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을 하라고요? 어떻게요?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라는 문장을 보면 낯설다. 평생 해본 적 없는 일인 것 같다.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수는 없기에, 다른 방식의 사랑을 택했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게 상처를 주더라도 괜찮을 사람만을 사랑했다. 덕분일까? 이별은 힘들었지만 그 어떤 이별도 내 삶을 망가뜨리진 않았다. 슬픔이 컸던 관계도 물론 있다. 하지만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겪기 쉬운 중독적이고 파괴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 관계가 길지는 않았다.
심리학에서는 'A fear of intimacy(친밀감에 대한 두려움)'라는 개념이 있다. 가까운 관계의 사람과 깊이 있는 생각이나 감정을 주고받을 때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타인과 깊이 있는 정서적 연결을 방해한다. 거부, 거절받으면 생기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불안이다. 자아 존중감이 낮아 스스로가 타인과 깊이 있게 연결될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경우 느끼기도 한다. 이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하고, 이를 느끼게 되는 원인에 대한 이론도 여러 가지이다. 35개 정도의 질문지 목록으로 나의 두려움을 측정해 보면, 나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될까? 혹은 나는 그냥 상처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늘 적당히 사랑하는 사람이란 걸 인정하게 되는 걸까?
어떤 일이든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해두어야 했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연인이 내 진짜 모습을 알고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상대와 너무 강하게 결합되고 싶은 나머지, 나 자신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두렵다는 말을 모두 '어떻게 하지?'라는 말로 바꾸어서 내 감정을 숨겼다. 내 두려움은 대체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과 유사했다.
중학교 3학년, 엄마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기일에는 가족 중 아무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가족들의 반응이 두려워 왜 그랬냐고 물어보지도 못한 채 긴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연인 관계에 있던 사람들에게 나의 아픔을 털어놓고 의지했다. 당연히 엄마의 기일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연인들 중 그날 나와 같이 있어주었던 사람은 없었다. 같이 있어주겠다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으나, 실현이 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를 위로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분명 모두 진심이었을 텐데, 갖가지 이유로 기일에 내 옆에서 밤이 지나길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자살유가족으로서 나의 아픔은 단순히 엄마의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 이후에 있었던 소통 없이 고립되어 애도할 수 없었던 상황과 관련이 있다. 그 슬픔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해 오래도록 외로웠다. 나는 내 이야기를 주변에 참 많이 털어놓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워지는 사이일수록 정작 정말로 중요한 것은 숨겼다. 즉,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슬픔은 잘 이야기했으나, 엄마의 기일에 혼자 있어야 했던 게 속상하고, 그래서 같이 있어주길 바란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연인 관계였던 사람 중에는 왠지 엄마의 기일에 나랑 꼭 같이 있어줄 것만 같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할만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상대에게는 결코 엄마의 기일이 언제 인지조차도 말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지 않게 나를 지키는 것.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어쩌면 다 우연일 수도 있다. 나와 같이 기일에 있어주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상황이 안되었던 것도, 내가 유독 의지했던 사람에게는 기일을 알리지 않은 것도. 그냥 우연이 겹친 일들에 내가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을 해왔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주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늘 적당히 다 좋은 사람들이었지 하고 생각을 멈춘다. 대신 정말로 내가 상처받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왔었는지 돌이켜본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는 건 못했어도, 상처받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는 사랑했지 않나? 한때는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웠다. 가끔은 나는 분명히 그래왔으니, 그 사랑의 순간들이 뿌듯했다.
요즘은 사실 이렇든 저렇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든 혹은 상처받는 것이 겁나 사랑하지 못했든 전혀 상관이 없다. 내가 나를 지키려 했든, 혹은 오히려 도리어 그 때문에 진심으로 타인과 사랑으로 연결될 기회를 잃었든 마찬가지이다. 요즘의 지나간 나의 생각과 마음, 선택에 그 어떤 것도 스스로를 탓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떤 과거의 일도 스스로 도대체 왜 그랬냐고 묻지 않으려 애쓴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상처받은 적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용감한 사람들은 은연중에 가깝게 지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는 용감한 사람들보다는 두려워하는 나약한 사람들을 언제나 더 사랑했던 것 같다. 그러니 분명 두려워하는 나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Descutner, C. J., & Thelen, M. H. (1991). Development and validation of a Fear-of-Intimacy Scale. Psychological Assessment: A Journal of Consulting and Clinical Psychology, 3(2), 218–225. https://doi.org/10.1037/1040-3590.3.2.218
권민혁, 김은하, 신희천. (2017). 한국판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 구성요소 척도의 타당화. 상담학연구, 18(6), 63-80.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4부 「외로워도 함께」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은 영원함에 대한 생각을 나누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