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이 싫었다.
사는 게 나쁘지 않았다. 공부한 만큼 성적은 나왔고, 대학도 나쁘지 않았다. 연애도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도 하고. N포세대니 뭐니 말은 많지만, 내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도 없었다. 취미생활도 간간히 즐겼다. 좋아하진 않았지만 운동도 했다. 월급도 나쁘지 않았다. 큰 사치를 부리진 않았지만 나를 위한 작은 소비도 했다. 겉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꽤 자주 나 자신이 싫었다.
늘 그런 건 아니었다. 낮의 스스로를 꽤 좋아했다. 열심히 살고, 잘하는 나. 그러나 밤의 나는 스스로를 견디지를 못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피곤한 나. 20대 초반만 해도 서점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느니, 어디에 미쳐서 성공하라느니 하는 책들로 넘쳐났다. 곧이어 이대로도 괜찮다,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식의 힐링 에세이가 유행했다. 전자도 꽤나 피곤했지만, 후자는 끔찍한 기분이었다.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뭐가 그렇게 괜찮다는 거지?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자기 연민 같은 거창한 이름으로 쏟아지자 나는 길을 잃었다.
어려운 건 나도 내가 왜 싫은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내 주관적으로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객관적으로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내 이상이 너무 높은가? 이상이 높은 것치고는 삶에서 그다지 바라는 게 없었다. 아니면 내가 삶에서 바라는 게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걸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바라는 이상향이 없는데,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지? 깊은 자기혐오로 스스로를 한심해하고, 험한 말을 자기 자신에게 쏟아내는 것과는 약간 달랐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 채, 적어도 지금이 내가 바라는 나는 아니라는 감각만 확실한 상태. 그게 내가 겪는 감정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지냈지만, 내가 눈에 띄게 남과는 다른 것들이 있었다. 집중하면 밥 안 먹기. 필요하면 밤새기. 일이 바쁘면 하루에 한 끼만 적당히 때우곤 했다. 필요하면 잠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대신 주말에 죽은 듯이 잠만 잤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먹을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게 생의 의지가 없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하셨다.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들었다. 나를 잘 돌보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 나를 사랑하는 건 또 어떻게 하는 거고? 검색을 아무리 하고 수많은 답변들을 읽어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무언가를 하긴 해야 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무작정 따라 해봤다. 3일도 가지 않았다. 영양제는 무슨 밥을 챙겨 먹는 것은 여전히 귀찮고 번거로웠으며, 내게 오늘도 대견했다 같은 말을 해주는 건 어려웠다. 상담을 아무리 받아도 이건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히 잘 지내는데, 속은 자신을 미워하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책에서 떠드는 자기 자비라든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같은 것을 억지로 따라 해보았지만, 그다지 무언가 달라진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걸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미워하며 밤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가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세상이 싫어서 스스로 죽었을까, 아니면 자기 자신이 싫어서 죽었을까. 나는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며 사는 게 번거롭고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싫었다. 상담선생님은 안 좋아지는 나의 상태를 보더니 정신과에 가보라고 권유하셨다. 10년 전에도 들었던 권유인데, 그때는 가지 않았다. 이번에도 망설여졌다. 진짜 가야 하나? 이번에 가지 않으면 10년 뒤에 또 이런 권유를 받게 되겠지? 그렇게 우울증 약이 내 손에 쥐어졌다.
약을 먹은 지 3개월이 지났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은 행동을 한다. 귀찮지만 무언가 챙겨 먹으려 애쓰고, 집중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밤을 새우고, 명상이랍시고 내 숨에 집중하거나, 내게 칭찬하는 글을 혼자 작게 써본다. 이전에는 비참했던 것들이 이제는 뿌듯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기분이 엄청 좋아지진 않았으나, 예전만큼 나쁘지도 않았다. 인간이란 참 별 거 아닌 존재구나. 약 한 알의 힘은 크구나 하는 이상한 감정이 들지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는 않는다. 상담 선생님은 지금의 기분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약이 잘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도 다짐한다. 지금의 기분, 생각, 감각을 기억해야지. 그래서 계속 써먹어야지.
요즘은 스스로를 식물이라고 여긴다. 햇빛을 쐬고, 바람을 쐬고, 물을 주고, 영양소를 섭취하고, 그리고 그냥 가만히 있기. 식물은 원래 가만히 있으므로, 나도 그냥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 가끔 뭔가 하고 싶으면 그걸 잠시 한다. 그다음 잊지 않고 다시 산책이나 환기를 하고, 씻고, 밥을 먹는다. 환기라는 그 간단한 일을 체크리스트에 넣어놓고 매일 동그라미를 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체크리스트가 엑스표로 그어진 날도, 환기, 밥, 씻기가 동그라미 쳐진 날에는 최고의 식물인 나를 칭찬해 준다. 이제야 배워가는 중이다. 식물로 살아가는 법. 스스로를 돌보는 식물이라니 멋지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3부 「나로부터 살아남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은 제 오랜 친구인 무기력과 죽음에 대한 생각에 관해 써보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