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행운은 인복에 사용된 것이 틀림없다.

내가 견디지 못하는 나를 대신 버텨주던 사람들

by 얼떨결정

인생에 행운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복된 인생이었다. 부모는 이혼하고,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바라는 것을 떼써보지 못한 채 자랐다. 그러나 타인에게서 건네받은 마음들이 너무나도 컸다. 그게 나를 늘 지켜주었다.


늘 할머니가 묶어주신 똑같은 머리 모양으로, 몇 가지 옷만 돌려 입는 아이. 지금 같으면 놀림받았을 것 같은데, 초등학교 시절 나는 그런 괴롭힘을 받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순했던 건 오로지 운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게 유독 칭찬을 자주 해주시던 나이 많은 할머니 담임 선생님도 행운이었다. 아직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받아쓰기 성적이 좋다는 핑계로 나를 업어주셨던 게 기억난다.


중학교 때는 부모님이 내가 어릴 때 이혼하셨다는 말을 여기저기 하고 다녔다. 어떤 친구가 사람들이 안 좋게 보니까 그런 걸 이야기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정교육을 못 받은 거라는 말을 하며, 허세로 내 속상함을 감췄다. 어느 날, 다른 친구가 부모님이 자주 싸우셔서 이혼할까 봐 두렵다 했다. 속으로 '자기가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얘는 참 걱정도 많네' 했다. 겉으로는 다정한 척 부모가 이혼해도 별 일 안 생긴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나의 공감 없는 말속에서 스스로 위로를 찾아내고, 용기를 찾아내고, 내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때 처음으로 이야기하고 다니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고등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이 따로 불러 문제집을 챙겨주며, 저소득층 고등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기업 장학금에 대해 알려주셨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돈 걱정을 덜하고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두와 친하지만 아무랑도 특별히 친하지 않은 나를 어떤 사교성 좋은 친구가 본인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는 그날 치킨을 먹으며 하루 종일 각자의 부모님에 대해 욕했다. 극단적인 이야기를 할 때면 기꺼이 서로의 부모님을 욕해줬다. 차마 본인 입으로 뱉기 힘든 상스러운 욕을 서로의 부모에게 대신해 주면서, 대신 욕해줄 테니, 너는 부모님한테 잘하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그날의 일을 평생 비밀에 부치기로 했고, 친구도 나도 부모님과 꽤 잘 지내는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되었다.


20대 때는 스스로를 견디는 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나 자신이 별 볼 일 없게 느껴졌다. 그때 알게 된 동생이 있다. 그 친구는 내 어두운 그림자에 대신 나 대신 서 있어 주었다. 도저히 스스로가 싫어서 버틸 수 없다고 느껴졌는데, 그 친구는 별일 아닌 것처럼 괜찮다며, 내가 멋지다고 해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못 미더워지면 언제나 이 친구를 떠올렸다. 내가 한심하다면, 이렇게 착하고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 내 친구일 리가 없다. 그래서 내가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오래 이어졌다. 덕분에 나도 10년이 넘게 계속 괜찮은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직장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났지만 마음을 깊이 나눈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가끔은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했다. 이쯤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내 인생에 모든 운이 인복에 몰려있구나. 그래서 돈도 없고, 원가정에 복잡한 문제가 있었구나.' 깨닫고 나자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인복은 대부분 친구들이었지만, 스쳐 지나간 연인들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사유로 이별하여도, 그 이후 행복을 빌어줄 만큼 정도는 될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그냥 그때 각자가 미숙한 만큼, 그저 그런 있을 수 있는 상처들을 주고받고 헤어졌다. 슬픔은 있더라도, 사랑의 상흔이 나를 완전히 망가지게 하는 그런 일도, 상대를 망가지게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재수가 좋았다.


힘든 날이면, 내 인생의 행운에 대해서 곰곰이 곱씹어본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든, 혹은 아직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든 상관없다. 한 때 그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준 사람들의 이름들이 떠오른다. 그 순간이 그렇게 오래 유지되지 않더라도, 그때 주고받았던 마음과 따뜻한 눈빛들이 진심일 것이라고 믿는다. 술자리에서 들은 좋은 말들은 모두 취중진담으로, 나쁜 말들은 모두 술김에 실수라고 해석한다.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 몇몇 인연은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상극이었을 거라고 가볍게 넘긴다. 당시에는 눈치채지도 못했지만, 내가 힘들어 보이거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면 친구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나를 밖으로 불러내곤 했다. 고민상담이랍시고 전화하여 시답잖은 이야기를 늘어놓던 사람들도 있었다.


인간관계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삶의 어떤 시기에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얼굴들이 있었다. 그게 나를 지금까지 살게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4부 「외로워도 함께」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은 제가 처음 제 마음을 타인에게 털어놓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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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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