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때린 남자, 내가 아는 남자였어.”
남자는 10미터 높이의 크레인 위에서 거대한 돌망치로 초등학교의 벽을 내리치고 있었다. 희주와 무원은 남자가 벽돌로 된 벽 한 면을 부수는 모습을 밑에 서서 지켜보았다. 작업은 뙤약볕 아래서 계속되었다. 1시간 만에 땅으로 내려온 남자의 검게 탄 뺨은 땀과 먼지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누나는 당신들 때문에 죽은 겁니다. 당신들은 신경도 안 쓰겠지만.”
남자는 희주와 무원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대체 이제 와서 궁금한 게 뭡니까?”
“누님께서 어떻게 강 대표 별장에서 일을 하게 되셨죠?”
“매형이랑 갈라서고 돈 때문에 고생하다가 자기 같은 여자들을 도와주는 경찰을 만났다고 했어요. 덕분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좋아했죠.”
“그러면 경찰이 별장 가사도우미 일을 소개한 건가요?”
“네. 경찰이라는 것만 들었어요. 유명인이라 집도 좋고 결혼도 안 해서 어지르는 애도 없어 일이 편하다고 했어요.”
“혹시 이 사람이 누님께 일을 소개한 경찰인가요?”
희주는 최준석 사진을 띄운 휴대폰을 내밀었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매형이 때려서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그때 출동한 형사라고만 들었어요. 누나 처지를 알고 나중에 일을 소개해 줬다고 했어요.”
“확인해 보니 누님께서 성폭행으로 신고를 하셨더군요.”
“하지만 그 인간들은 누나를 꽃뱀으로 만들어요.”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누님께서 오히려 고소를 당하셨죠.”
“누나가 예전에 술집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폭로했어요. 그때부턴 아무도 누나 말을 안 믿어줬습니다. 동영상을 증거로 제출했는데 담당 검사는 누나가 찍은 게 맞느냐고 계속 몰아붙였어요. 남자들 앞에서 영상을 계속 돌려 보게 했죠. 그게 얼마나 기분이 더러울지 상상이 됩니까?”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 캡처한 화면을 찾아 내밀었다.
“주용훈. 더러운 새끼.”
희주와 무원은 마주 보았다.
“결국 누나는 명예훼손으로 천오백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어요. 그 판사, 검사 새끼 때문에.”
희주는 이덕식 사진을 남자에게 보여 줬다.
“보름 전에 사망했습니다. 망치로 맞아 죽었죠.”
남자는 자신이 전부 손으로 깬 학교 외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 아닙니다. 그런 생각도 해 본 적 없어요. 전 그냥 누나가 얼마나 분했을까, 술집 여자가 꽃뱀으로 한 재산 벌어 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원통했을까, 그 생각만 했어요. 그래서 달걀을 집어 던졌죠. 개망신이라도 주려고요.”
“강희건 변호인이 누님 과거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남자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내밀었다.
“예전에 누나랑 같이 일하던 여자였어요. 저도 본 적 있죠. 같은 처지라고 서로 챙겨 주는 것 같았는데.”
희주는 여자 번호를 저장했다.
“망치에 맞아 죽었다니 곱게는 못 갔군요. 누난 자기가 죽어야만 세상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어줄 거라고 가계부에 유서를 남겼어요. 그 밑에는 내지 못한 휴대폰 요금이 적혀 있었고요.”
희주는 말없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누나가 죽고 나서도, 그 일을 다시 조사하겠다고 찾아온 경찰도 없고 기사도 하나 안 났습니다.”
여자는 다세대 주택들이 늘어선 골목에서 백반과 분식을 파는 식당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기름때가 전 테이블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희주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전 화류계 바닥 룰을 어겼어요. 그래서 이 짓을 하는 거죠. 친구를 팔아먹은 년은 더는 그 바닥 일 못 해요.”
“룰을 어긴 이유가 있으셨겠죠.”
희주를 대신해 무원이 물었다. 여자는 다리를 꼬며 무원을 응시했다.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지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해석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여자였다.
“세상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는데, 찾아온 남자가 무서웠어요. 덩치가 굉장히 큰…… 사실 덩치보다 인상이 더 무서웠죠. 친절한 듯 보이면서 잔인해 보이는 남자였어요. 여차하면 나 같은 건 아무도 모르게 파묻고도 남겠다 싶은 남자였죠. 친구 사진을 보여 주면서 술집 시절 사진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어떻게 생긴 남자였는지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무원은 녹음 중인 휴대폰을 여자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당시 30대 중반쯤? 더 됐을 수도 있고. 입술이 얇아서 별로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구레나룻이 굵었는데 일부러 손질한 것 같았어요. 향수 냄새도 진하게 났고. 유독 인상적이었던 게 있는데.”
“그게 뭐죠?”
“형사님도 명품 셔츠를 입으시나요?”
“네?”
무원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되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자기가 뭘 입었는지 새삼스레 확인했다.
“그 남자, 톰 브라운 셔츠를 입었어요. 남자 연예인 누가 입어서 유명해진 브랜드였죠. 손님을 받을 때 그런 걸 파악하는 건 기본이니까, 바로 알아봤죠. 형사 월급으로 저런 걸 사 입을 수가 있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무서워서 오줌이 찔끔 나오고 다리가 덜덜 떨리면서도 그게 눈에 들어오다니. 나도 정신 나간 년이지.”
“그런 건 얼마나 하는데요?”
희주가 불쑥 끼어들었다.
“150만 원쯤?”
“꽤 비싸네요.”
“비싸죠.”
여자는 말을 마치고 일어나 떡볶이 철판을 주걱으로 저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무서워요.”
“뭐가 무서우세요?”
“경찰 뒤에 더 무서운 사람들이 있다는 거요.”
“그 남자에게 협박을 당하셨나요?”
“아뇨. 절 협박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런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돼요. 형사가 나서서 술집 여자를 찾아왔잖아요. 그리고 조폭처럼 말했잖아요. 그럼 그 사람 뒤에 누가 있겠어요?”
희주는 아무 말 없이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여자는 혈색 없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리고 시선을 살짝 떨어뜨렸다. 그녀의 시선은 빛이 바랜 미끄럼 방지용 주방 슬리퍼에 꽂혔다.
“……친구가 죽은 거에, 제 탓도 있겠죠. 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요. 나 때문에 죽은 거라고. 걔도 한 번쯤은 평범하게 살아 보고 싶었을 텐데.”
무원은 빠르게 걸으면서 여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했다. 새로운 인물이 튀어나왔다. 이덕식, 주용훈, 최준석, 강희건과 연결되어 있는 제3의 인물, 거구의 형사. 명품 셔츠를 즐겨 입으며 위압감을 주는 체격과 눈빛.
“10년 전 인상착의만 가지고 찾을 수 있을까요?”
무원은 대답도 없이 뒤처져서 천천히 걷고 있는 희주에게 다가갔다.
“선배, 어디 안 좋아요?”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한 존재일까? 하지만 착한 인간도 있잖아. 그러면 인간의 본성은 악한 걸까, 착한 걸까?”
“인간의 본성이 악할 수도 착할 수도 있죠. 애초에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한 건 인간의 본성이 어떻든 간에 인간은 언제든지 악할 수 있다는 거예요. 결국 그것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악해지려는 자신과의 싸움.”
희주는 무원의 말을 곱씹었다. 악해지려는 자신과의 싸움. 이덕식과 주용훈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 강희건 때문에 자살한 한 여자도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 차라리 살면서 복수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
“아기 말이야…… 결국엔 죽었어. 사실 내가 지우고 싶은 기억은 남자에 대한 게 아니야. 아기가 죽었다는 거, 그걸 지우고 싶어. 아기가 죽지 않고 건강해져서 엄마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런 결말은 안 되는 거야? 아기가 엄마와 함께 한국을 떠나 엄마의 고향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그런 평범한 결말은 왜 허락되지 않는 거야?”
3개월 정직 처분을 받고 공황발작과 폐소공포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 희주는 매일 소아 중환자실로 아기를 보러 갔다. 간호사들은 돌아가면서 아기를 품에 안았다. 마치 그네들의 온기로 아기를 살릴 수 있다고 믿는 선한 천사들 같았다. 아기는 영양실조와 두개골 함몰로 고통받다가, 결국 죽었다. 세상에서 이런 식으로 고작 백일을 살다가 죽었다. 그 생각을 할 때면, 희주는 자신의 머리통이 부서진 듯 아픔이 느껴졌다. 그 상상의 아픔 또한 아이가 당한 고통의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나면 심장이 옥죄어들었다.
“아기 시신을 찾으러 온 사람은 없었어. 죽은 아기를 찾으러 올 만큼 아기를 생각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었어.”
병원 화장장에서 아기를 화장할 때, 간호사들이 분유와 간식을 같이 태워 달라고 화장장 직원에게 부탁했다는 걸 나중에 들었다. 사는 내내 배고픈 아기였기에 간호사들이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아기를 찾으러 올 사람이 하늘에는 있으면 좋겠네요. 간호사는 마지막으로 소아 중환자실에 들린 희주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게 다예요? 선배가 기억을 지우고 싶은 건 아이가 죽었기 때문이고, 그 최악의 결말 때문이에요?”
희주의 몸이 흔들렸다. 무원의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숨이 막혔다. 이유를 알고 있다. 누가 붙잡고 흔든 것처럼 자신이 휘청거리는 이유를.
“……아니.”
“그럼 뭐가 더 있어요?”
“아기를 때린 남자, 내가 아는 남자였어.”
무원은 희주의 말이 곧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남자를 만난 적이 있어. 내가…… 그 남자를 풀어 줬었어.”
희주는 최초 신고를 받고 응급실로 출동했다. 그전에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 응급실 당직 의사였다. 늘 피곤하고 시니컬한 의사의 목소리가 그렇게 떨리는 건 처음이었다. 응급실 입구에서 희주를 기다리던 그는 희주를 보자마자 빠르게 말했다. 3개월령 아기예요. 아직 백일도 안 지난 것 같고요. 아기 머리통이 조각조각 나 있어요. 젤리 같이 몰캉거려요. 희주는 러닝화에 알코올을 뿌린 보호 덧신을 신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의사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기를 보고 나서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의사가 설명한 그대로였다.
희주는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는 베트남 아기 엄마에게 남편 전화번호를 물었다. 희주는 의사에게 혹시 아기 엄마에게도 폭행 흔적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옆집에 산다는 중년 여자가 아기 엄마와 함께 앉아 있었다. 여자는 집에서 가끔 뭔가 부딪히는 큰 소리가 났다며, 언젠가는 이 사달이 날 줄 알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생각을 했으면서 어째서 한 번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은 걸까. 나중에 주변 이웃들을 조사한 담당자에게 들으니 소란한 소리를 들은 것은 중년 여자뿐이 아니었다. 이웃들은 경찰이 방문하자 그제야 반 친구의 비행을 이르는 아이들처럼 다투어 자신들이 보고 들은 폭력의 증거를 내밀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아기의 집을 찾아가서 말리지 않았다.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누구도 나와 보지 않았다. 남의 집 부부싸움에 끼어들기 싫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더워서 나가기 귀찮았던 걸까.
희주는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당신이 아기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당장 신고만 했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 모르잖아. 당신들이 못 들은 척했기 때문에 아기 머리통이 박살 난 거야. 불길하고 불안한 기분이 등덜미를 타고 내려와 앉지도 못한 채 응급실 안을 서성였다.
희주는 30분 뒤에 나타난 남자를 보고 놀랐다. 다음 순간, 남자를 때리고 있었다.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하고 도망치다가 잡힌 남자였어. 신고를 받았을 때 마침 내가 근처에 있어서 현장에 갔거든. 집에 어린 외국인 아내와 아기가 있다며 잘못했다고 빌기에 돈을 조금 줘서 돌려보냈어.”
남자는 희주가 준 돈 10만 원으로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 아기를 때렸다.
“내 어설픈 선의가 끔찍한 결말로 돌아온 거야. 내가 돈을 줘서 돌려보내는 대신 유치장에 처넣었다면, 그날 아기를 때리지 못했을 텐데. 내가 풀어 주는 바람에 그놈은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갔어.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기 울음소리가 거슬린다며 리모컨으로 아기 머리를 갈겼어.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야…….”
희주는 말을 마칠 때까지도 무원이 자신이 쓰러지지 않도록 등과 팔을 받치고 있다는 걸 몰랐다.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희주는 가까스로 몸을 세우고 입을 열었다.
“먼저 들어가. 만날 사람이 있어.”
무원은 한숨을 토했다.
“이제 괜찮아졌어. 쓰러진 것도 아니고.”
희주는 정신을 차릴 요량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상태로요?”
“명품 셔츠 입은 형사 찾아야 하잖아.”
“그래서 누굴 만나려고요?”
“전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