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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떨결정 Dec 30. 2019

갑자기 죽어버리는 사람들

죽는 방식에 행운이 있다면

'갑자기 죽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이 쓰였다.


1. 내게 엄마의 죽음은 정말 느닷없는 것이었다. 수요일에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했고, 목요일 밤에 사랑한다고 문자를 주고받았고, 금요일에는 베란다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세상에서는 사라지고 없었다.


2. 엄마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아저씨의 무덤에 같이 가주지 않았다. 엄마와 나의 공간에서 함께 밥을 먹고, 내게 전자사전을 사주고, 치아 교정을 할 생각이 없냐고 묻고, 대학에 가면 카메라를 선물로 사주겠다던 사람이었다. 시트 온도 조절이 되고, 차 천장의 창이 열리는 승용차를 가진 아저씨였다. 그 사람 명함이 나의 어린 시절 일기장 어딘가에 붙어있다. 그 사람은 8년간 엄마 연인이란 이름으로 옆에 있다가, 여름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아파트 17층에서 사라졌다. 아무런 메모도 엄마에게는 남기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에게는 남겼길 바란다. 그 사람이 가족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돌이켜보면 그랬지 않을까 하고 추측한다.


3. 어린 시절에 조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조부모님에게 나는 아픈 손가락 같은 거였던 것 같다. 큰 아들의 이혼과 풍족하지 못한 경제적 상황과 외동딸.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날 엄마를 잃은 손녀. 옛날 분들 이어서인지 장남의 하나뿐인 딸이라, 혹은 직접 키워서 그런지 내게 마음을 많이 쓰셨다. 고3 수능을 앞둔 추석 즈음 장례식장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병실에 오래 계셨는데,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계신 병실을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다. 찾아가지 않은 게 아니라, 찾아가지 못했는데 할아버지가 병실에 계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공부에 집중하라고, 알리지 말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나. 부모보다 오래 함께 한 가족의 끝을 그렇게 맞이했다는 것은 상처가 되었다. 그걸 왜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오래 했다. 원하던 대학을 간 것도 아니었다.


4. 어렸기 때문에 9.11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보도되던 날을 기억한다. 기숙사에서 아침을 먹으며 뉴스를 보고, 중간고사 시험기간이었기에 하루 종일 휴대폰을 보지도 않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야 다시 뉴스를 보았다. 나는 지겹다는 인터넷 댓글을 보면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 누군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관련 조사에 참여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냉큼 전화받는 자리라도 좋으니까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원래 있던 다른 계획들은 뒤로 미루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내게 기회는 오지 않았고, 나는 연구나 학술과는 관련 없는 길을 택했다. 할아버지가 가습기를 자주 켜셨던 게 기억이 난다.


6. 하청이 늘어나면 산재 사망자 수가 증가한다.


7. 나는 대학 시절 내내 할머니에게 매일 전화를 했다. 2019년이 되고 나서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셨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셨다. 오늘 통화에서는 할머니께서 당신께서 당신은 나랑 상관이 없냐고 물으셨다. 연락이 없고 찾아가지 않음에 대한 서운함의 표현이었다. 이제 줄 돈이 없다는 말씀도 하셨다. 나는 티 내지 않고 울었다. 올해 3,4월 즈음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쩌냐고 무섭다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새해에는 더 자주 들려야겠다. 그러나 병원에 들리는 시간은 너무 짧다. 길어야 30분에서 1시간 남짓이다. 게다가 나는 병원이 싫다.


8. 언제였더라, 교복을 입던 때였던 것만 기억난다. 중학교 2학년 여름에서 중3 여름 사이 어느 날이겠지. 그 시기가 엄마와 아저씨가 둘 다 살아 있고, 나와 연락을 하던 때다. 엄마가 병원 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넘어졌고, 머리를 다쳤고,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없어서 입원실로 이동을 시키지 않았다. 이 사실을 내게 알려주며 아저씨가 화를 냈다. 나는 새벽에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다. 보호자가 없다는 건 뭘까. 병원 냄새, 무력하게 누워있는 인간, 바쁜 사람들.


9. 아프지 않고 죽는다는 건 행운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픈 사람만이,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 사람만이 대체로 죽음을 예상하고, 남은 날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마지막 말을 나눌 수 있는 죽음이란 건 얼마만큼의 축복일까.


10. 가족이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다지 행운이거나 축복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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