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니븐 Feb 27. 2024

그 순간은 모든 게 좋았다. 그 순간은...

시드니 한식 세미 파인 다이닝


시드니에서 요즘 핫하다는 한식을 기본으로 하는 레스토랑에 다녀왔다.

파인 다이닝까지는 아니었지만 캐주얼한 분위기도 아닌 세미 파인 다이닝 정도의 식당이었다.


이날 같이 식사를 한 사람들 중 4명이 셰프 출신이라서 옆에서 누군가가 듣는다면 꽤나 흥미로운 대화 주제들이 오고 갔다. 식당의 분위기부터 메뉴 구성, 맛의 균형, 재료, 일하는 시스템 등 의도치 않게 이야기가 그런 쪽으로 흘러간다.



사실 호주에 살면서 한식을 베이스로 한 고급 레스토랑은 처음 방문했다.


일명 '비싼 식당들 - 세미/파인 다이닝'은 호주에서 피하게 되었던 것 같다. 친근한 맛과 재료의 한식을 일반 한식당에 비해 2~3배가 넘는 가격을 주고 먹기엔 특별함이 없는 곳이 많다. 물론 서비스, 분위기 등 캐주얼한 식당보다 가격이 비싼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냥 해외에 사는 한국인으로 한식에 그만큼 돈을 주고 싶지 않은 그런 심리가 발동한다.



친구의 생일 기념과 주변 사람들의 추천으로 시드니 유명 고급 한식 레스토랑을 경험했다. Soul Dining을 방문하기 전 메뉴 구성을 봤을 때 꽤나 흥미로운 요리가 많았다. 본질은 한식이었지만 호주 레스토랑 문화에 적합하게 균형을 잘 맞춘 듯 보였다. 우리가 시킨 메뉴는 메인 5가지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디쉬 여러 개를 시켰다.



Soul Signature Rice Bread


가장 처음 나온 건 식전빵 같은 이 식당의 시그니쳐 Rice Bread다.


이 날 베스트 중 하나가 이 빵이었다. 떡과 빵 사이의 질감이었고 술빵을 덜 달게 만들어서 잘 구운 느낌이었다. 같이 나온 버터 또한 입안에 넣으니 풍미가 입안 가득 느껴졌다. 처음엔 쌀로 만든 빵과 버터의 만남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Rice Bread를 먹어보니 다음 음식들이 기대되었다.




메뉴를 보니 김치칩, 김치 국물, 김치 가스파쵸, 백김치 등 '한국 음식에서 김치를 빼놓고 말할 수 없지'라고 말하고 있는 듯이 메뉴에서 김치라는 단어들을 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김치 그 자체로 훌륭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음식이다. 그래서 이런 김치를 활용해서 조화롭게 새로운 디쉬를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특징이 강하지 않은 음식을 활용하게 맛있게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


그래서 김치를 활용한 메뉴들을 봤을 때 매우 흥미로웠지만 맛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먹었던 'Kingfish in Kimchi Water'는 기대 이상의 조합을 보여줬다. 한국말로 메뉴 이름을 직역하면 '김치국물에 빠진 킹피쉬'이다.



이 메뉴는 한국에서 회를 즐기는 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백김치와의 아보카도, 고추, 된장과 비슷한 소스, 킹피쉬는 심심하지 않은 식감과 튀지 않는 맛을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 횟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이다. 횟집에 가면 기본장으로 제공되는 것에는 된장, 참기름, 마늘, 고추가 섞여 있고 어느 지역에서는 회를 묶은지에 싸 먹기도 한다. 내가 이 날 먹은 Kingfish in Kimchi Water는 이러한 친근한 한국의 맛을 담고 있었다. 묶은지 대신 백김치가 있었고 횟집의 기본장의 재료들의 예쁘게 줄지어 있었다. 또한 아보카도 퓌레가 이 사이에서 전혀 어색하지 않게 조화를 이뤘다는 게 놀라운 포인트였다.

Kingfish in Kimchi Water




다른 메인 디쉬들도 좋았지만 이 날은 곁들여 먹었던 스낵류의 디쉬들이 더욱 좋았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깨찰빵 스타일의 'OX Tongue Donut'은 겉과 속이 다른 요리였다.  


'OX Tongue Donut'은 모양만 보면 이탈리아의 아란치니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맛을 봤을 때는 한국의 깨찰빵에 짠맛의 장조림이 들어있는 예상 밖의 스펙트럼이었다. 맛과 식감은 익숙하지만 한입에 먹어본 적은 없는 조합이어서 굉장히 인상 깊었다.


도넛을 한 입 깨물면 우설을 이용한 장조림이 안을 채우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우설을 이용해 장조림처럼 만들었지만 평소에 우리가 먹는 장조림보다는 국물이 적은 정도의 하기를 갖고 있었다. 사실 맛의 조합이 엄청 좋았다기 보단 예상할 수 없었던 조합으로 이루어져 더욱 좋았던 요리였다.


OX Tongue Donut



식사를 모두 마친 후 계산서를 확인했을 때, 호주 시드니에서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와 요리의 퀄리티를 고려했을 때 저렴하게 느껴졌다. 음식당 가격은 캐주얼한 한식당보다 비쌌지만 이곳에서 내가 했던 경험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해외에 있는 한식 레스토랑에 가서 항상 아쉽게 느꼈던 손님을 대하는 서비스이다. 한국과 호주는 식당에서 손님을 대하는 문화가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친절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스태프들의 서비스가 훌륭했고 식사를 하는 동안 불편한 점이 전혀 없었다. 분위기, 맛, 서비스 모두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그런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또다시 방문할 것 같진 않다. 같이 밥은 먹은 멤버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식당 안에서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맛있었고 가격도 괜찮았는데 이제 다시 안 와도 되겠다. 메뉴가 바뀌면 와볼 수도 있겠지만..'


다 좋다고 할 때 언제고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굳이 다시 올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는 내가 참 변덕스럽다. 메뉴에 나온 요리 중 80% 이상은 이 날 먹어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음을 기약할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충분히 이 식당을 느꼈으니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또는 특이하고 신기한 조합은 많았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맛이 없었을 수도 있다. 식당을 또 가고 싶게 만들려면 뭔가 기억에 남을 정도의 맛이나 경험이 중요하다. 이 날은 이 정도의 맛과 경험은 없었던 것 같다.



  '감칠맛'같이 뭔가 나를 끌어당기는 건 없었기 때문일까?


그래도 Soul Dining에서 경험한 스태프들의 프로페셔널한 서비스와 한식을 현지화시킨 흥미로운 메뉴 구성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기 충분한 장소였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인이 받는 맛에 대한 조기교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