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쳤다. 회사 말고 내 밭으로 출근하면 좋은 점이 많다. 그중에 좋은 것 하나는 바로 아침마다 화장을 안 해도 되는 것이다. 더불어 머리도 안 감아도 된다. 대략 며칠을 안 감아봤는지 기록을 따져본 적이 있는데...... 그 실상을 알면 독자로 하여금 구토를 유발할 염려가 있어서 안 밝히는 게 좋을 것 같다.
처음 하루 이틀이 가렵지 문제 될 게 없다. 너무 편하다. 샴푸도 아끼고 아주 좋다. 머리만 안 감아도 외출에 걸리는 시간은 4분 23초면 충분하다. 그래서 내 외출 패션의 화룡점정은 모자이며 떡진 머리를 감싸 안아주는 집안에서의 두건은 의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맨 얼굴, 떡 진 머리 그리고 모자. 성스러운 진격의 삼위일체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화장하고는 달리 선크림은 발라야 한다는 것을 안 지는 얼마 안 되었다. 그것도 잘 까먹어서 맨얼굴로 밭에 다녀오기 일쑤이다. 그렇게 맨얼굴로 텃밭농사를 2~3년 하다 보니 어느 날,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는데 왼쪽 눈 밑에 거뭇거뭇한 게 있다. 드디어 맨얼굴과 비위생의 콜라보가 탄생한 것인가.
‘이게 말로만 듣던 기미구나.’
기미가 뭔지 모를 때가 있었다. 주근깨는 보지 않아도 말에서처럼 깨라는 형상이 그려지니까 저절로 알 수가 있는데 대체 이 기미란 무엇이란 말인가,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 것을 느낌으로 알아차릴 때 쓰는 ‘어떤 기미가 보인다’ 할 때 그 기미가 혹 이 기미일까? 암튼.
‘기미 주근깨’라는 말은 왜 꼭 ‘영정조’처럼 한 세트로 불릴까도 궁금했다. 정조의 개혁 군주 이미지가 워낙 좋은 평을 얻다 보니 영조를 정조의 업적에 은근이 업어 태우려는, 노론 후손들의 음모가 반영된 거라는......, 그래서 “영정조 시대“라는 프레임을 어쩌고 저쩌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있는 것도 같고...... 그럼 기미 주근깨는 왜지?
어느 날,
모르면 보고도 모르는 법, 일치감치 기미로 고민하던 친구가 있었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보았었다.
“기미가 뭐야?”
“있어 그런 거. 엄청 스트레스야.”
“기미가 뭐지? 기미상궁?”
“야. 너는 기미 없다고 나 놀리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