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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림 Nov 27. 202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늦은 감상문

"Nothing matters." "Then I'll cherish."


150분 러닝타임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앞으로, 옆으로, 뒤로, 어느 방향이든 더 멀리. 영화는 전진하지 않는다. 지나가고, 흘러간다.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내가 뭘 본 거지 싶은 150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세월이 쏜살같이 흐르는 누구나의 삶처럼.


이 영화를 추천한 사람에게 어떤 내용이냐고 물었다. 그는 멀티버스가 배경이긴 한데 그렇게만 설명하긴 곤란한듯 일단 봐보라고 했다. 왜 설명을 못하지 싶었는데 보니까 알겠다.


악과의 대립과 멀티버스가 큰 축이긴 하지만 히어로물은 아니고, 선악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인공이 히어로가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마냥 B급 코믹 영화도 아니며, 휴먼 드라마라고 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인간 같은 영화다. 입체적 성향을 지니고 있어 뭐라 딱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존재 말이다.




엄마 에블린과 딸 조이는 서로 대립하며 여러 멀티버스를 거치며 변태하는데, 그 중 둘이 돌이 되었던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정신없이 몰아치던 영화가 갑자기 사막 혹은 미지의 행성 같은 풍경으로 배경도 단순해지고 소리도 없어져 몰입도를 높였다. 거대한 우주에 덩그러니 놓인 돌맹이 둘이 어떤 소음의 방해도 없이 주고받는 대화. 목소리 없이 자막으로 진행됐으니 어쩌면 마음을 주고받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돌이 나라는 존재 같다고 느껴서 그 장면에 더 이입했다. 살아있다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다. 생존을 위한 매일의 투쟁을 나 스스로 기어코 해내야만 한다는 불가피한 실존적 외로움이 첫번째다. 사회적 동물로서 하는 관계 맺음과 언어의 사용은 존재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더 깊은 외로움에 빠져들게 한다. 이 영화에서도 보여주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개전투로 살아남기란 팍팍하고 피를 주고받은 가족조차도 각자를 이해하기 힘들잖은가. 이 넓은 세상에 덩그러니 놓인 돌이 우리 같았다.



그럼에도 이 돌멩이들은, 그러니까 에블린과 조이는 물리적 간격을 어떻게든 좁혀가며 마음을 주고받는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낙관과 노력이 아름다워서 눈물이 찔끔... 타인은 지옥이고 매일이 투쟁인 이 삶도 지옥이지만 시지프스처럼 어떻게든 떠내려오는 돌을, 덮쳐오는 바위를 밀고 또 밀며 살아낸다. 살기로 한 이상 애쓰는 것이다.




사실 조이의 "Nothing matters."에 끄덕이는 편이다. 한국 관객들은 일찍이 "뭣이 중헌디?"라는 명대사에 강하게 흔들린 바 있다. 죽으면 끝나버리는 이 삶에서 도대체 중요한 게 있기라도 한 걸까. 이 물음엔, 손에 쥐고 있지만 누구도 채점할 수 없는 답안지가 각자에게 있을 것이다. 답과는 별개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새삼 생각했던 삶의 태도는 다정함이었다.



하루에도 몇 명의 지옥을 건너며 몇 번의 투쟁을 하며 살아가다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머나먼 이국에서 안간힘을 써가며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처럼 생활에 매몰될 땐 내가 걸어다니는 지옥이 될 때도 있다. 시간이 없어 초조해하고 누군가에게 쉽게 짜증을 내고 결과에 조급해지고. 지친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각자의 존재를 인지하는 다정함이다.


오이시쿠나레 모에모에뀽 황금향에게도 서사 부여 완


이해해보려는 시도와 알아줄 것 같은 기대가 교차되는 시점에서 다정함이 생긴다. 다정함이란 김춘수 시인이 이름을 불러서 꽃 한송이 되게 했듯, 돌멩이에 눈알 스티커 붙여서 몰개성을 넘어 서사를 부여해 존재를 완성시키는 일이다. 끝도 없이 깜깜한 도넛 구멍에 빨려들어가지 않게 우리를 삶에 붙여줄 아교가 바로 그 다정함이다. "Nothing matters."에도 불구하고 "Then I'll cherish." 이 두 대사를 잇고 싶어서 이렇게 장황하게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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