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건 아니야, 사는 게 귀찮은 거지.

굳이 살아가기

by 얼떨결정

가끔 하게 되는 심리 검사지에서 최근 2주간 죽고 싶었던 적이 있냐고 물으면, 당황스러웠다. 죽고 싶었던 적은 없다. 그러나 매일 매 순간 살고 싶지가 않았다. 죽고 싶다는 말과 살기 싫다는 말은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말이다. 오랜 기간 내가 바란 것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어디서 뛰어내린다거나, 농약을 먹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저 잠들었다가 깨지 않기를 바랐다. 전쟁이 나고 폭탄이 바로 내 앞에 떨어지길 바랐다. 그래서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내가 산산조각 나기를. 조금 더 현실감 있게 양보하면, 길에서 차 사고로 내 몸이 붕 떴다는 걸 인식할 틈도 없이 즉사하기를 바랐다.


사는 건 번거롭고 귀찮았다. 그러나 죽는 것 역시 귀찮았다. 죽는 것과 사는 것 중 무엇이 나은 지를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냥 삶을 살아가는 걸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죽고 싶다 대신에 사는 건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결국 죽기에는 너무 무기력했기에 나는 계속 살아가게 되었다. 어떻게 죽을지 생각할 힘조차 없어서 계속 살아온 것이다. 사는 건 지겨웠지만, 나는 어쨌든 살아있었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이뤄내는 것 역시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졌다. 하고는 싶지만, 굳이 노력하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 일들 뿐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나머지 모든 걸 열심히 했다. 세상에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삶의 과제들을 열심히 하면서 살았다.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겼지만, 달리 다른 할 일도 없고, 죽을 것도 아니기에 그냥 해야 한다고 하는 것들을 했다.


종종 누군가가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해?” 모른다. 그게 열심히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더 열심히 사는 사람도 널렸다. 그렇게 남들이 보기엔 열심히이고, 내가 보기엔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닌, 죽지 않으니 살아지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종종 친구나 애인과 농담을 했다. “의지가 생긴 우울증 환자는 자살을 할 게 틀림없어. 그러니 우리는 그냥 무기력한 상태로 가만히 있자. 의지를 너무 많이 만들진 말자.” 이런 이상한 소리를 하며 우리는 웃고 떠들었다. 그 웃음이 잔잔한 힘으로 우리를 이 생에 붙들어주었다.


가끔 짙은 밤에는 죽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생기기도 했다. 강렬했다. 그러나 그 의지 비슷한 것에 속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내가 강렬히 원하는 게 있을 리가 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움직이는 건 너무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에, 혹시나 실패하면 병원 신세를 지는 건 더더욱 번거로운 일이므로, 그런 위험부담을 떠안을 순 없었다. 어떻게 해야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죽을지 생각하는 것도 너무 귀찮다. 결국 굳이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굳이 죽는 게 귀찮아서 그냥 살아온 셈이다. 그냥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하는 것들을 충실히 하며 살았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갔다. 시간이 가면서 죽을 생각을 하면,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생겼다. 죽니 사니 하는 농담에도 진담에도 특별히 심각해지지 않고 그저 같이 웃던 사람들.


내가 죽으면 남겨진 사람들이 겪게 될 감정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가 내게 알려주고 죽었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죽고 없는데 무슨 상관이람? 가끔은 지나치게 상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거였다면 모두와 이렇게 가깝기 전에 죽었어야지. 서로를 그렇게 위로해 주고, 토닥여주더니 이제 와서? 남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라는 말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줄이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살기 귀찮다는 생각에는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원래 사는 건 귀찮은 일이니까, 그냥 존재한 채로 하루를 대충 넘겨 보내는 것이 누군가를 이 세상에 남겨두고 먼저 죽을지 말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보다 쉬웠다.


무언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원하는, 조금은 덜 수동적인 사람이 되길 기다린다. 그게 죽음이 아닌 다른 무언가일 거라고 대충 믿는다. 진지하게 찾으려 하면 심각해지고 머리가 아파지니까 적당히만 생각하고 달달한 걸 먹는다. 그러다 보니 어영부영 계속 살게 되었다. 그렇게 살았더니 시간이 흘러 매년 아주 조금씩 더 밝아진 글을 쓰게 되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굳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2」 고집을 부려 구태여.

평생 내게 '굳이'는 '고집을 부려 구태여'라는 뜻이었다. 굳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 굳이 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 그런데 뜻을 찾아보니, 막상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라는 뜻이 있다. 쓰이지도 않는 것 같은데, 아직 뜻으로는 남아 있었다. 구태여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귀찮아서 살아왔다. 단단한 마음 같은 건 없었다. 이제는 '굳이'의 다른 뜻을 붙잡아 본다. 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오늘이 3부 「나로부터 살아남기」의 마지막 편입니다.


다음은 4부 「외로워도 함께」를 시작합니다. 조금 더 편하고 행복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으니, 함께 기다려주세요.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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