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은 체리 베기

by 얼떨결정


남편과 다툰 날이지만 함께 과일을 먹었다. 냉랭한 분위기, 말 없는 식탁 위, 체리는 영롱하게 빛난다. 달달하고 상큼하다. 베어 물고 즐기자니 입안에 체리향이 퍼진다. 사실 체리는 꽤 아쉬운 과일이다. 왜 체리는 포도가 아닐까? 왜 씨가 이렇게 커서 꼭 먹다가 뱉거나, 미리 일일이 빼는 수고스러움을 해야 하는 걸까? 체리 맛이 나는 다른 과일은 없을까?


달달한 체리를 맛보려면 씨를 뱉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체리 씨를 뱉어 그릇에 놓는다. 남편도 내 눈을 피하며 체리 씨를 그릇에 뱉는다. 원래 각자 개인 앞접시나 옆에 둔 휴지에 뱉는데, 오늘따라 설거지가 귀찮다며 공용 씨 뱉기 그릇을 쓰고 있는 우리. 식사 후 체리를 먹자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다툴 줄 몰랐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해 생긴 일일뿐이다. 덩그러니 놓인 씨에 듬성듬성 달라붙은 과육을 보니, 윤기 나던 체리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체리는 흔적만 남겨두고, 이미 나와 내 남편의 혀와 인사를 나눈 뒤,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부부간의 사랑도 체리인 걸까. 아름답고 즐거운 부분들을 맛보면, 꼭 서로 다투며 눈을 흘기는 날도 온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자주 잊는다. 도대체 그 윤기 나는 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체리로 배를 채우면 알 수 있다. 이미 우리 마음속에 들어가 있구나. 체리 향이 달다.


매거진의 이전글대충 사는 것도 열심히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