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진이 기주에게 단골집을 소개하여 준건 5년쯤 되었을 거다. 눈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기주는 영화가 보고 싶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나자 기주는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고 기주는 서점에 가고 싶다고 했다. 매대에 서서 한 참 책을 읽더니 기주는 걷고 싶다고 했다. 정거장 두 개를 지나자 기주는 밥 먹고 싶다고 했다.
-단골집이야.
-국밥이랑 막걸리만 파는 곳은 처음 봐.
- 여기 식당 간판도 없었어. 입소문에 조금씩 사람들이 찾아오다가 왔던 사람들이 또 오고 자주 오고 가니까 손 님이 그랬대 식당 이름 '단골집'으로 하시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단골집이 됐어.
-단골집이라. 이름 잘 지었다.
-계속 물어볼까 했는데 왜 그랬어? 말 붙이기도 어렵고.
-왜에? 화난 줄 알았어? 그냥, 그러고 싶을 때가 있어. 네가 옆에 없었으면 그렇게 못했을 거야.
단골집엔 사람이 가득 찼다. 국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사람들의 입김이 식당을 가득 매웠다. 8개 남짓한 테이블엔 저마다 안주거리가 있었다. 안주거리는 다양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받은 이야기, 아버지 이가 빠져 임플란트 한 이야기, 날씨 얘기, 집사람 얘기 들로 조용하진 않았지만 소란스럽지 않았다. 간혹 일본어가 들리기도 했다. 스치듯 돌아보니 구석진 자리에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보였는데 남자분이 일본 사람처럼 보였다.
-집에 자주 못 가잖아. 일도 바쁘고 시간도 나지 않고 주말이면 잠들기 바쁘거나 약속 생기거나 일 년에 한 번 아니면 두 번 명절에만 가는데 이번에 하루 갔다 왔어. 밑반찬이 언제 있긴 했나 싶기도 하고 인스턴트 음식도 지겹더라고. 집밥이 먹고 싶었지. 그리고 엄마가 해준 두부찌개도 먹고 싶고. 그래서 주말에 다녀왔어.
추석 이후로 처음이고 새해에도 전화만 드렸으니까. 아버지는 어디 나가셨는지 엄마만 있었어. 아들 온다고 두부찌개, 제육볶음, 갖가지 밑반찬도 다 있더라고. (막걸리를 몇 잔 들이켰다.) 아버지가 오셨어. 술이 좀 되신 것 같아. 아들 왔냐고 살짝 웃으시는데 앞에 이가 하나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언제 이가 빠졌냐고 물어봤더니 좀 됐다고 일이 바빠서 치과 갈 시간이 없다는 거야. 아니 어금니도 아니고 앞에 이가 빠지면 인상도 달라지는데 얼른 가서 임플란트를 하던지 해야지 바쁘다고 안 가고 그러면 어떡하냐고 그랬어. 속이 상하는데 목소리도 높아지고. 임플란트 하나 해도 비싼데 잇몸이 좋지 않으니까 하나만 할 수가 없었나 봐. 흔들리는 이도 있고. 치과에 가보기는 하셨나 봐. 의사가 덤터기 씌우는 것 같다고 치료 몇 번하고 임플란트 몇 개 하는데 700백 정도 한다는 말에 다른 치과 가서 알아보겠다고 얘기하시더라. 돈이 아까우신 거겠지. 게다가 술을 좀 좋아해. 저녁밥에 반주도 하시지. 친구가 부르면 나가서 드시지. 적당히 먹으라고 엄마가 잔소리해도 많이 드시지.
- 몸 생각하셔야지. 자꾸 그렇게 드시면 몸 다 망가져요. 당뇨도 있으시분이. 적당히 드시고 그러셔야지.
-많이 안 마셔. 가까운 곳에 친구도 이웃도 있고 사람 사는 게 멀리 떨어진 가족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친구나 이웃이 있어 좋은 거야. 또 기분 좋을 때 한 잔 하고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얼른 치과 가서 치료받고 하세요. 점점 기력도 안 좋아질 텐데 몸 생각하셔야 돼.
속상하더라. 세월 가는 거 부모님 보면 알겠더라. 엄마한테 얘기했어. 아버지 얼른 치과 가서 치료받아야 된다고. 엄마가 얘기하시더라. 보험이라도 있으면 가서 할 텐데 비싸니까. 돈 걱정하지 말고 가시라고 했어. 돈 보낼 테니까. 적금 이번에 만기 됐거든. 그거 드렸어. 내가 쓸 돈 조금 빼고.
-잘했네. 잘했어. 한잔해.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중년의 여자분이 말하셨다.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닌데. 저기 총각. 술값은 우리가 낼게요. 사장님. 여기 막걸리 좀 더 주세요.
안주가 뭐라도 있으면 시켜 줄텐데. 없네. 젊은 친구들처럼 보이는데 얘기 듣다가 눈물이 조금 났네. 보기 좋아요. 부모님 생각하는 마음이. 앞에 남자분이 일본 사람이라서 내가 통역을 해줬어요. 궁금해하셨거든. 이분이 친구들 술 값 내고 싶어 하셨어요.
쑥스러워하면서도 두 청년은 감사하다고 했다. 기주와 무진도 괜히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