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밭농사하면 좋은 점 중에 또 하나는 옷이 많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회사 다닐 때, 월화수목금금금을 같은 옷만 입고 출근하는 남자 직원이 있었다. 똥**이 찢어지게 가난할 걸까? 아니면 검소한 걸까? 어쩌면 같은 옷이 7벌인 패션 변태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에, 가방은 루***똥이고 하루도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는 법이 없는 여직원도 있었다. 모든 직원이 그 여직원의 옷이 몇 벌일까를 궁금해했고 아마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일 것이다.
퇴사하면 옷 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의 기존 출퇴근복으로는 백수복으로 쓸만한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삼일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퇴사한 첫 해에 엄청 사들인 것은 계절별 ‘잠바’였다.
막 입기 좋다는 잠바, 막 사는 백수복으로도 딱이다. 텃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잠옷, 평상복, 외출복이 다 동시에 가능하다는 특장점이 있다. 풍성한 허리와 잘록한 가슴, 기골이 장대한 나의 저주받은 체형을 커버해주는 감사한 기능도 갖춘 것이 잠바이다.
여름엔 여름 잠바와 레깅스, 겨울엔 겨울 잠바와 솜들은 절 바지, 이것은 잠바와 기똥차게 어울리는 패션이며 나만의 꿀팁이로다. 잠바에 모자가 달렸다면 아마 대여섯 살은 어려 보일 수도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어쨌든 옷장에 풍성한 잠바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진짜 옷 살 일이 없어서 참 좋다.
얼마 전, 고구마를 캐느라 무리했는지 허리디스크가 다시 재발한 듯 아팠다. 침을 맞고 뒤뚱거리며 나오는데 주차장까지 시장 거리를 걸어야만 했다. 그런데 아주 오래간만에 눈에 들어온 잠바 하나, 침 맞으러 갈 때도 그랬고 나와서도 또 눈에 들어온 아까 그 잠바. 튀지 않는 고~상한 쥐색이 탐났다.
일단 지나쳤다. 이제 차까지는 다섯 발자국 정도 남았나? 고지를 눈앞에 두고는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딱 이만 원. 이만 원이면 사겠어.’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사장님은 어느새 나와서 나를 보며 반갑게 서있었다. 마치 한 마리 가젤을 바라보는 아마존 초원 치타의 눈이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다시 돌아설 수는 없는...... 올가미에 착 걸린 느낌이랄까? 승패는 이미 갈린 듯 한 이 예감을 쳐내지도 못하고 불로 뛰어드는 나는 불나방이었다.
“어서 오세용~”
“음......얼마에요?“
“3만 원이에용~”
“아...... 좀 비싸서......”
“5천원 깍아주께용~. 아침이니까”
지는 싸움에 쨉이라도 날려보았지만 내 손엔 어느새 검은 봉다리가 들려있었다. 사장님들은 비싸다고 할 손님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손님이 예상할 금액에다 살짝 얹어서 부르는데 도가 트신 분들 같다. 배고플 때는 장보는 게 아닌데 말이다. 아플 때 역시 아프니까 나한테 더 잘해주자는...... 아무 데나 명분을 갖다 붙이는 실수. 하룻밤 자고 아침에 그 잠바를 보는 순간 드는 생각.
‘으으으, 저 칙칙한 쥐색. 저걸 나는 왜 샀을까?’
결국 이 잠바의 운명은......? 다음 밭에 갈 때 가져갔다.
“엄마, 엄마 줄려고 작업복 하나 샀어. 이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