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봄날은 언제 올까. 느즈막히 일어나 길거리를 돌았다. 우리에게도 봄날이 있었을까. 봄날은 있었다. 기억이 났다가 사라지기 일쑤였지만 기억이 없진 않았다. 기주는 길을 걸으며 지나간 과거를 생각했다. 무진은 저만치 멀리 가 있었다. 신발에 부딪히는 흙과 돌 소리가 크게 들렸다. 흙먼지가 조금 휘날렸다. 공동 화장실이 있었다. 사람들이 줄지어 있진 않았다. 우리네 어릴 때 사용하던 공동 화장실이었다. 코를 찌르던 익숙한 냄새가 화장실을 지나치며 흘러나왔다.
루클라에서 시작한 트레커들이 팍딩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룹이 있었고 혼자 걷는 트레커도 있었다. 가이드도 있었고 포터도 있었다. 가이드는 배낭을 짊어졌지만 포터는 배낭 두개를 짊어졌다. 다른 포터는 식료품을 짊어지고 지나갔다. 삐쩍 마른 몸매에 구멍난 신발을 신은 포터도 있었다. 신발도 아닌 슬리퍼를 신고 가는 포터 또한 있었다. 앙상하게 남은 지방은 없어보인 그들이 짊어지고 가는 양은 실로 어마어마해 보였다. 젊어서는 150kg까지 짊어진다고 했다. 그래야 돈이 된다고 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지만 그들의 모습은 대등하게 보이지 않았다. 대등한 위치에서 비교 할 수 없었다. 사람 산다는 게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삶이다.
-가진거 버리고 살 수 있을까?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냥,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미니멀 라이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무거운 짐 등에 매달아 버티며 살아가는 모습 보니까, 괜히...
-나름의 방식이 있는거지. 물론 힘들겠지만 저 사람들도 그들만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기는 하지만, 뭐랄까. 설명하기 힘들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 가벼운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저들의 삶으로 들어가 며칠만 살아봤으면 좋겠어. 그럴 수만 있다면.
아니야.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몰라.
-흘러가는 대로 살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힘들다. 물 흐르는 대로. 굳이 하지 않으려해도 될일은 될꺼야.
-참 신기한게, 여행 오면 사람들이 참 많아. 다들 어떻게 이렇게 나와서 여행은 하는지. 일은 하는건지 아님 우리처럼 퇴사하고 나온건지. 하긴, 어디지 스페인 살던 친구. 뉴질랜드에서 만난 친구가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했거든. 정확히 무슨 직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름 휴가가 1달이었어. 부럽더라. 바르셀로나 덥다던데. 1달 휴가. 우리는 연차 쓰는것도 눈치 보이고, 시간이 생겨도 비행기표 예매하지 않으면 가고 싶을 때 가지도 못하지.
이래서 사람들이 공무원에 매달리나.? 거기도 나름의 룰이 있겠지?
-아마도.
-본인 일을 해도 힘든데 오죽하겠어. 용기지. 이것도. 장기여행도 퇴사 아니면 할 수 없으니까. 우리에겐 여유도 사치였을까? 아니 여유라기보다 1년에 한 달만 시간을 주고 여행 다녀오면 활력이 생길텐데. 평생을 일만 하고 살기엔 너무 가혹하다.
-어쩌겠니.일탈을 하는거지 사회적인 규범에 가끔은 벗어나는 게 필요해. 도덕적으로 규탄 받을 일만 아니라면. 하고 싶은대로 사는거. 힘들겠지만.
-쉽지 않지. 어렵지. 근데 여기 어디야?
-여기 몬조로 가는 길.
-내려가자. 가서 밥 먹자. 뭐지, 그거 막걸리 비슷하다고 했던거.
-창.
-그거 마시자. 치킨 달밧에.
-그래.
-좋다. 걸어도 좋고, 아무것도 안해도 좋고, 은하수를 봐도 좋고. 다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