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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떨결정 Jan 01. 2020

연말이네 또 살아남았구나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면 지난 1년을 돌이켜본다. 어릴 때는 그림일기를 썼고, 초등학교 때는 숙제로 일기를 썼고, 중학교 때는 다이어리 꾸미기로, 그 이후는 스케줄러 겸 일기장을 늘 써왔다. 매년 쌓이는 글들은 놀랍게도 비슷하다. 힘들었고, 나는 왜 이럴까에 대한 짧은 한탄과 내일은 더 잘해야지하는 다짐의 글들.



 오늘은 저녁을 약속한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가 20 뒤에 다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7시 01분 전화를 했고, 18초간 통화를 했다. 7시 07분까지는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 지에 대하여 카톡을 했는데, 7시 10분 카톡에는 답변이 없었다. 7시 19분에 내가 건 전화는 받지 않았다. 7시 36분에 카톡 답변이 왔다. 그러니까 이건 19분부터 30분까지 느낀 내 기분이다.


 급하게 내려오다가 넘어졌는데, 심하게 다친 건 아닐까? 아니면 갑자기 아파서 119를 부른 건 아닐까? 갑자기 휴대폰을 들 수 없을 만큼 아픈데 병원에 연락해 줄 사람이 없는 건 아닐까? 길가다 누군가와 시비가 붙은 건 아닐까? 시비가 붙었는데 상대방이 폭력적인 사람이어서 맞거나 칼에 찔린 건 아닐까? 아니면 차 사고가 난 건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이어졌다.


 따뜻한 밀크티를 사서 마시면서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담배를 폈다.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했다. 빨리 그 사람 집에 들러서 혹시나 모를 전화해주어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담배를 피우는 2,3분 대신 최대한 빨리 집에 들러봐야 하는 건 아닐까?


7시 01분에 18초간 통화를 했다.

7시 07분까지 카톡을 주고받았다.

7시 10분부터 답변이 없었다.

7시 19분에는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7시 30분에 다시 전화를 했다. 9초간 통화를 하고 끊었다. 나는 마음 편히 담배 몇 개비를 더 폈다.


7시 32분에는 마음이 진정이 되었고, 혼자 쓰는 카톡방에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라고 연달아 두 번을 입력했다.


7시 36분에는 지난 카톡에 대한 답변 카톡이 왔다. 나는 담배를 좀 더 피고, 만나기로 한 상대방을 만나고, 저녁을 먹고 집에 왔다.


9시 31분, ‘연말이네  살아남았구나’라는 카톡을 내게 스스로 보냈다.



 언제였더라, 어릴 때는 누군가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면 위와 같은 방식으로 줄곧 불안해했다. 몇 년 만에 저런 불안을 다시 느끼는 것인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저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에 대해서 누군가는 이해했고, 이해했던 사람들은 상황이 달라지거나 자신의 감정이 달라지거나 화가 나면 이해를 하기를 멈추었다. 나는 가끔 우리가 오늘 각자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겨 다시는 못 보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너무 극단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확률적으로 희박한 일이라고. 나는 어떤 확률이든 내게 발생하면 100%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만약에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아주 가까운 누군가를 갑자기 못 보게 되었다는 뜻일 테니까. 내가 원하는 방식의 이해와 공감을 위해서 타인에게 그런 일이 있길 바랄 필요까지는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이제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무언가를 다시 하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연락 없음이 죽음이나 사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머리로 알면서도 불안해하던 시간은 이제는 옛날 일이다. 오늘은 문득 갑자기 찾아왔다. 이럴 때는 몇 가지 생각이 드는 데, 우선 아직도 이러는 나에 대한 짜증스러움이 잠깐 스쳐간다. 그러고 나면 그 일이 얼마나 일어나지 않으면 좋은 일이었는지 깨닫고 탓할 만한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이게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또 이런 기분을 느낄 일이 있을지 가늠해 본다. 이번과 똑같은 이미 지난 사건으로 다시 이 기분을 느낄지 혹은 또 다른 사건으로 이런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될지를 계산해 본다. 대체로 이런 류의 계산은 무의미하기에, 종교는 없지만 대충 있다고 치고 내가 영화 주인공은 아니니 인생에 이런 일은 다시 생기진 않지 않을까라며 신성모독 대신에 신의 공평함을 믿기로 한다. 그런 다음에는 아 이미 지난 일이구나 하고 안도한다.



Sometimes there is no next time. No time outs, no second chances. Somtimes it’s now or never. - Alan Bennett


7년 정도 내 다이어리에 매년 적혀 온 글이다. 새해 다이어리에도 적혀 있겠지. 비슷한 류의 글들이 더 있지만 그건 또 다음에.



브로콜리 너마저 - 행복

지난 일들을 기억하나요
애틋하기까지 한가요
나는 잘 잊어버리거든요
행복해지려구요


https://www.youtube.com/watch?v=ko2P-fogyrA&app=desk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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