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기 위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므로

나랑 같은 상황을 너도 겪어보든가

by 얼떨결정

중학교 3학년 겨울, 엄마가 자살했다. 아빠가 말했다.


"그런 건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누군가 직접적으로 엄마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빠가 말한 저 문장에서 '그런 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모님 말을 엄청 잘 듣거나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 당시 친하던 반 친구에게 슬쩍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치 그런 일이 있었긴 했다는 식의 가벼운 어조였다. 친구는 당황했지만 나름대로 위로해주려고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다른 학교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나도 친구도 서로에게 가벼운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 친구도 우리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공기의 무게를 느꼈던 것 같다. 그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도 몰랐기에 내 입은 쉽게 열렸다. 친구는 위로했다. 그러나 그 이후 문자 한 통도 보낼 수 없었다. 친구로부터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스스로도 그 첫 번째 이야기한 친구에게 다시 연락하는 게 왠지 모르게 어려웠기에, 친구가 연락 오지 않는 것 역시 섭섭하진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고등학교 때도 몇몇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세네 명 정도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보다 더 많이 울었다. 나를 꼭 안아주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엉엉 울면서 엄마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남자친구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날의 공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대학 기숙사 복도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남자친구도 거기 쭈그리고 앉아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회색의 복도 계단에서 "너무 내가 세상에 혼자 남겨져 있는 것 같아. 계속 영원히 내가 혼자 인 것 같아."라며 소리 내 울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그때가 처음으로 내가 내 감정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한 때였던 것 같다. 위로를 받고, 또 함께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당연하게도 다른 대학 신입생 커플들이 헤어질 때 즈음 우리도 헤어졌다.


남자친구와의 이별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게 무서워졌다. 힘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나의 친구 중 유일하게 우리 엄마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친구가 나를 한심해했다. "네가 고작 남자 때문에 그러고 있다는 게 한심해." 나는 친구에게 두고 보라고, 네가 다음에 처음 이별을 하게 되면 날 이해하게 될 거고, 반드시 이 말을 너한테 그대로 돌려줄 거라고 하며 화를 냈다. 몇 년 뒤 친구는 첫 이별 후 내게 울면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헤어졌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내게 그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며 울었다. 괜찮다고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때 들은 말을 다시 돌려준 뒤에야 친구를 위로해 주었다.


첫 이별 이후, 친한 사람이 아니라 사실상 모두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약간의 친분만 있어도 계속 말했다. 만나는 연인들, 과 동기, 동아리 선후배, 아르바이트하다 만나게 된 친구들, 심지어 대학 교수님도 그 대상이었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나 그날 처음 본 사람에게도 쉽게 말했다. 우는 날은 많지 않았다. 손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는 누구에게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에 나갔을 때, 그 모임을 운영하는 선생님은 조금 당황하셨다. 그 모임에서 나처럼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말하고 다니는 것들이 타인들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고 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다른 곳에 말할 수 없어 유가족 모임을 나왔다. 나는 모든 곳에 말할 수 있었으므로 자조모임을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20대 초중반에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던 시기에는 잘 울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긴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고, 인생 사는 거 힘들다며 맥주를 마시며 웃었다. 듣는 사람들은 나 대신 울어주거나, 아니면 나랑 같이 웃어주었다.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을 일상에서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애인이 자살 유가족이거나, 친구가 자살했거나 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리고 부모가 살아 있기 때문에 고통이 계속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울지 않고 웃었다. 깔깔거리며 함께 부모 욕을 했다. 고등학교 때 나를 집에 초대해 함께 치킨을 먹으며 부모를 욕했던 그 친구도 여전히 함께였다. 이들이 내게 완벽히 이해되지 않아도 서로를 위로해 주고 아픔을 돌봐줄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아주 가끔, 드물게 화나는 일도 있었다. 대체로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났다. 내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여길 만한 사이였다. 그 시기 나는 누군가 연락이 안 되면 부정적인 상상을 하곤 했다. 사고가 났다거나 어디서 죽어있을 거라는 불안이었다. 가까운 누군가가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건 너무 비이성적이라고 했다. 확률이 낮다고. 낮은 확률의 일들이 내게 일어나면 100%라고 반박했다. 상대방은 그래도 너무 극단적이라고 했다. 내 마음이 외쳤다. '너도 같은 일을 당해보든가. 그러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보자.' 그러나 이번에는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차마 말로 할 수는 없었다. 자취방에서 혼자 가만히 일부러 책상 밑에 웅크리고 누웠다. 몸을 구겨 넣으며 내 삶뿐만 아니라 인성도 구겨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가 미워졌다.


급하게 내 마음을 취소했다. 나를 덜 미워하기 위해 간절하게 기도했다.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그런 일이 없게 해 주세요. 내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이 평생 깨닫는 일이 없게 해 주세요.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되니, 내가 계속 외로워도 되니까, 사람들이 이 일을 겪는 게 뭔지 모르게 해 주세요. 그 누구도 스스로 죽지 않게 해 주세요.'


이해받고 싶어서 비슷한 일을 처한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을 이겨내고, 혼자 외로움을 버틸 준비가 되었는가? 외로워도 괜찮다고 다짐하자 스스로가 아주 조금 대견해졌다. 그 뒤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다. 취미활동을 하다 알게 된 사람들, 때로는 직장 동료도 있었다. 20대 초중반의 친구들이 알려준 것처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위안이 되는 사람들을 계속 만났다. 건네는 눈길에서 고통을 함께 해주고 싶어 하는 다정한 마음들을 읽어냈다. 계속 영원히 혼자 남겨진 것 같다던 내 옆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들 내게 더 이상 외로울 필요 없다고 알려주었다.




지난주에는 개인 사정으로 연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전체 목차의 2/3 지점을 조금 넘겼는데요, 앞으로 더 성실히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4부 「외로워도 함께」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은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21화나의 모든 행운은 인복에 사용된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