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킴 콘서트에서 미공개곡을 듣고
최근 갔던 폴킴 콘서트에서 그의 미공개곡을 들었다. 제목은 '난 기억해'. 지나버린 관계를 향한 어쩔 수 없는 체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가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심장박동처럼 깔린 담백한 연주에 한 글자씩 꾹꾹 눌러 발음하는 폴킴의 목소리는 마치 누군가에게 편지를 진심으로 써내려가고 그 편지의 한 귀퉁이, 한 귀퉁이를 고이 접어가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다 어떤 가사에서 마음이 넘어져 버렸다. 철학입문 수강했을 때 교수님이었던 철학자 강신주는 넘어지면서 사유가 시작된다고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걸을 땐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지만 넘어지는 순간부터 상황이 달라지면서 자극을 받고 생각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흘려듣지 못하고 못내 마음에 걸렸던 가사는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이랬다.
사실 나 많이 서운했어...
듣는 순간 최근에 들었던 가사 중에서 가장 솔직한 마음이 느껴졌다. 서운함을 직접적으로 노래한 가사도 잘 떠오르지 않기에 이런 감정을 다룬다고?라는 생각도 했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이미 계절처럼 지나가버린 시점에서야 털어놓는 그때의 마음. 완벽히 끝나버린 관계엔 대체로 털어놓지 않을 마음. 그러므로 "서운했다"는 말은 다시 말해 관계의 한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마음이 아닐까?
나에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서운함을 덜 느끼는 연습이었다. 사람에 대한 낙관과 기대를 순진하게 낭비하지 않기가 우선이어야 했다. 기대하게 되면 바라는 만큼 되지 않았을 때 서운함이 생겨버리기에. 서운함의 대상으로서는 황당할 수도 있을 노릇이다.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을 기대를 한아름 떠안게 돼 소화시키지 못할 수도 있는 건데 대뜸 서운하다니.
아직 어른 연습이 덜 됐는지 여전히 서운함을 때때로 느낀다. 나의 고질적인 병은 서운함이 쌓이다 보면 그 서운함으로 관계의 벽을 쌓는다는 거다. 그냥 이야기하고 풀면 좋을 텐데 상대에게 느끼는 서운함을 고백하지 못하겠다.
이미 수도 없이 서운함을 느끼게 한 상대에게 말해봤자라는 회의감이 짙은 게 우선이다.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어른스럽지 못하고, 속된 말로 짜치고 찌질해보여서 더 그렇다. 그간 내가 더 좋아해왔던 것 같아서 창피하기도 하고.
폴킴의 미공개곡을 들으며
내가 잃었던 관계들을 떠올렸다.
"사실 나 많이 서운했어"라는 가사가
얼마나 솔직한 것인지 마음의 깊이를 재보았다.
"뭐가 문젠데", "차라리 잘못된 걸 말해줘",
"이야기 좀 해"라는 말을 견디지 못하고
무정차 구간을 지나는 열차처럼
도망갔던 나를 기억한다.
내가 너무나 하지 못하는 말,
그때 했어야 했던 말이 노래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