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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젠틀우먼 14화

14 이 사건의 결말

"슬픔은 피 묻은 휴지처럼 눈에 선명한데.”

by 김은주

“오케이! 드디어 왔다.”

희주가 휴대폰을 들며 말했다.

“뭐가요?”

“단서.”

자정이 가까운 시각, 강력6팀 자리에는 희주와 무원뿐이었다. 희주에게 전화를 건 것은 주용훈 변호사가 사는 빌라 관할구역의 파출소 순경이었다. 사실 별 기대는 없었다. 이 동네 유명 인사가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파출소는 사건과 관계가 있든 없든 몸살을 앓았을 터. 처음 찾아갔을 때 순경은 혹시 기자들한테 정보가 새어 나가지는 않을지 경계했다. 희주는 언론과 접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뭐든 좋으니 연락을 달라고 했다.

“변호사님께서 직접 신고를 하셨습니다.”

순경이 말했다.

“파출소로요?”

“네. 날짜를 보니 한 달 전이네요. 시간은 자정 무렵이고요.”

“무슨 일이었나요?”

“한밤중에 괴한한테 기습을 당했다는 신고였습니다. 자택 근처에서 벽돌로 뒤통수를 가격당했다고 했습니다.”

“잡았나요?”

“아뇨.”

“CCTV는요?”

“그게… 하필 근처 상가가 재개발 중이라 주차된 차도 없었고 감시카메라도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사각지대였죠. 출동은 했지만 목격자도 없었고 주변 감시카메라에도 찍힌 것이 없어서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없어진 건?”

“없습니다. 지갑도 그대로였고 시계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롤렉스였는데.”

“그럼 그냥 벽돌로 뒤통수를 내려치고 튀었다는 건가요?”

“네. 황당하지만 그게 답니다.”

순경과의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목격자도 CCTV도 흔적도 없는 한 밤의 습격. 기대했던 단서 대신 남은 것은 거대한 의문뿐이었다.

“그래서 집에 방망이를 뒀군요. 나 같으면 이사 갔을 텐데.”

무원은 희주의 책상에 걸터앉아 한숨을 쉬었다.

“경찰 맞아? 잡을 생각을 해야지.”

“우린 뭐 목숨이 2개에요?”

“피해자들 말이야, 더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남들보다 더 버는 만큼 잠도 더 잘 자고 건강도 더 챙기면서. 주용훈은 일을 제대로 못 했을 거야. 무료로 이혼 상담이나 해주는 게 딱 적당했던 거지. 난 최준석이 주용훈이 썩어 가고 있다는 걸 알았을지 의문이야.”

“알았으니까 박세하 박사를 소개했겠죠.”

“범인은 왜 두 사람을 죽였을까? 뭘 원한 걸까? 왜 두 사람은 기억을 지운 걸까?”

“과거는 지웠는데 살인자는 못 피했네요.”

“그런 걸 보면 내 기억과 과거가 내 것만이 아닌 것 같아.”

책상에 걸터앉아 있던 무원이 의자를 끌고 와서 희주의 앞에 앉았다. 두 사람의 무릎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선배는 그 기억 어떻게 할 거예요?”

“나한테 관심이 많네.”

“선배를 괴롭히는 그 기억 지우고 싶지 않아요?”

“모르겠어. 혼란스러워.”

“난 당장 수술하겠다고 할 줄 알았어요.”

“왜?”

“선배는 일이 최우선이잖아요. 일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이니까 일에 방해가 되는 건 뭐든 없애 버릴 줄 알았죠. 현장에서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불안해 보이는 게 아니라 불안해. 이게 무슨 형사야. 꼴이 한심하지.”

희주는 철제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근데 왜 당장 수술을 안 하냐는 거죠.”

“너라면 하겠어?”

“전 안 해요.”

1초도 망설임 없는 무원의 대답에 희주는 실소가 나왔다.

“엄청난 자신감이네. 절대 그런 일이 너한테는 안 생길 거라는 거야?”

“그게 아니라, 그 기억에 내가 지는 것 같잖아요.”

“난 우습게도 그걸 지웠을 때 동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 세상에 어떤 경찰이 나약하게 보이고 싶겠어. 나쁜 놈들의 눈에든, 동료들의 눈에든. 난 남들 눈 신경 안 쓰고 사는 쪽이라고 자부했는데 실은 아니었나 봐.”

“그럴 바엔 안고 가겠다는 거예요?”

“현장에서 걸리적거리면 당장 옷 벗어야지.”

“대책은 없다는 거네요.”

“없어. 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예 모르겠어. 이 분노를 암 덩어리처럼 계속 안고 살아야 하나?”

“흉터.”

“응?”

무원은 희주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희주의 눈썹 위 흉터를 가리켰다.

“흉터가 아직 그대로예요. 꽤 오래 갈 것 같아요.”

“할 수 없지 뭐. 난 신경 안 써.”

희주는 일부러 웃으면서 눈썹을 만졌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들 때마다 가장 먼저 흉터를 만졌다. 그리고 3개월 전 일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때의 분노, 경악, 슬픔을 매일 느낀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주웅조차도.

“이 흉터는, 선배가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에요.”

“사고 칠 궁리만 하는 형사 아니고?”

“10년 형사 생활을 쓰레기통에 처박을 각오하고 주먹을 날린 거잖아요. 아기를 위해서.”

무원은 희주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희주는 왠지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무원의 눈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림 같은 2층짜리 단독주택의 문을 연 것은 40대 중반의 아름다운 여자였다. 아름답지만 연약해 보였다. 타인이든 항우울제든 어딘가에 기대야만 이 세상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여자. 여자 곁에는 인상 좋은 남편이 있었다.

희주는 남편에게 말했다.

“실례지만 저희끼리 이야기를 좀 나눠도 될까요? 정확히는 여자들끼리요. 제 동료도 밖에서 대기할 겁니다.”

일부러 조금 딱딱하게 말했다. 여자는 남편이 곁에 있으면 절대 과거 일을 말하지 않을 터였다. 두 사람을 갈라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남편보다 자신이 위에 있음을, 남편에게는 경찰이라는 직업적 권위를 보여 주고 싶었다. 탐문 스킬 중에 하나였다.

“혼자 괜찮겠어?”

남자가 아내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난. 형사님 말대로 여자끼리 대화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오죠. 30분 정도 걸릴 겁니다.”

남자가 희주에게 말했다.

“충분합니다.”

무원은 집 주변을 둘러보고 들어오기로 했다. 여자는 창밖으로 남편이 멀어지는 걸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주용훈 변호사님 때문에 연락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가슴이 철렁했어요. 꽤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라서요.”

여자는 5년 전 전남편과는 재산 분할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혼하고 아이는 친정에 맡기고 재혼했다. 전남편은 폭행한 다음에 강제로 성관계를 맺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었다. 남편은 여자가 재산 분할을 포기하자 그제야 이혼에 합의 해 줬다.

“그 분은 센터 여자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여자들 입장에는 변호사가 먼저 나서서 자기 일에 관심을 가져 주니까 고마워했죠.”

“근데 왜 다투셨나요?”

“무책임하고 정신 나간 여자처럼 보이겠죠. 변호사랑 싸우다니.”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단지 이유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남편에게 맞은 다음에 어떻게 관계를 했냐고 물었어요. 여러 번 반복해서요. 제가 괴로워할수록 더 집요하게 물었어요. 제가 수치심 때문에 눈물을 흘려도 아랑곳하지 않았죠. 그리고 제가 경찰에 신고했다가 잘못 신고했다고 둘러댄 일을 물고 늘어졌어요. 저한테 불리한 증거가 될 거라며 재판을 포기하라고 채근했어요.”

“그래서 결국 재판을 포기하셨군요.”

“네. 나중에 알고 보니 전남편이 변호사한테 돈을 줬더군요.”

“그런 일이 센터 내에서 자주 있었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여자들은 당하고도 항의하지 못했죠. 전 그래도 싸웠어요. 애가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괜찮으시죠?”

“네. 마음이 편안해요. 그거면 충분해요. 저는, 전남편을 용서했어요.”

“용서요?”

희주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리시죠? 이해해요. 하지만 그때의 전 빗속에 내동댕이쳐진 녹슨 화분 같았어요. 풀 한 포기도 흙도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새로운 희망 같은 게 자랄 기회가 내 인생에 아예 없는 것 같았죠. 그저 속수무책으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붉은 녹이 날 갉아먹는 걸 지켜만 보는 기분이었죠. 그래서 그 사람을 용서했어요. 내 감정이 곧 내가 사는 세상인데 내가 괴로우면 그것만 한 지옥이 없으니까.”

여자는 입을 다물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 감정은 참 이상해요.”

여자는 젊었을 때는 더 아름다웠을 눈으로 희주를 응시했다.

“전 지금 행복한데 금방 끝날 것처럼 덧없게 느껴져요. 하지만 전남편과 사는 동안은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낌에 정말로 우울했는데. 행복은 왜 이렇게 불안하고 잡히지 않는 느낌일까요? 슬픔은 피 묻은 휴지처럼 눈에 선명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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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찾아간 학교에 최준석은 없었다. 대신 혼자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는 30대 초반의 기간제 교사가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여자는 희주를 상담을 위해 담임을 만나러 온 학부모 정도로 생각했다가 신분을 밝히자 깜짝 놀랐다. 학교 보안관을 만나러 왔다는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안관님은 친절하고 좋은 분이세요.”

여자는 점심으로 먹으려던 샌드위치 절반을 희주에게 내밀었다.

“저랑 비슷한 시기에 채용되셨으니 학교에 나오신 지 1년쯤 되셨네요. 경찰서장 출신이라고 하셔서 선생님들이 좋아했어요. 아무래도 안심이 되니까요.”

“같이 근무하시면서 기억나는 일 있으세요?”

“음, 제 또래 여성분과 대화하는 걸 우연히 본 적 있어요. 점심에 휴게실에 서서 창밖을 보고 있었거든요. 처음엔 따님이 찾아오셨나 했는데 나중에 여쭤보니 현역일 때 본인한테 도움을 받아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온 분이라고 하셨어요. 범죄 피해자들을 돕는 기관이 있는데 거기 출신인 것 같다고.”

“그 여자가 누군지 기억하던가요?”

“아뇨.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셨어요. 저는 이해가 돼요. 저도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근무를 하다 보면 졸업한 아이가 찾아올 때가 있는데 솔직히 누가 누군지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다 추억이 돼서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가 다 기억난다고도 하는데, 전 애들 얼굴은 다 비슷하게 보여서. 그래서 보안관님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서 당황스러워 혼났다고 했을 때 공감이 됐어요. 그래도 무척 들떠 보이셨어요.”

“그래요?”

“종종 그런 경우가 있나 봐요. 은퇴한 경찰들의 노후나 업무를 지원하는 협회가 있는데, 사람을 찾는 문의가 자주 들어온다고 하셨어요. 대부분 신세를 진 경찰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협회에 연락을 한다고. 아마 그 여자분도 거길 통해서 학교엘 찾아온 게 아닌가 하셨죠.”

“인상착의 혹시 기억나세요?”

“아뇨….”

여자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근데 그 말씀이 기억나요.”

“네?”

“그 여자분이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잘못 살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은 것 같다고. 그래서 기분이 정말로 좋다고.”


병원은 드나드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 동안에도 이 세상이 돌아간다니. 주차장에 꽉꽉 들어찬 차와 접수와 수납을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세상이 망하지 않고 돌아가는지 궁금하다. 안쪽에서 주웅이 걸어 나왔다. 희주는 병원 밖에서 주웅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보고 싶었어.”

주웅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하도 퇴짜를 맞아서 만나면 짜증을 내려고 했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보고 싶다는 말이 나와 버렸네.”

주웅은 솔직하다.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이 남자는 거절을 당해 본 적이 없는 걸까. 아니면 이성의 거절 같은 것에는 조금의 타격도 받지 않는 것일까. 어떤 삶을 살면 나이 든 남자가 매사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별일 없었어?”

“아직도 용의자를 못 찾았고 두 사건의 연결고리도 희미해. 살해 흉기에서 지문이 나왔는데 피해자들 지문뿐이고. 실은 최악이야.”

“화가 머리끝까지 났겠네.”

“빙고. 더 강한 약으로 처방해 줄 수 있어? 운전해야 할지 모르니까 더 센 게 필요해. 칼 맞고 망치 맞아야 죽지, 공황발작으로는 안 죽잖아.”

“맞아. 그걸로는 안 죽어.”

“처방해 줄 거지?”

“오늘 그것 때문에 온 거야?”

희주는 잠시 망설였다. 꼭 약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연락을 피한 것에 대한 사과의 의미도 있었다.

주웅은 희주의 눈가 흉터를 매만졌다.

“좀 우스운 말일 수도 있는데.”

희주가 말했다.

“뭔데?”

“왜 자기를 만날 때는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까? 내 삶엔 사건과 피해자가 남긴 것들, 그리고 내가 잡아야 할 범인들 뿐인데, 자기와 함께 있으면 거기서 한 발 멀어지는 기분이야.”

“굉장히 감동적인데. 혹시 프러포즈야?”

“미쳤어?”

“농담이야. 그럼 오늘 데이트 해 주는 거야?”

그 순간 희주의 휴대폰이 울렸다. 희주가 휴대폰을 들어 주웅에게 보여 줬다.

“물론. 그 잘생긴 파트너지?”

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를 받았다.

“내가 뭘 찾았는지 알면 놀랄걸요.”

“뭔데?”

순식간에 다시 이쪽으로 넘어왔다.

“이덕식 아내분 말 기억해요? 이덕식 판사가 생전에 퇴근하다가 판결에 불만을 품은 남자에게 달걀을 맞았다는?”

“기억나. 그게 왜?”

“그 사건에서 우리가 아는 이름 두 개가 등장해요.”

“누군데?”

“스타리온 강희건 대표.”

희주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주용훈 변호사도 등장해요.”

“뭐?”

희주는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덕식에게 달걀을 던진 남자는, 강희건 별장에서 가사도우미를 하던 여자의 남동생이었어요. 그런데 여자 분이 자살했어요. 남자는 누나 일 때문에 법원 앞에서 시위를 했던 거고요.”

“그 습격 사건의 결말은 뭐야? 그래서 그 남자는 어떻게 됐고, 여자는 왜 자살한 거야?”

“이제 알아봐야죠. 지금 어디예요?”

“병원.”

“애인이랑 같이?”

희주는 주웅을 보았다. 오늘 데이트를 해 줄 거냐는 그의 질문에 아직 대답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응.”

“지금 바로 올 수 있어요?”

주웅이 다시 한번 가볍게 희주의 팔을 쓰다듬었다. 오늘은 함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터치. 희주는 대답했다. 주웅과 무원의 질문에 전부 대답이 되는 딱 한 마디.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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