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연재소설

by 방랑자

창문에서 바람소리가 들렸다. 커튼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기주는 잠들기까지 오래 걸렸다.


-깼어?

-어. 자다 깨다 반복했어. 1시, 3시, 4시. 일찍 잠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한국이랑 시차가 애매해서 그런가.

-맞아, 나도 새벽에 계속 그랬어.

-춥진 않았어? 추워서 새벽에 패딩 입고 잤어.

-춥긴 하다 진짜.


그때가 새벽 5시였다. 저녁 먹고 사람들하고 얘기 나누다 방으로 들어가서 바로 잤다. 9시도 되기 전이었다.

비좁은 차와 13시간을 이동하면서 지치기도 했었다. 저녁엔 날이 추워 난로에서 몸을 데웠고 밥을 먹은 직후로 노곤해진 이유도 있었다. 가이드는 몇 시에 출발하길 원하냐고 물어봤고, 우리는 8시에 출발하자고 했다. 아침밥은 잠들기 전 미리 주문해뒀다. 애플 팬케이크, 홍차 두 잔을 시켰다.


-굿모닝 타카.

-굿모닝. 잘 잤어?

-새벽에 추워서 깼어. 베이스캠프는 얼마나 추운 거야?

-훨씬 춥지 여기보다. 마이너스 20도 될걸.


한국의 한파처럼 귀가 떨어질 듯 한 추위는 아니지만, 난방이 없는 네팔의 숙소에서 잠자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낮에는 땀이 날 정도로 온도가 올라 반팔 차림도 가능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겨울 옷차림이 필요했다. 일교차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날씨에 적응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체력은 바닥날 듯 보여, 기주는 걱정이 많았다.


길에는 지나다닌 차들의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먼지도 날리지 않았고 길 끄트머리엔 살얼음이 보였다. 능선 너머엔 해가 비치기 시작해 산의 초록빛이 바래고 있었다.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꼬마 들은 아침부터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콧물이 자국 되어 입가에 번졌고, 초롱한 눈빛에 맑게 웃고 있는 꼬마들이 보기에 좋았다.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자 주인장은 팬케이크와 홍차를 내왔다. 설탕을 섞어 마시라며 일러줬는데 정제되지 않은 설탕은 작은 유리알처럼 보였다. 애플 팬케이크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제인은 수프와 짜파 띠를 먹었다.


-언제 출발해?

제인이 먼저 물었다.

-8시.

-오늘 목적지는?

-타카? 우리 오늘 어디까지 가?

-탁신두. 걸음이 빠르면 눈탈라까지 갈 수도 있어.

-천천히 가자.


기주는 평상시 걸음이 매우 빨랐다. 무진과 같이 걸을 때면 손을 꽉 잡고 무진이 눈치를 주기도 했다.

-천천히 가. 빨리 가지 말고. 그러다 훅 간다.

-알아. 천천히 갈 거야.


제인과 그녀의 가이드는 먼저 출발했다. 제인은 탁신두까지 간다고 했다. 우리도 곧 출발을 알리며 중간에 다시 보자고 했다. 기주는 기분이 좋았다. 피곤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배낭을 힘차게 메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오늘부터 4일은 걸어야 눈 덮인 만년설을 볼 수 있다고 타카는 말했다. 그전까지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연속이며 힘들 거라고 했다. 타카는 정부에서 받은 공식 가이드 자격증을 소지한 20년 경력의 베테랑이었다. 그간 수없이 오르고 내린 에베레스트는 눈 감고도 알 정도라고 했다. 어렸을 적엔 포터로 활동하며 산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적게는 40킬로에서 많게는 150킬로 까지 짐을 지고 올라갔다고 했다. 지금은 무릎이 좋지 않아 빨리 올라가지 못한다고 했는데, 전성기에는 이곳 파블루에서 루클라까지 3일 걸리는 거리를 하루에도 간다고 자랑했다. 타카는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해가 뜨고 타카, 기주, 무진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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