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연재소설

by 방랑자

시간을 수시로 확인했다. 가이드는 새벽 4시 30분까지 와야 한다고 알렸다. 무진과 기주는 3시에 일어나 배낭을 꾸리고 숙소를 정리했다. 빠진 건 없는지 두어 번 살피고 2층으로 내려갔다. 직원은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직원은 여러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직원은 나가서 택시를 잡고 올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택시 기사도 자고 있을 시간에 직원이 택시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됐다.


-700루피.

-그래.


새벽에 택시 찾느라 고생한 직원과, 택시 기사도 이제 일어나 눈도 잘 뜨지 못하는 모습에 흥정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안개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어 기사는 상향 전조등을 켜고 운전대에 바짝 다가가 운전했다. 포장도로와 비포장 도로가 섞여 속도를 내지 못해 택시는 중앙선을 넘다 들며 곡예운전을 했다. 엉덩이 들썩였고 머리가 택시 천장에 부딪히기도 했다.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에 다다르고 지프 차량이 눈앞에 보일 때 차에서 내렸다.

지프 차량 대여섯 대가 보였다. 가이드는 무진과 기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굿모닝 타카.

-굿모닝.

10분 전에 도착한 가이드 타카는 달큼하고 계피향이 나는 짜이를 마시고 있었다. 무진이 서둘러 짜이 두 잔을 사 왔다.


-언제 출발해?

-10분 후에. 사람들이 더 와야 돼. 보이지 붉은색 차? 그거 타고 갈 거야.


차량은 오래돼 보이지 않았지만, 거친 산길을 달렸던 것인지 흙먼지가 차를 뒤덮었고 전면 유리창에는 움직인 와이퍼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배낭은 루프로 옮겨 단단히 조여 매였다. 12시간 타고 가야 했지만 도로 사정에 따라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중간중간 계속 쉬어 갈 테니 힘들지 않을 거라고 했다. 12시간 차를 타는 건 힘들지 않았지만 구불구불한 고개를 넘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동안 몸뚱이는 좌우 위아래로 흔들렸고 수시로 부딪혔다. 쿵. 하고 천장에 부딪힐 때면 머리가 울리기도 했다.


시속 30km로 달릴 수만 있는 폭이 좁은 절벽길에 도로가 있었다. 산사태라도 나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는 도로였다. 도로에는 지프만 있었고 다른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은 살레리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카트만두로 가는 차들이었다. 몸이 힘들어질 때면 때맞춰 가이드는 곧 티 타임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점심시간이었다. 무진과 기주는 '달밧'을 먹었다. 가이드는 네팔인들이 먹는 주식이라고 했다. 유일하게 리필이 가능한 음식이며 먹을 수 있을 만큼 밥과 반찬을 준다고 했다. 치킨 달밧은 250루피였다. 무진은 두 번 리필해서 먹었지만 기주는 속이 좋지 않은지 몇 숟가락 먹지 못했다. 계속 속이 울렁거린다며 힘들어했다.


-얼마나 남았어? 30분만 더 가면 돼?

-아니. 이제 반 온 거야.

미국인 제인은 가이드에게 물었다. 7시간이나 타고 왔는데 반을 더 가야 한다는 가이드 말에 웃기만 했다.


길은 더 험난했다. 비포장 도로보다 더 험했다. 물 웅덩이를 지날 때면 몇몇은 내려 차가 제대로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기도 했다. 해가 지자 바람이 차가웠다. 사람들이 마을 어귀에서 하나 둘 내리고 남은이는 무진, 기주, 제인, 가이드 둘만 남았다. 차는 살레리를 넘어 파블로 마을로 들어섰다. 살레리는 면 단위 마을처럼 집들이 많이 보였고, 파 플루는 리 단위 마을로 보였다. 차가 지나갈 수 있는 길 하나가 전부였고 도로 양 옆엔 주민들이 사는 집과 숙소로 이루어졌다. 남아시아에 속해 있어 도시는 기온 편차가 심하지 않았지만, 파블루는 2,000미터를 훌쩍 넘어서 있던 마을답게 아침과 저녁엔 매우 추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지 마을은 금세 어둠으로 물들었다.


-오늘은 여기서 잘 꺼야. 넘버 롯지.

가이드 말에 시선이 옮겨진 그곳은 시골집처럼 보였다. 서까래와 쓰레트가 지붕을 만들었고, 2층 창엔 커튼이 드리워 저 있었다. 아마도 겨울철 문틈이나 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외풍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보였다. 출입문 옆엔 화분과 말통이 있었다. 마당엔 똥들이 군데군데 보였고,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는 포개져 있었지만 오래 방치해 둔 세월의 때가 묻어 있었다. 마당 한편엔 장작더미와 도끼가 보여 이곳에 난로가 있다고 무진은 생각했다.


-물통이 없어. 배낭에서 빠졌나? 어디 갔지. 차에 있나?

배낭 사이드포켓에 넣어둔 물병이 사라졌는지 기주는 무진에게 말했다.

-차에서 빠진 거 아니야? 엄청 흔들렸잖아. 차에 가볼게.

무진은 뛰어나갔다. 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찾았다. 찾었어. 배낭 커버 안에 있었네.

무진이 돌아왔을 때 기주는 멋쩍게 말했다.



-속은 어때. 계속 안 좋아?

-지금은 괜찮아. 메뉴가 많은데 눈에 띄는 게 없네. 뭐 먹지?

-볶음밥 먹어야겠다.

-티벳티안 브레드. 땅콩잼에 먹어야지.


식당 안은 주인장 가족, 제인, 서양인 부부, 가이드만 있었다. 제인과 서양인 부부는 난로가 있는 식당 가장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개월 됐어요. 네팔에서 봉사활동 마치고 뉴질랜드로 돌아가요. 에베레스트 트레킹 하러 왔나 봐요?

-네. 내일부터요. 지프 타고 왔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비행기 타고 올걸 그랬어요.

점심 먹을 때 가이드한테 물어봤거든요.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30분?

아니, 이제 반 만 더 가면 돼.


제인과 서양인 부부의 이야기가 들리자 무진과 기주도 자리를 난로 근처로 옮겼다.


-뉴질랜드에서 왔어요?

-네. 크라이스 처지에서 왔어요. 뉴질랜드와 본 적 있어요.?

-그럼요. 1년 살았는걸요. 오클랜드에서. 여행은 아니고 일 때문에 있었어요.

- 산, 바다, 호수, 맑은 공기, 스포츠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지만 조용하죠.

자연만큼은 어디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아요.

-일 때문에 많은 곳을 다니지 못해서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아쉬워요.


기주는 1년간 오클랜드에서 파견직 근무를 했었다. 그때가 프러포즈를 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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