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만하고 싶은 이야기들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과,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어린 시절 주 양육자가 여러 번 바뀌었다. 엄마 아빠랑 살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다가, 다시 엄마 아빠. 어느 날 엄마가 집을 나가고, 저녁마다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었다. 곧이어 초등학교 입학할 즈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졌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다시 엄마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가끔 집에 와서 엄마의 남자친구가 밥을 먹고 갔다. 1년 반이 지나자 그 아저씨도, 엄마도 죽었다. 이후 몇 개월 정도 아빠랑 지내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와 함께 자취를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는 나와 엄마가 아는 나, 그리고 아빠가 아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고, 불안하면 손가락을 빨고, 사소한 일에도 자주 우는 어린 나를 보았다. 엄마는 중학생인 내게 누구 딸인데 이렇게 다르냐고 화를 냈다. 사춘기였던 나는 엄마가 직접 안 키웠으니 다른 게 당연하지라고 답하는 냉소적인 아이였다. 아빠는 착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무엇이든 알아서 잘하는, 잘 웃고 유쾌한 고등학생 딸의 모습을 보았다. 아빠는 내가 엄마를 어떻게 대했는지 모르기에, 아빠가 만나는 분에게 엄마 대하듯 대해도 된다고 편히 하라고 말할 수 있었다. 엄마 대하듯 대하면 정말 큰일 나는 줄도 모르고.
나와 닮은 누군가를 찾고 싶었다. 외동딸이며, 부모가 이혼했고, 이후 어머니가 자살하고, 집에 돈이 없는 누군가. 남은 가족들은 친절하고 다정하며, 아버지와 사이도 좋지만, 막상 어머니 기일에는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고 제사도 없고 그냥 혼자 가만히 있는 사람. 이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화가 나다가도, 누군가를 탓하기에는 어머니와 친가 가족들이 남이 된 지는 이미 10년이 지난 뒤라서 뭐라 할 말이 없는 사람. 외가는 뭐 했냐고 묻고 싶지만, 외가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지낸 건 엄마라서 내게 외가 친척 연락처도 하나 없는 게 당연한 사람. 나는 사람들이 엄마의 죽음을 기억해주지 않는 것 같아 슬프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나는 잊힌 것은 그때의 나였고, 그게 슬펐다.
고3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족들은 병문안을 갔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신 줄 모르고 있다가 장례식장에 손님처럼 불려 갔다. 택시를 타고 도착하니 스님이 불경을 이미 외우고 계셨다. 나중에 들으니 할아버지가 내 공부에 방해된다고 알리지 말라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바람을 가족들이 들어준 것뿐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는 화내지 않았다. 특별히 많이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제 가족 중에 부모를 잃은 사람이 나만 있는 게 아니라서 내심 기대했을 뿐이다. 할아버지의 첫제사에 참석하면서 기대했다. 올해 엄마 기일엔 누군가 연락이 오지 않을까? 그런 일은 없었다.
그게 나를 오래 슬프게 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슬프게 할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들에게 말해 보는 게 어떻냐고 했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 나는 마음이 약해서 미안하다고 하면 괜찮다고 답할 것이 분명한데, 그때의 나는 조금도 괜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지 않고 사정이 있었다고 하면 그걸 어찌할 것인가. 그냥 가끔 조금 슬픈 채로 살아가기로 한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이 있다. 부모의 이혼은 IMF의 영향이었다. 엄마의 자살은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더불어 당시 유명 배우의 죽음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게 편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 모든 일들 속에서 나는 정말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남아있는 다른 가족들도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이건 누구의 탓이 아니라 그냥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만 집중하며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살다가 긴 기간이 지나고 서른이 넘어 어느 날 처음으로 정신과에 갔다. 우울증 약 한 알을 받았다. 의사는 내게 어머니의 자살 이전, 사실상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 이미 그때의 불안정한 환경이 지금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고장 난 이유가 엄마 탓만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드디어 엄마에 대한 분노보다 연민이 커졌다.
2016년에는 힘들어서 브런치에 글을 썼다. 2025년에는 나아지는 것 같아서 글을 썼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슬프지만, 이제는 슬픔이 조금은 지겨운 내가 되었다. 더 좋아질 것이다. 시간이 걸릴 뿐이다. 슬픈 날도 있지만, 슬프지 않은 날도, 심지어 기쁜 날도 있는 그런 날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드디어 이 모든 지겨운 이야기들을 다시 쓰고도, 또 그냥 밥을 먹고 씻고 웃고 떠드는 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마지막 5부 「들릴 때까지 외치는」입니다. 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 했는데, 쓰다 보니 그저 일기 같은 글을 올립니다. 어쨌든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다른 일들이 바빠 다음 편은 또 언제 쓰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연말 전에 남은 두 편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늘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보니 양해를 구합니다. 잊지 않고 또 찾아오겠습니다.
다들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