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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Aug 17. 2017

#88

연재소설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도 좋아했잖아?

-그랬지. 지금도 그래. 시네마천국 마지막 신 주인공이 홀로 극장에서 감상하는 장면. 그때 흘러나온 음악. 명곡이지. 요새는 한스 짐머 곡도 많이 듣고. 좋은 곡은 세상에 널렸지. 알지 못할 뿐이지.

-눈바람 치는 날 듣기 좋은 곡이 있을까?

-이 날씨에 어울리는 곡이라... 뭐가 좋을까.

-그거 생각나? 여행가지 전에 했던 생각.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지만 겨울에 여행을 떠나는 거야. 선술집에 들어가 창가에 앉아 마주 보고 술 한잔 기울이는데 창밖에 눈이 내리는 거야. 골목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길도 아닌 막다른 골목에 있는 선술집. 창을 통해 밖을 보면 가운데 도로가 있고, 도로 양옆엔 상점이 가득 차 있는 거지. 차들도 다니지만 트램이 있었으면 했어. 눈이 부슬부슬 내리는데 사람들이 손잡고 길을 걷고 있어. 혼자 걷는 이, 같이 걷는 이 모두 기뻐 보였어. 선술집엔 조명이 따로 없었고 모두 촛불로 가득 차 있는 곳. 그곳엔 음악이 흐르는데, 한국 음악이야. 이문세 '옛사랑'

어디가 가장 근접했을까. 우리가 겨울에 떠난 여행에서?

-프라하. 거리 어느 식당에서.

-그랬지. 거리는 눈이 내렸고, 우리 마음은 자유로웠지. 가슴은 뻥 뚫렸고 눈은 초롱초롱했어. 모든 것이 다 좋았지. 네가 좋아한 맥주도 엄청 마셨지.

-다 그런 거야. 그렇지. 맥주 마시고 싶다.

-이제 내려가면 매일 마실 텐데 뭐.

-내일 루클라 내려가면 문명인이 되는 건가?

-씻을 수 있고 비행기도 타고 먹고 싶은 음식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그렇지. 도시 사람 되는 거지.

-시원하게 깨끗하게 씻고 싶다. 진짜. 내일 할 수 있다니까 괜히 더 빨리 하고 싶네.

-그나저나 눈이 그쳐야 되는데. 이렇게 내일까지 오진 않겠지?.

-모르지 뭐. 타카 말로는 아침에 그친다고 했는데. 산속 일기를 누가 알겠어. 수시로 변할 수도 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올라간 시간 동안 날씨 하나는 정말 끝내 줬는데. 진짜 날씨 좋았는데.

-그건 그래. 지금 올라가는 사람들은 엄청 고생할 거야. 남체가 이 정도면 로부체 만 해도 엄청나게 쌓였겠다.

-어마어마할걸. 장난 아닐걸. 막 헬기 뜨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 날씨에는 헬기도 못 뜨지. 헬기 추락하겠다.

-우리 고립되는 거 아니겠지?

-이제 오늘이구나. 아침 되면 알겠지. 파란 하늘을 보여줄지. 눈구름 가득한 어둑한 하늘이 보일지. 지켜봅시다.


하늘은 다시 파랗게 열렸다. 눈을 만들어 엄청나게 뿌려댄 구름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땅은 눈으로 다 덮여 있었다. 집 지붕 위에는 50cm가량 눈이 쌓여 있었고 나무 잎에는 눈송이가 가득했다. 겨울 세상이 펼쳐졌다. 이른 시간인지 골목골목엔 사람들의 발자국이 없었다. 순백의 눈은 아름다웠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이곳이 당분간이라도 기억해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홀로 걷고 있던 기주는 가득 차 버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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