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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by 방랑자

기내 안이 소란스럽다. 핸드폰 카메라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사람들의 시선은 좌측 창가에 머물렀다. 히말라야는 비행기와 같은 눈높이에 있었다. 시선이 아래로 향하지 않았다. 우뚝 솟아있는 그곳엔 능선 언저리에 눈이 쌓여 있었고, 어떤 봉우리에는 구름이 걸려 움직이지 않았다. 만년설이라 불릴 만했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온은 내려가지만 고도가 높다는 것은 태양과 더 가까운 거리에 있어 눈이 녹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좀 신기했다.


전 국민이 취미란에 등산이라 적을 정도로 한국사람은 산을 좋아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히말라야는 가슴속에 품어둔 일번지 여행지 일거야' 무진은 기주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비행기는 네팔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낡은 책상 서랍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 불었다. 자욱한 먼지는 입국장으로 가는 버스 유리에 들러붙어 시야를 가렸고, 어둠이 내려앉은 공항엔 직원들의 분주한 움직임만 보였다. 입국장으로 가는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사람 배달을 하고 있었다. 1분도 못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입국장에 들어갔다.


-10달러만 환전해서 가자. 택시는 타야겠지.

-그러자. 숙소는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100일 입국비자 신청을 하고 심사대로 향했다. 입국심사는 너무 간결했다.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도장 찍어주고 보내줬다. 짐을 찾고 출국장으로 나오면서부터 호객행위가 시작됐다. 타멜로 가는지 트레킹은 할 건지 숙소는 구했는지 환전은 했는지 본인들이 알고 있는 곳이 있다며 소개하여주겠다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끊임없이 옆에 붙어 말했다.


-타멜까지 얼만데?

-700루피.

기주는 곧장 걸어갔다. 출국장 문 밖에는 더 거대한 무리들이 있었다. 그나마 인상이 선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타멜까지 얼마야?

-600루피.

-500루피. 500루피 아니면 다른데 알아볼 거야.

기주는 공항직원에게 택시비를 물어봤다. 500 루피면 충분하다는 얘길 들었다.

어찌나 당당하게 외쳐댔는지 기사도 별말 없이 차로 가자고 했다. 무진과 기주의 배낭은 트렁크에 실었다. 기사로 알고 있던 친구는 기사가 아니었고 트레킹 에이젼시를 운영하던 사장이었다. 공항에 나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손님을 태우고 진짜 영업이 시작됐다. 기사는 따로 있었다.


-어디서 왔어? 한국?

-어.

-내 친구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어. 5년 됬을걸. 네팔에는 얼마나 있을 건데?

-5개월

-5개월? 와. 오래 있구나. 한국 사람들 대부분 15일 비자받고 오던데.

-그냥. 오래 있고 싶어서.

-트레킹 하겠구나.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랑탕, 무스탕, 아니면 그레이트 히말라야도 있고. 많아 네팔에. 서양인들은 오래 있다가 많이 가거든. 돈도 잘 쓰고.

-할 거야. 아직 정하지는 않았어. 언제 할지.

-가이드 구하고 싶으면 연락해. 처음이지 네팔에?

-어.

-처음이면 가이드 구해서 가는 것도 좋아. 안나푸르나는 사람들 많이 다니기는 하는데 가이드 있으면 좋아. 설명도 해주고.

-얼만데?

-하루에 25불.

-들었는데. 에베레스트 경비행기 타는 거 말고 버스 타고 갈 수 있다던데?

-아. 거기. 살레리나 지리인데. 지리는 너무 멀고 살레리로 가면 돼. 지프 타고 12시간 걸려. 그쪽으로 가면 루클라까지 3일. 가이드랑 같이 움직이면 이동경비는 트레커가 지불해야 하는데 별로 비싸지 않아.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얼마나 걸려?

-15일 아니면 20일 그 정도면 충분해.

-지금 올라가면 춥겠지?

-베이스캠프나 칼라파타르 가면 춥지. 아직은 겨울이니까. 영하 20도까지는 될걸.

-그래.

-환전은 했어? 지금 환율이 1달러에 107루피 정도 하는데 110루피까지 해줄게.

-명함 있으면 줘 우리가 찾아갈게. 타멜에서 멀지 않지?

-안 멀어. 모르겠으면 사람들한테 물어봐. 다 알아.


숙소까지 찾아준다는 그를 만류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밤이었다. 길에는 차들이 클락숀을 울리며 밤거리를 걷던 우리를 긴장시켰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 걷는 사람들,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이 섞어있었다. 클략손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사람들은 전부다 여행객뿐이었다. 네팔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유심히 살펴봤던 무진은 그들이 화가 나거나 심기가 불편해 째려보는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타멜거리는 비좁고 골목이 많았다. 사람, 차, 자전거, 동네 개들까지 섞여 있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클략숀을 울려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밤에도 타멜은 어지러웠다. 겨울이 아직 가시지 않아 밤거리는 싸늘해 외투가 필요했다. 셔터가 내려진 상점들이 많았다. 식당과 숙소로 보이는 곳들만 불이 켜져 있었다.


-저기 보이지. 킹스 게스트하우스 저기 가보자.

기주는 앞장서서 걸었다. 게스트하우스 옆에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잡다한 것들이 다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를 마주 보고 앞 건물엔 두 개의 트레블 에이젼시, 책과 지도를 파는 서점이 있었다. 우측 2층 건물엔 식당이 보였다.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메뉴 입간판도 보였다. 골목길에도 상권은 형성돼 있었다. 작은 골목길 바닥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구멍가게에 들려 생수 2병을 샀다. 30루피였다.


프런트 데스크는 2층에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은 사람의 인기척을 들었는지 들어오는 우리를 맞아 주었다. 네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인 건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봐도 일본 사람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예약하셨나요?

-아니요. 예약 안 하고 왔어요. 공항에서 바로 오는 길이에요. 방 있어요?

-네. 있어요.

-하루에 얼마죠? 트윈 베드 룸으로.

-600루피요.

-따뜻한 물은 잘 나오나요?

-네. 그럼요.

-와이파이는 되죠?

-네.

-그럼 환전하고 올게요. 아직 환전을 안 해서 루피가 없어요. 택시비만 환전했거든요. 공항에서.

-네 그러세요. 달러도 가능해요.


-기주야. 환전하고 올 테니까. 먼저 방에 들어가 있어.

기주는 키를 받고 4층 401호로 갔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챙겨서 갔다. 방은 깔끔했다. 린넨은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고 주름도 보이지 않았다. 침대는 나란히 2m 간격으로 있었다. 침대 위에는 잘 개어진 샤워 타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비누와 휴지도 옆에 있었다. 침대 옆 탁자에는 작은 조명이 은은하게 침대 쪽을 밝혀 주고 있었다. 벽에는 옷걸이가 걸려 있었다. 화장실을 들여다봤다. 공포영화에서 볼 법한 미장센이 떠오를 정도로 화장실 안 조명은 어두웠고 쇳물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폭이 좁고 길에 늘어진 화장실은 벽 끝쪽에 좌변기가 있었고 가운데에 샤워기 문 바로 옆쪽에 세면대가 있었다. 바닥에 깔린 타일은 깨진 곳이 곳곳에 보였다. 창은 아주 작게 천장 바로 밑에 있어 손이 닫지 않을 거리에 있었다. 화장실만 아니면 완벽했다.


무진은 직원이 말해준 환전소로 가서 50달러를 환전했다. 공항보다 2루피 높았다. 107루피로 5370루피를 환전했다. 환전소는 큰 길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거리에는 아직 셔터를 내리지 않은 상점들의 불빛이 어두운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노점 가판대에서 액세서리를 팔던 아저씨는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개들은 서로 영역싸움을 하고 있는지 개 짖는 소리로 사람들을 당황케 했다. 현지인들은 관심이 없었지만 여행객들만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무진은 얼른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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