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정말로 선택일까?
엄마의 죽음은 지나치게 깔끔했다. 소파 위에 통장과 보험 같은 것들이 비밀번호와 함께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오랜 친구에게 갚아야 할 돈은 메모와 함께 남겨져 있었다. 학교 어머니들 사이 모임에서 관리하던 돈은 현금으로 인출되어 장부와 함께 누구에게 전달하라는 메모와 함께 봉투에 담겨 있었다. 당신의 짐이 아니어서 누군가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것들도 가방 하나에 모여있었다. 와인잔에 레드 와인이 약간 남겨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119 구급대원이 하얀 천을 씌우고 엄마를 데리고 나간 후, 엄마의 휴대폰을 발견했다. 미처 전송되지 못한, 전송 실패라고 느낌표가 떠있는 문자가 눈에 띄었다. 이미 이혼한 지 오래인 전남편, 즉 아빠에게 보내는 문자였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정리해 달라는 문자였다. 그날 우리 엄마의 유일한 실패였다.
자살 유가족으로서 유가족의 삶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힘들다고 쓰면 되었다. 그러나 자살 그 자체는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쓰면, 죄책감이 들었다. 왜 나는 막지 못했을까? 한편으로 '엄마가 정말로 원한 것이었다면, 잘 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죄책감은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는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죽음 직전 모든 것을 정리했다면, 이건 분명 엄마가 원하던 선택일 것이다.
자살 관련된 논문이나 글을 읽으면, 자살 방지를 위해 주변인의 관심과 적극적인 개입을 말한다. 그렇다면 관심이 부족하여 나는 엄마를 잃었을까? 결국 논문의 의의나 정책적 함의 같은 걸 쓸 수밖에 없는 연구자들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자살 유가족들을 언급하며 문제의식 및 연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더니, 결론에 가면 자살 유가족들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문장들이었다. 죄책감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에 갔더니,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하고 끝끝내 성공하여 배우자를 잃은 분이 오셨다. 그분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사신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른 글들을 읽으며 짜증이 났지만, 내가 직접 글을 쓰거나 관련된 공부를 할 때에도 차마 막을 수 없다고는 쓸 수가 없었다. 막을 수 없다고 쓰면 너무나 무력해졌다. 자살률 1위의 나라에서 이런 일은 계속될 거라고 쓴다는 게 어려웠다. 자살 유가족의 자살률은 일반인 보다 높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면 자살은 막을 수 없는 일 같았다. 일상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많은 것들을 성취하고, 웃고 떠드는 삶을 살았다. 슬프게도 그 와중에도 삶이 내일 당장 끝나도 아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자주 느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은 세상에 감사한 일을 수없이 찾을 수 있는 순간조차, 내 마음속 한편에 남아있었다. 아빠와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잘하지 않지만, 아빠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아빠를 생각하다 보면, 자살은 반드시 막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결국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쓰면 죄책감에 힘들었고, 자살을 막을 수 없다고 쓰면 세상과 나 자신이 두려워졌다.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는 나도 모르게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다. 당시 2008년으로 죽은 탑스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또래며,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경제가 어려운데 직장은커녕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고, 만나던 사람과 이별한 이혼 한 지 오래된 여자. 게다가 몸도 아팠다. 심장이 일반인 보다 빠르게 뛰었다. 누군가가 죽을 만큼 힘들다는데,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살라고 계속 응원이나 보내는 짓을 하는 게 과연 괜찮은 짓인가?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죽은 해는 2008년이고, 내가 엄마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그러자 죽음은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에는 반대로 엄마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무책임하게 그럴 수 있는지, 하나 남은 딸을 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소리를 지르고 미워했다. 미워할수록 죽음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잘 살아갈 거라고 다짐할 때마다 더더욱 엄마가 미워졌다. 그러자 걷잡을 수 없이 슬펐다. 불쌍한 우리 엄마. 나와 함께 할 수 있던 딸과 엄마 사이의 그 모든 순간들과 함께 맞이할 모든 장면의 가능성을 버리고, 홀로 사라진 사람. 남겨진 나 자신도 불쌍해졌다.
오랜 기간, 도대체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써야 할지, 혹은 없다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막을 수 없다고 써도 되나? 막을 수 있다고 쓰는 건 내 진심인가? 자살 유가족의 삶과 고통이 나아지긴 한다고 쓰는 건 가능했다. 나는 분명 나아지고 있었으니까, 반면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쓰는 것은 내게 확신이 들지 않는 문장이었다. 연구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논문 쓰면서 마지막에 자살은 예방할 수 없다고 쓸 수는 없으니까.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제 17년 지나고 있다. 우연히 유튜브를 떠돌다가 나종호 정신과 의사의 유퀴즈 출연 인터뷰를 보았다. 암 투병에 자살을 비유하고 계셨다. 자살은 선택이 아니라 투병 중 죽음이라는 이야기였다. 그제야 내 오랜 질문의 답을 찾았다.
아빠가 암 투병을 할 때, 내가 밤을 새워 본 암 환자 및 보호자 카페의 글들이 생각났다. 불안과 혼란, 고통 속에서도 기적을 바라고 기꺼이 고통이 수반되는 치료를 받는 사람들.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자 했지만 끝끝내 어쩔 수 없이 호스피스에 가는 사람들. 암성통증을 진통제로 이겨내면서도 또 남은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다가 결국 암에 지는 사람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경과가 좋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보내고, 경과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기도를 보내는 사람들의 글들. 그리고 이어지는 추모 글들. 그리고 이전에는 없던 신약이 개발되기를 계속해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신약과 치료법을 계속해서 개발하는 연구자들과 의료진들.
암환자의 가족이 본인의 가족이 암으로 떠났다고, 암은 치료받아봤자 어차피 죽는다고 막을 수 없다고 타인에게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100년 전, 사람들이 표적항암제 같은 걸 상상도 못 하던 시기에도 누군가는 연구를 계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어져 지금의 표적항암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100년 뒤에는 자살과 정신 병리에 관한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이 나와있을 거라고 믿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RfXszySBEKU
http://www.hi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397
*요즘은 발행을 한동안 못했습니다. 기다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글은 너무 늦지 않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5부「들릴 때까지 외치는」입니다. 이제 3편 정도 남았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조금 더 사적인 이야기들을 하게 될 예정입니다. 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