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연재소설

by 방랑자

-어디서 할지 모르겠는데, 새벽에 땅에 누워서 밤하늘 봐야겠어.


기주가 아침밥을 먹으며 말했다. 위로받았다고 했다. 가만히 반짝이던 별들이 말했다고 했다. 쉼이 있어야 한다고, 달리기만 하면 멈출 수 없다고 언제 쉬어야 할지 모른다고 쫒아가기만 하다 제 풀에 껶어 넘어진다고 했다. 기주는 별과 은하수를 보며 눈물이 맺혔다고 했다. 응어리진 게 가슴속에 많아 몇 번을 더해야 사라질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니면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밤이면 별을 봐야겠다고 했다. 은하수도 좋고 별도 좋고 달도 좋다고 했다. 달이 없어 별이 없어 깜깜한 하늘도 좋다고 했다. 보고만 있어도 좋다고 했다. 잊고 있었던 자신의 삶이 도망갔다가 서서히 오는 중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몸 어디선가 꿈틀거린다고 했다.


-타카 오늘은 어디까지 가?

무진은 지도를 보며 물었다. 어제와 같은 속도라면 붑사까지 가겠다.

-붑사까지 갈 수 있어. 점심은 카리콜라에서 먹을 거야.


하늘엔 까마귀가 때를 짖어 날아가고 있었다. 뭉게구름이 낮게 떠 있었고 햇빛에 살얼음이 낀 땅은 물기가 보였다. 나뭇잎이 바람에 날아가고 마른땅은 먼지가 일어났다. 신발은 먼지에 뒤덮여 흙색으로 변했다. 먼 곳에서 바람에 실려온 음악이 들렸다. 네팔 음악이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집과 집 사이에는 오색 룽타를 매달아놨다. 남자들은 버펄로를 잡아 고기를 나누고 있었고 여자들은 고기를 솥에 삶고 있었다. 잔치가 벌어진 거다. 무슨 잔치가 벌어졌을까 타카에게 물어보니 결혼식 잔치라고 했다.


-네팔 사람들은 일찍 결혼해. 20대 초반에. 한국 사람들은 언제 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요새는 늦게 결혼하는 편이지.

-결혼하는 시기가 빠르고 늦는 게 어딨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 하는 거지. 그게 꼭 나이랑 무슨 상관이야. 20대 일수도 있고 30, 40, 50, 60대도 되는 거지. 보편적인 시선이 마치 규정해 놓은 거 같잖아.

-그렇기는 하지.


보편적인 시선에 맞춰가는 자신이 싫기도 했다. 때가 있다는 말도 힘에 겨웠다. 그때라는 게 사람을 옭매어 힘들게 했다. 참고 버티며 살아가기도 벅찬데 그 나이 때에 하라는 주위에 시선이 싫었다. 가족의 눈빛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주위 사람이 지나가는 말투로 내뱉은 그 말에 화를 내기도 했다. 기주는 그런 생각에 조금은 톤이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주는 속도가 빨라졌다가 늦어지기도 했다. 가끔씩 꽃이 보이면 냄새를 맡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곳이 보이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디에 꽂혔는지 한없이 제자리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기도 했다. 음악을 틀더니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가 배낭 옆주머니에 넣어둔 사탕을 빼먹기도 했다.


아무 말 없이 걷기도 했다.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 정적이 익숙할 때쯤이면 시계를 훑어보고 1시간이 지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등에 땀이 배어 겉옷을 벋고 반팔 차림이 되었다. 선크림을 덧대어 바르고 또 걷는다. 색이 바랜 룽타가 보이고 파란 스레트로 지붕을 만든 롯지가 보였다. 온통 파란색으로 도배를 해놓은 롯지는 문과 창에만 흰색 페인트 칠이 돼 있었다. 타카는 무진과 기주에게 여기서 점심을 먹자고 했고 둘은 달밧을 시켰다. 메뉴판을 보지 않았다. 홍차, 생강 레몬차도 시켰다. 정오에 도착한 카리 콜라에도 트레커는 보이지 않았다. 하산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로지 마을 주민들 뿐이었다. 돌담길에 앉아 무진은 지도를 펼치고 이동경로를 표시했다. 어디서 몇 시에 출발했는지 또 몇 시에 어디로 도착했는지 적었다. 길을 기억하고 싶어 지명도 외웠다. 그래야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았다. 기주는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돌담에 누웠다. 차가운 돌이 등을 식혀 주었다.


달밧은 롯지마다 맛이 달랐다. 주인장의 솜씨에 따라 맛이 있고 없고 차이가 컸다. 어자르는 먹기에 시큼한 정도가 좋았고, 감자와 콩을 커리에 만든 타카리도 좋았다. 기주도 입맛이 살아났는지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워냈다. 무진은 밥과 반찬을 더 받아 두 그릇을 먹었다. 노곤해진 탓에 30분간 꿀맛 같은 낮잠을 즐겼다. 바람이 솔솔 불어 콧등을 간지럽히고 이마가 시원해졌다. 타카는 휴대폰이 터지는 곳에서 항상 집사람과 통화했다. 어디에 와있는지 어디로 갈 건지 행선지를 알렸다.


붑사는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마을이긴 했지만 롯지가 더 많았다. 골목 사이에 롯지가 마주 보고 있었다. 경사로가 끝나는 지점에 넓은 마당이 있는 곳으로 타카는 인도했다. 유달리 땀이 많이나 무진과 기주는 샤워를 했다. 밀린 속옷 빨래를 하고 해가 떠 있을 동안 말렸다. 햇빛이 강해서 금방 말릴 수 있었다.

롯지 식당 주인장의 남편은 세르파였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두 번이나 올랐다는 증서가 식당에 붙어 있었다. 주인장을 제외한 정상에 오른 다른 등반팀 벽보도 많았다. 각지에서 온 팀들은 사진으로 남겼다. 히말라야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실로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대단해 보였다. 정상에 오를 일은 없겠지만, 그곳에서 감수해야 할 위험과 고독을 참아내고 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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