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멈추지 않더라도
IMF 때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떨어져 살게 되었을까? 나도 그중 하나였다. 부모의 이혼, 조부모님 손에 맡겨진 나. 일주일에 한 번 볼 수 있는 엄마와, 일 년에 설과 추석에만 만나는 아빠.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기가 죽을까 봐 한부모가정 같은 건 신청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엄마가 자살로 돌아가셨다. 내 보호자는 아빠가 되었다. 나는 아빠에게 직접 한부모 가정을 신청해서 지원을 받자고 했다.
고민해 본다. 무엇이 내 삶에서 달랐어야 했을까? 부모가 이혼을 안 했더라면, 엄마가 죽지 않았더라면, 혹은 죽더라도 자살로 죽지 않았더라면, 집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다면, 적어도 외동이 아니었다면. 어떤 조건이 변해야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어떤 조건이 달라져도 어쩔 수 없이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는 로봇인 척했다. "뭐, 알겠는데 그래도 어쨌든 할 일을 해야지."라는 말로 해야 할 일을 계속해서 하는 사람. 그 외 시간들에는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거나, 서러워했다. 걱정은 끝이 없었다. 미래가 잘 풀리지 않으면 어쩌나, 갑자기 누가 죽으면 어쩌나. 심지어는 전쟁도 두려웠다. 정확히는 전쟁에서 혹시나 나 홀로 살아남을까 봐 무서웠다.
내 이야기와 걱정의 목록들을 들은 사람들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누군가는 내게 참 강하고,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당황스러웠다. 상대가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났다. 누군가들은 내게 너무 약하다고 했다. 그렇게 나약하게 굴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고 우겼다. 이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났다. '네가 뭘 알아?'라고 속에서 상대방을 욕했다.
스스로가 양파처럼 느껴졌다. 까도 까도 새로운 면이 나왔다. 처음 본 나는 밝고 유쾌하지만, 한 껍질 벗기면 슬픈 인간이었다. 그 안에는 또 어디서든 나 하나 믿고 살아갈 수 있다는 오만한 내가 있다. 그다음에는 혼자는 너무 외롭다고 우는 아이가 있다. 껍질을 벗길 때마다 늘 또 다른 나를 마주했다. 결국 멈출 수 없었고, 울며 양파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양파를 까면서 울지 않는 방법을 찾아본다. 그러면 찬물에 잠시 담가두거나, 전자레인지에 잠시 돌린 뒤 까거나, 물 묻은 칼을 쓰라는 등 다양한 방법이 나온다.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져 눈물이 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우는 것도 지겨워질 때 즈음, 눈물이 나든가 말든가 드디어 계속 껍질을 깔 수 있게 되었다.
한 번도 무너져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난 적 있다. 힘든 일은 있었지만, 무너지거나 모든 걸 포기해 버릴 것 같은 때는 없었다는 사람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약해진 사람만이 진정으로 강해질 수 있다. 양파를 여러 번 까본 사람만이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과 같다. 눈물이 흐르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진다. 내가 너 참 강하구나 하는 말을 들을 때 내가 눈물이 찔끔 낫던 건, 양파의 매운 향이 갑자기 생각났기 때문이다. 강하다는 건 눈물을 멈추는 게 아니었다. 눈물과 함께라도 다시 껍질을 벗기는 것이었다.
9월 5일에 업로드 된 글이 설정이 잘못되어 다시 올렸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4부 「외로워도 함께」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은 친밀한 관계에서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