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유가족으로 살아가기
엄마가 자살로 돌아가신 이후 나는 아주 많은 글들을 읽었다. 자녀를 자살로 잃은 부모들의 수기가 많았다. 남겨진 부모들의 마음은 쓰나미이자 태풍이 지나간 폐허 같았다. 그에 비해 내 슬픔은 그저 내리는 비처럼 느껴졌다. 장마도 아니고, 그냥 소나기 치고는 조금 길게 오는 비.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이 적은 수기들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기에는 부족했다. 내가 고인이 되어버린 엄마에게 느끼는 사랑도 그리움도 분노도 연민도 그냥 아주 작은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그렇게 고통스럽다니. 나약한 나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수기를 찾아 읽은 후에는 논문과 학술 서적을 많이 읽었다. 한국어, 영어 가리지 않고 읽었다. 자살과 관련된 연구와 책이면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래도 무언가가 여전히 부족했다. 나는 이혼가정에서 자랐고, 엄마와 함께 살았던 기억은 2년 정도밖에 없다. 물론 7살 이전에 어렸을 때는 엄마와 함께 살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때 기억은 대부분 조부모님과 함께였다. 돌이켜보자면 나는 엄마가 굳이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도 부모와의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었을 터였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이해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며 읽었던 많은 글들이 마치 얹힌 것처럼 내 마음속에 쌓였다. 마음이 답답해져 결국 직접 글을 쓰게 되었다. 세상 어딘가에 누군가, 아니 또 다른 내가 이런 글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없고, 이혼 가정이어서 조부모님 손에 자라고, 외동인 어떤 사람. 아들이라면 아빠를 잃고, 딸이라면 엄마를 잃은 그런 누군가가 분명 더 있을 것이다. 그런 누군가가 또 있다면 그 사람은 너무 오래 헤매지 않길 바라며 2016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막상 적기 시작하자 내가 차마 하지 못했던 다른 여러 말들을 하면서 스스로의 고통을 덜어내기 위한 글들이 이어졌다.
2016년의 글들은 어두웠다. 몇몇 분들이 위로의 댓글을 적어주셨지만, 나는 쉽게 고맙다거나 괜찮다고 답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나아지냐고 묻기도 했다. 그 역시 답변하기 어려웠다. 살아갈만하고, 나아진다고 쓰려다가도, 아닌 때가 다시금 찾아온다는 걸 알기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차마 괜찮아질 거라고 슬픔이 옅어진다고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은 2025년. 자살유가족은 자살 확률이 일반인보다 20배가량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이제는 이 한마디도 누군가를 위해 적을 수 있게 되었다. 놀랍게도 나아진다.
슬픔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슬픔은 언제고 다시 찾아온다. 죄책감도 분노도 다시금 찾아온다. 아직도 이러냐며 자괴감이 들고, 그저 슬퍼서 사무치고, 그립고, 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처리할 나만의 방법도 생긴다. 그 방법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속상하지만, 그 속상함을 달랠 방법도 생긴다. 기존에 효과가 있던 방법이 잘 되지 않으면, 또 다른 방법을 찾게 된다. 방법을 계속 찾아나가다 보면 결국에는 슬픔뿐만이 아니라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다룰 수 있게 된다. 행복할 때 느끼는 불안감, 웃을 때 느끼는 죄책감, 무언가 성취했을 때 느끼는 공허감도 아직 남아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과 내 생을 함께 꼭 붙들고 행복, 웃음, 성공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내가 해냈다고 남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본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말들을 스스로 다시 해주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20대 초반의 나는 신과 같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나타나 엄마를 다시 되돌려주길 바랐다. 그 사건이 없었던 일이 되게 해달라고 바랐다. 그게 어렵다면, 그 고통이 옅어지고, 나아질 거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주변 사람들이 말해주는 건 믿지 못하기 때문에 전지전능한 존재가 말해주어야만 했다. 만약 그것도 어렵다면 그냥 이 모든 걸 그만둘 수 있게 해 주길 바라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미래에서 과거의 나를 바라보면서 해줄 말이 하나만 남게 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엄마가 되돌아온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만둬도 된다고 말해줄 수도 없다. 해줄 수 있는 말이 하나뿐이다.
극복하는 게 아니다. 그냥 살아진다. 그리고 살다 보면 나아진다. 지금의 나는 자주 웃는다. 미래를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게 좋을지 고민한다. 가정을 꾸리고 내 인생에 정말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여전히 가끔 힘들기 때문에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하기에는, 과거를 돌아보면 아득하다. 나는 결코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언제나 늘 과거보다 지금이 나았다. 그래서 그때의 울고 있는 나에게 혹은 또 다른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걱정하지 마. 나아질 거야. 진짜야.
*혹시나 최근 자살로 누군가를 잃으신 분이나,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렵거나, 우울하신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아래와 같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1.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지역 내 정신건강증진센터, 보건소, 유가족 자조 모임 등을 찾아 도움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2. 필요하다면 정신과에 방문하여, 도움을 받으셔도 좋습니다. (정신과든 상담센터든 모두 맞는 곳을 찾으셔야 합니다. 한번 갔는데 경험이 안 좋다면, 안 가지 마시고 다른 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3. 술을 드시지 마세요. 특히 혼자서 기분이 안 좋을 때 드시는 것은 끊으시고, 좋은 기분으로 주변 사람들과 즐기시는 것 정도만 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54271.html
*발행 후 연재일 관련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되었으나, 개인 사정으로 수요일 연재로 변경합니다.
이제 마지막 챕터네요. 5부「들릴 때까지 외치는」입니다. 다음 편은 자살유가족으로서 이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눠보려 합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