것까지 기억은 한다. 그날 밤 울 엄마는 나에게 늦은 밥은 먹였으려나.


나의 진로를 결정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그날 밤 대화는 나에게는 알파고와 이세돌 버금가는 세기의 베틀이었다. 예상되는 바, 당연히 반대하는 할아버지를 아빠가 설득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었다. 봉당에 앉아 격자 문살에 귀를 바짝 대고 듣는 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버님, 막내요. 인문계 보낼까 하는데유.”

“무신 인문계여. 아니 쓸데없이 여자가 무신 대학이여?” 

“아버님, 막내는 공부하고 싶어해유”

“글쎄, 여자는 공부 필요 없능겨. 여자란 말이다잉 이쁘기만 하면 되능겨.”

“그러니까요, 아버님. 그래서 제 말이 막내는 공부시켜야 돼요.”

“......” 


아군의 판정승이다. 이것은 때는 바야흐로, 이천 하고도 오백 년 전쯤 ‘상대로 하여금 모순을 깨닫게 하고 무지를 자각하게 하여 진리를 얻어낸다’는 그 소크라테스 대화법의 정수가 아닌가? 아빠의 산파술은 전략이었을까. 진심이었을까? 난 기꺼이 확인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절박한 문지방 장면을 비애가 아닌 낭만으로 추억하는 것일까? 눈감으면 그림동화책 표지가 그려진다. 이 윤색의 힘은 아마 모든 옛날이야기에는 낭만이 있어서이겠지. 


그게 마지막이었다. 할아버지가 결정한 내 인생 말이다. 그 후론 내 진로는 내가 선택하며 살았다. 오롯이 서 있는 독립적인 주체로 아주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상황이 호락하질 않다. 호적에 잉크 마르고부터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어디 여자가’라서일까 차별에 물들어 무엇을 바도 차별의 의미로 여기는 것일까 차별 자극에 반응하는 역치가 남들보다 낮아졌다. 맞닥뜨리는 각종 성차별 발언에 부지런히 딴지를 걸어야 했다. 인간관계에 그다지 플러스 요인이 아니라는 타협의 교훈도 얻어야 했다. 부작용도 있다. 남보다 열심히 직장 생활하는 나 자신을 일을 사랑하는 요즘 보기 드문 커리어우먼인 양 스스로 프라이드로 착각해왔다.  내 병명이 인정 욕구와 애정 결핍이란 것이 진실이었다. 뭐든 잘하려고 하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인지 남의 평가와 칭찬을 위한 것인지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나 자신이 싫어지는 것이다. 나는 왜 나일까를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사춘기가 길어졌다. 내 감각과 사유의 뿌리가 닿는 그 먼 곳은 늘 그때 그 시절이다.


완벽한 인간이 어딨으랴? 어리둥절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모두 실수하며 허둥대고 잘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 넘기듯이 그렇게 죽어 사라지는 존재가 인간인 것을. 인간을 아주 잘 위로하는 말이로다. 그때 못 누린 내 몫의 보상 대신 내가 인간을 위로해주는 것으로 나를 위로 삼으련다.


나의 취향은 철들지 않는 어른


나의 어린 시절은 빈약한 풍요였다. 곳간 열쇠를 쥐고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열심히 살지만 타이틀이 효자인 아버지, 시집살이에 늘 고된 곰 같은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의 애정을 독차지하는 큰오빠, 작은오빠. 풍요로운 대가족에서 계집애인 나의 존재는 빈약하기가 짝이 없었다. 많은 것이 아니 모든 것이 오빠들 것이었다. 단어조차 유물 냄새 풍기는 남존여비, 그 사례는 군산 밤하늘의 십자가만큼이나 많다.


우리 집은 일찍이 앞서 공유 경제를 실천했다. 오빠의 소유물들이 나에게 강제 공유 당했는데 장난감이 그 대표 아이템이었다. 나의 것은 있을 수 없다. 오빠들 따라다니는 구슬치기, 자치기, 딱지치기, 그 흙먼지 현장이 나의 다큐였다. 


 나에게는 구슬치기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기억이 있다. 거머리 구슬이다. 구슬을 다 잃어서인지 쇠구슬에 대적할 신무기가 필요해서인지 그날 오빠와 논으로 간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물 댄 논에서 통통하고 기름진 거머리를 잡아 논물에 두어 번 흔들어 씻었다. 거머리 끝에서부터 돌돌 동그랗게 바짝 말아야 한다. 움찔거리며 스스로 몸을 펴기 전에 얼른 땅에 굴려 마른 흙으로 토핑을 해야 한다. 토핑의 두께가 일정해야 하는 장인의 섬세한 수작업이 동반되었다. 그렇게 해주면 영락없이 딱딱한 구슬이 되었다. 그걸로 많은 구슬 수익을 냈었다. 구슬치기 게임이 끝나면 그 거머리 구슬을 다시 논물에 방생했다. 물이 닿으니 신기하게 흙이 풀어지고 거머리는 몸을 쭉 펴며 제 갈 길을 유유히 갔다. 77억 지구인 중에 나와 오빠만 아는, 참으로 진귀한 추억이다.


그런 길바닥 인생의 나에게 인형은 정말 그림의 떡이다. 친구의 알록달록 종이 인형을 나도 갖고 싶었다. 잘 사는 친구의 마로니에 인형 하나 얻으려면 나는 무엇을 내주어야 하나? 답이 없는 질문이란 것쯤은 아는 어린이였다. 봉제 인형 정도 되면 이 세상 것이 아니라고 빨리 인정해버리는 것이 낫다. 곳간에 쌀가마니가 그득하고 노름으로 사회에 환원을 하실 재물은 있으셔도 손녀 인형 사 줄 돈은 없는 것이 할아버지의 계획 경제였다.

그러니 ‘커서 돈 벌기만 하면 방 하나는 인형으로 몽땅 채우고 말겠어’라는 꿈을 품지 않을 수가 있나. 나만큼 기골이 장대하고 커다란 곰 인형을 누가 선물이라도 해준다면 아마 들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좋아 죽는다는 게 이거구나’ 하며 숨이 멎어 그 자리에서 혼절할 테니 말이다. 내 인생에 그런 드라마 본부장님들은 캐스팅이 안됐으니 그냥 내가 나에게 선물해주어야 했다. 


친한 후배 생일날, 모름지기 선물의 가장 안 좋은 사례, 받고 싶은 걸 선물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다. “저거 주세요. 큰 곰 인형이요” 받으며 좋아할 잠시 후의 후배를 상상하니 기뻤다.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 “같은 걸로 하나 더 주세요” 두 마리를 들고나와서는 한 마리는 집에 갖다 놓고 한 마리만 들고 다시 출발했다. 비로소 가벼운 발걸음에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하여 나의 취향은 ‘키덜트’이다. 이젠 예전의 오빠들의 작대기나 딱지 쪼가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진보한 나의 장난감은 바로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했던 존재, 바로 ‘공룡’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공룡을 보고 있으면 신비하고 주술적인 힘을 느낀다. 할아버지 세상보다 더 크게 나아진 것도 없는 이 정글에서 그 힘을 갖고자 하는 소망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앞발톱을 가졌고 이족보행을 햇을 테리지노사우르스는 정말 멋있다. 목과 꼬리가 긴 거대 초식 공룡, 아파토사우루스를 제일 좋아한다. 닭이 공룡의 후예인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이다. 공룡은 멸종하지 않았다. 백숙, 치킨, 너겟으로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한다. 지금은 인간에게 이 지구를 내주었지만 언젠간 다시 되찾으려는 전복의 꿈을 갖고 있을지도. 


몇 달을 내내 월급날이면 설레는 맘으로 대형마트 아동 코너에서 공룡들을 만났었다. 그들도 마치 한 달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진열대의 용맹한 공룡들을 보고 있으면 직원이 다가와 아드님이 좋아할 거라며 티라노 한 녀석을 추천해준다. “왜 그러세요? 저 자녀 없어요. 내 꺼 사는 건데요?” 민망함은 직원의 몫일 뿐. 반백 살이 다 돼가는 여자 어른이 공룡이라니. 웃겨도 어쩔 수 없다. 이름도 어려워 다 못 외우는 우리 공룡 패밀리들을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나오면서 행복하다. 


평소 철없다는 말을 듣는 편이다. 나는 그게 좋다. 철들지 않아서 좋다. 철들지 않는 어른이 나의 취향이다. 감탄사를 잘할 줄 아는 어른,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 어른, 입꼬리 올라갈 장치를 주위에 둘 줄 아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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