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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Aug 18. 2017

#89

연재소설

-내려갈 수 있겠어. 하늘이 열렸어.

-몬조만 지나면 비가 왔던 곳이라 땅이 질퍽하겠는데. 진흙탕 길을 걷겠구나. 다리 건너서 너덜지대 지나면 몬조잖아.

-그전까지는 눈 밟고 가겠는걸, 사진 찍으면 이쁘겠다.

-실력 발휘 한번 해볼까나.

-보여주시죠.


롯지 주인은 떠나는 둘에게 겨울은 너무 추우니 가을에 오라고 했다. 특히 고쿄에 가서 호수를 보라고 말했다. 4계절 고쿄 호수를 다 둘러봤고 가을이 가장 좋다고 했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좋아하는 계절이 있다. 봄에도 좋을 테고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나름의 매력을 충분히 뽐내고 있을 테다. 시즌의 경우 사람에 치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과의 만남으로 예상치 못한 인연이 생길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무진은 겨울이 시작될 때쯤 11월 말경이나 12월 초에 다시 올 수 있다고 했다. 다시 오면 나를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기주는 세계여행을 할 예정이라 언제 왔는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들리겠다고 말했다.


주인장은 무료라며 차를 건넸다. 블랙티를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중국 커플이 밖에 나와있어 넷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일정이 비슷하다면 포카라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포카라에서 볼지 카트만두에서 볼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내려가는 길을 아름다웠다. 일찍이 출발 한 사람이 있는지 눈엔 길이 나 있었다. 나무들 마다 눈꽃송이가 가득히 있었고 새하얀 눈이 반짝였다. 맨눈으로 오래 감상할 수는 없었다. 빛 반사가 심해 눈이 아팠다. 선글라스를 끼고 주위를 둘러보며 내려갔다.


체크 포스트에는 사람이 없었다. 9시가 채 되지 않던 시간에 우리는 체크 포스트와 에베레스트 뷰포인트를 지나쳤고 출렁거리는 철제 다리를 건넜다. 다리 난간 사이사이마다 눈이 쌓여 있었다. 미끄러질까 염려스러웠지만, 바람은 불지 않아 쉬이 넘어갈 수 있었다. 다시 너덜지대를 지났고 몬조가 눈앞에 보였다. 어느덧 눈은 사라지고 있었다.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야 할 만큼 날은 포근했다. 무진은 겉옷을 전부 벗고 반팔 차림으로 걸었고 기주는 긴팔 차림으로 걸었다. 햇빛이 강해 선크림을 덧대어 다시 발랐다.


몬조에서 남체로 올라갈 때 차 한잔 하기 위해 들렸던 티샵이 보이자 이제 눈은 완전히 자취를 감쳤고 땅은 질퍽였다. 예상한 대로 이곳부터는 비가 많이 내렸던 것이다. 몬조를 지났고 12시가 될 무렵에 팍딩에 당도했다. 타카는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창을 소개하여준다고 했다. 밀집된 로지 지역을 가로질러 가다 왼쪽 편에 있는 집이었는데 타카는 주인장과 절친한 사이 같았다. 창을 달라고 말을 했는지 항아리에서 우리네 술 찌개미 같은 것을 꺼내 개수대로 가져갔다. 뜨거운 물을 술 찌개미에 부어 짜내고 있었는데, 꼭 두부를 만들 때 콩을 삶아 포대에서 짜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준비를 마쳤는지 맛을 보라며 무진과 기주에게 건넸다.  일전에 마셨던 창과 달랐다. 시큼하면서도 고소했는데 처음 느껴본 맛이었다. 막걸리와 비교해도 다른 맛이었다. 색은 우유보다 진했고 더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마치 이온음료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었다. 목 넘김이 부드러워 마시기 편했는지 기주도 한 잔을 더 마셨고 무진은 5잔을 마셨다. 1리터에 100루피였는데 무진은 2리터를 샀고 300루피를 내려고 했지만, 타카는 괜찮다며 본인이 내겠다고 했다.

무진은 그럼 우리가 점심을 사겠다고 말했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치킨달밧을 시켜 먹었고 창은 셋이서 두병을 모두 마셔버렸다. 무진이 1리터는 족히 마시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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