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연재소설

by 방랑자

너른 마당이 있었다. 안개가 땅에서 솟아오른다. 마을이라 부르기엔 집이 적다. 오후 3시가 막 넘어가는 순간 태양도 산 꼭대기에서 모습을 감출 태세다. 계단식 밭은 마지막 빛을 받아 초록빛이 강렬했다. 반대편 아직 빛을 받고 있는 산은 뿌옇게 보였다. 해가 지면 기온은 금방 내려간다고 했다. 양말, 신발, 옷은 모두 빛이 남아 있을 때 걸어 말리라고 했다. 외부에 수도가 있어 양말을 벗고 셋은 발을 씻었다.


제인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식당 테이블에 앉아 트레킹 일지를 쓰고 있었다. 무진과 기주는 2층 방으로 올라가 짐을 풀었다. 옷도 갈아입었고 침낭도 꺼내 침대에 펼쳐 놓았다. 창가에 비친 산과 나무와 새들 소리가 한눈에 보이고 들렸다. 창에는 꽃무늬 커튼이 걸려 있었다. 작은 탁상에 휴대폰, 카메라, 물통을 올려놓았다. 벽에는 못이 박혀 있어 겉옷을 걸어 놓았다.


-해가 지니까 바로 쌀쌀해진다. 낮에는 여름이더니.

-그러니까. 20도 이상 차이 나는 것 같아. 아침저녁은 0도에 가깝고 한낮에는 20도를 웃돌고. 감기 걸리기 딱 좋겠는데. 최대한 땀이 안 나게 걸어야 하는데 이게 쉽냐고.


숙소에서 입을 옷으로 갈아입고 1층 식당으로 내려온 무진과 기주는 저녁밥을 주문하기 위해 메뉴를 들여다봤다. 파블루에서 봤던 메뉴가 다르지 않았다. 현지 음식과 서양 음식뿐이었다. 주인장의 음식 솜씨에 따라 맛이 달라질 뿐 메뉴는 같았다.


-오늘 저녁은 피자다. 매일 한 가지씩 다른 메뉴 먹어봐야겠어. 20일이면 다 먹어볼 수 있겠다.

-나는 스파게티 먹어야지. 참치 스파게티.

-타카, 저녁은 달밧?

-어. 달밧이지. 차 한잔 마실래?

-그럴까. 뭐 마실래 기주야?

-마살라 티? 그거 짜이랑 비슷한 거 같던데. 계피향 나고.

-블랙티, 마살라 티.

타카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비시즌이긴 한가 봐. 사람 하나 안 보이네.

-시즌에는 사람들 엄청 많아. 미리 로지에 전화해서 예약해야 돼. 방 없어서 식당에서 잘 때도 있어. 지금은 겨울이니까 사람들이 많이 안 오지. 그리고 살레리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다 루클라에서 출발하니까.

-그래서 그런가. 진짜 조용하네.

-여기만 그렇지 올라가면 사람들 많아.

-하긴, 비시즌이긴 해도 올 사람들은 오니까. 난 책이나 읽고 있어야겠어.

기주는 햇빛이 남아있는 자리로 옮겨 책을 읽었다. 무진은 밖으로 나가 의자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음악을 틀고 산세를 감상했다. 타카는 차를 가지고 나와 무진에게 건넸다.


해는 산 너머 뒤로 사라졌다. 그늘진 곳은 낮에도 시원했지만 해가 사라지자 한기가 발끝에 느껴졌다. 주인장은 식당에 난로를 지펴놨으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기주, 제인은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창문에 걸려있는 커튼을 모두 치자 안은 깜깜해졌다. 주인장은 촛불 서너 개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안을 밝혔다. 오렌지 빛이 식당 안을 물들였다. 식당 진열대에는 술, 음료수, 과자, 통조림이 있었는데 도시보다 물가가 오른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콜라 500밀리리터는 두 배이상 가격이 높았다. 가이드는 올라갈수록 점점 높아진다고 했다. 루클라, 남체에서는 모든 생필품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두 마을이 에베레스트 트레킹 루트 중 가장 큰 마을이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곳에서 구입하라고 일러줬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홀로 롯지를 운영하는 주인장과 다 같이 난로에 앉았다. 때때로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길지 않았다. 제인이 먼저 방으로 들어갔고 무진과 기주는 따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내일도 아침은 7시 30분 출발은 8시에 하기로 알렸다. 방은 한기가 서려있었다. 만지는 모든 물품이 차가웠고 침낭으로 들어가는 것도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밖은 매우 어두웠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보다 적막했다. 차라리 자는 것이 고요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었다. 뒤척임에 침대에서 지칠 시간도 없이 기주는 금방 잠들었다. 무진은 밖으로 나갔다. 별이 보이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하늘엔 별들이 땅을 밝혀주고 있었다. 은하수가 보이려면 짙은 어둠이 필요했다. 새벽에 다시 나와보기로 했다.


네팔에 온 이후로 새벽에 줄곧 눈이 떠진 무진은 은하수를 보러 밖으로 나갈 참이다.


-어디가?

-은하수 보러. 안 잤어?

-아니, 잤는데 깼지. 나도 갈래 은하수 보러.


하늘은 은하수와 별로 가득 찼다. 별빛에 세상이 훤했다. 촘촘히 하늘에 수놓은 별들은 무진과 기주에게 감동이었다. 도시의 야경은 빛이 강해 하늘을 올려다봐도 별이 보이지 않았다. 산속의 야경은 암흑과 같아 고개를 살짝 뒤로 걷혀도 별이 보였다. 별은 항상 같이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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