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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Aug 08. 2017

#80

연재소설

-한번은 50살 아저씨랑 같이 일한적이 있었어. 어깨까지 머리카락이 내려온 아저씨였어. 처음 봤을 땐 많아야 40대 초반이라고 생각했는데. 뭐 아무튼 그 날 우리는 영종도로 일을 하러 갔어. 6시 20분까지 나오라고 하기에 일을 얼마나 빨리 시작하기에 그 때까지 나오라고 하나 생각만 했지. 낙성대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suv차량이 오더라구.

'용역에서 오셨죠?' 네. 그러고 차에 탔어. 그때였지. 차에 탄 순간부터 말이 쏟아지는데 폭포수 처럼 쉴새없이 떠드는거야. 왜 청산유수라는 말 있잖아?. 딱 그 반대였어. 말이 얼마나 많은지, 기가 찰 노릇이더라구. 살면서 그렇게 말이 많은 분은 처음 봤다진짜. 가는 내내 인천, 공항, 영종도 부터 시작해서 본인이 다녀본 지역들을 말하기 시작해 일이 끝나면 어떻게 집에 가야 하냐며 지하철 노선도를 얘기하다가 아침밥은 주는지 일을 몇시에 끝나는지, 차에는 우리말고 중국에서 오신 교포 두분이 더 타고 계셨거든. 한국에 왜 왔는지, 일을 할만한지, 중국은 살만하냐, 중국은 음식거리가 괜찮냐, 그리고 사장에게는 다른 현장이 있는지, 소속으로 일하면 얼마 줄수 있냐, 차는 본인차량인지 물어보고.


갑자기 음주운전을 하면 절대 안된다는거야. 물론 맞는 말이지. 절대로 하면 안되는거니까. 안전밸트는 꼭 매고 다니시라고.  사실 얘기를 듣고 보면 우리가 보통 사람 만날 때 하는 얘기이긴 해. 다만 상대방의 말도 좀 듣고 말을 이어가는데 이분은 아주 잠깐 듣는둥 마는둥 하다가 본인 얘기를 또 이어가시더라. 그렇게 1시간을 달려 영종도 현장에 도착했어. 아침 먹고 일을 시작하는데 그 때부터 또 따발총처럼 쉼없이 얘기를 하시는데 끝날때까지 멈추질 않았어. 가끔씩 대꾸를 해드렸지만. 지치더라. 시간이 잘 가긴 했다만서도. 그렇게 힘든 날은 처음이었어. 장시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보통일이 아닌거야. 나와의 관심사가 전혀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듣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까웠으니까. 너무 힘들었어 진짜 그때 생각하면.


짧은 시간에 무진은 많은 말을 쏟아냈다. 입이 말랐다. 물도 마시고 싶고 차도 한잔 하고 싶었다. 허기도 졌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낯이 익었다. 팡보체에 도착했다. 일전에 묵었던 롯지로 찾아가 점심을 먹고 내려갈 참이다. 2층 식당에 올라가 배낭을 내려놓는데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딩보체에서 만난 부녀였다. 일행은 3명이었다. 부녀 그리고 직장 동료. 기주가 말문을 열었다.


-언제 오셨어요?

-우리는 어제 내려왔고 오늘 아침에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에 다녀왔어요. 얘기 안해줬더라면 지나쳤을텐데 고마워요. 여기 진짜 굉장한 장소네요. 어마어마한 베이스캠프에 그 위로 우뚝솓은 아마다블람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하늘은 얼마나 맑은지 구름 한점 없이 정상이 깨끗하게 보이는데 감탄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우리 딸도 같이 올라갔는데 진짜 끝내준다고 엄치를 척 올렸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다녀왔어요?

-저희는 중간쯤 가다가 돌아왔어요. 이 친구가 어제 칼라파타르 올라가다가 고산병이 와서 고생 했는데 다행이 좋아져서 가긴 했지만 중간에 돌아왔죠.

-아이고. 안타깝네요. 그래 지금은 좋아졌어요?

-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신기한게 내려가니까 싹 사라지던데요.

-다행이에요. 몸을 봐서는 가이드도 없이 다닐 몸인데 고산병에는 장사도 소용없나봐요.

-맞습니다. 고생 많았어요. 처음 겪어보니까 고산은 위험한 곳이라는 걸 느꼈죠.

-나도 고생했는걸요. 딩보체에서 콩마라 올라가는데 얼마나 머리가 아픈지 다시 내려왔잖아요. 아프면 쉬던지 내려가는게 약이죠.

-네 맞습니다. 하산이 약이에요. 쉬어도 쉬는것 같지도 않고 무조건 내려가는게 약인데, 이게 사람 맘 처럼 쉽지 않더라구요. 이제가면 언제 다시 올 줄도 모르고, 결정 내린다는 게 만만치 않죠.

-맘 처럼 되지 않죠. 그래 이제 어디까지 내려가요 오늘은?

-아마도 탱보체에서 하루 쉬구요. 다음날 남체 일찍 내려가서 쉬고 그 다음날 루클라로 바로 내려갈려구요. 그리고 경비행기 타고 카트만두 가야죠.

-일정이 비슷하겠네 우리도 오늘은 탱보체까지 갈 예정인데. 어때요 오늘 술 한잔 할까요? 탱보체에서?

-좋죠. 마시고 싶었는데. 기주야. 오늘 마실까?

-그래 마시자. 많이 내려왔잖아.

-저희는 점심 먹고 내려갈려구요.

-그럼 우리가 먼저 내려가고 있을께요. 탱보체에 롯지가 워낙 없어서 만나게 될겁니다.

-예. 조심히 내려가세요. 저녁에 뵈요.

-그럽시다.


일행은 먼저 내려갔다. 기주는 피자를 먹었고 무진은 볶음면을 먹었다. 타카는 달밧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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