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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Nov 21. 2017

#123

연재소설

기주는 룸비니로 갔다. 절에 있고 싶다고 했다. 그곳을 걷고 싶다고 했다.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서 어딘가로 가야만 한다고 했다.

그 안에 공기가 참 따스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일어나는 모든 생각도 그냥 내버려 두고 싶다고 했다.


부석사에 갔었다. 봄이 지나기 전에 벚꽃 휘날리는 계절에 그 시간에 부석사를 보고 싶었다.

기주와 나는 청량리역에서 만나 풍기역까지 갔다. 다시 버스를 타고 부석사로 들어갔다.

버스엔 기사님만 있었다. 우리는 30분 남짓 버스를 탔다. 버스에 내려 부석사를 향해 걸었다.

비가 조금 내렸지만, 우산을 쓰고 싶지 않았다. 길 양옆으로 나무들이 빼곡히 줄 맞추어 있었는데 나무에서 나는 향기가 좋았다.

땅을 보고 걸어도, 하늘을 보고 걸어도, 좋았다. 우산에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무량수전이 보일쯤 풍경 소리가 들렸고 벚꽃은 딱 맞추어 절 위를 비행했다. 기주는 종종 그 얘기를 했다.


“부석사에 가고 싶어. 우리 봄날에 갔을 때. 그때 생각이 많이 나.”

기억이 오래 남아 있었는지 네팔에 온 이후로 룸비니 얘기를 많이 했다.

기주가 장문 메시지를 보냈다.

“내 생각대로야. 절 안을 걷기만 했는데 자유롭다고 느껴져. 이 안이 편안해. 생각은 생각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어.

지켜볼 뿐이야. 반응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어. 모든 게 물 흐르듯이 그렇게 지나가는 것 같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도 있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가끔 그 생각이 들거든. 내가 너무 애쓰며 살지 않았나. 자꾸 그런 생각이 나.

나 진짜 악착같이 살았잖아. 그렇게까지 살지 않아도 되는데, 가혹하게 살았구나. 불안해서일까. 뒤처져 보여서일까.

내가 없어진 것 같았어. 누구랑 비교해 왔는지도 모르겠어. 비교할 사람도 없는데. 세상에 나는 나 하나뿐이고, 다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삶의

방식대로 사는 건데. 룸비니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참 많이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나오더라고. 그게 나를 괴롭게 하지도 않았어.

너무 자연스러웠어. 항상 나는 생각이 많아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봐. 생각나는 대로 다 지켜보니까

알겠더라. 그냥 내버려 두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는 거. 그게 전부야. 마음이 편안하니 나를 괴롭히던 생각도 좋아지더라.

여기에 얼마나 더 있을지는 모르겠어. 때가 되면,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동할 거야. 그때 다시 연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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