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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떨결정 Jul 21. 2020

내가 가진 문제 중 가장 해결하기 쉬운 것

"내가 가진 모든 문제 중에 돈이 제일 쉬운데, 왜 이게 제일 어렵게 느껴질까?"


"그래도 정말 그게 문제였으면 진작 취업했겠지."




나는 돈이 없지만 마치 돈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처럼 지냈다. 아껴 쓰는 대신 늘 더 버는 걸 택했다.


동시에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활용하면서 지냈다. 등록금 장학금을 받고, 기숙사 장학금을 받고, 정부에서 하는 대학생 LH 전세 보증금 지원 제도로 살았다. 그리고 계약 기간이 끝나고 방을 빼야 했을 때 돈이 없었다. 월세 보증금이야 어떻게 하면 모을 수 있을 텐데, 월세를 낼 자신이 없었다. 전세를 구할 돈은 없었고 신용도 없었다.


대학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충당했으니 분명 집에는 목돈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장학금은 0원이냐 학자금 대출이냐를 가르는 중요한 것이었다. 출발을 빚으로 하느냐 0에서 하느냐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것.


전세 계약이 끝나갈 때 즈음 친구는 흔쾌히 본인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했다. 돈을 아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고, 향후 2년은 그렇게 지낼 수 있었다.


아빠는 돈을 구해보겠다더니 친구랑 같이 살게 됐다고 하니 잘됐다고 말했다.




친구네 집에서 자면서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친구는 야근이 많아 내가 잠들기 전에 들어오는 날이 적었다. 2년. 그 사이에 나는 유학을 나가게 되는 걸까? 유학을 나가면 학교에서 받는 장학금과 조교로 일하는 돈으로 방을 구해서 살게 되는 걸까? 한국은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올 수 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의 벽 같은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나보다 약 두배쯤 더 산 어른이 내 손을 잡고 진지하게 조언했다.


"그렇게 불안해서 어떻게 해. 변두리에 작은 빌라라도 서른 전에 하나 마련하고 유학 나가. 서른 전에만 나가면 되지. 공부 계속 해. 잘할 거야. 근데 그래도 작은 공간 하나라도 마련해놓고 가."


작은 빌라라도 서울 변두리에 구하려면 얼마가 있어야 하는 거지? 내 머릿속에는 온갖 통계 자료가 있었지만 부동산 실거래와 관련된 자료는 없었다.


다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서울에 방 한 칸을 매매하는 것보다 배낭여행으로 세계여행하는 비용이 덜 든다.




경사가 높은 친구네 집을 걸어 올라가면서 짜증이 솟구쳤다.


'최저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해도 월세를 낼 수 있잖아? 근데 국내 사회과학 대학원생은 아니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이중노동시장, 파편화된 노동, 긱 경제의 노동, 플랫폼 이코노미의 고용보험 같은 것을 공부 하지만 난 월세를 낼 수 없다는 자각. 그러니까 남들의 고용보험을 걱정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 당사자라는 자각. 청년 주거난, 뭐 불안정한 고용, 늘어나는 계약직 자리 뭐 그런 것들의 당사자.


내 미래에 대한 불안. B플랜이라곤 없다는 자각. 지금은 사기업에 취업할 수 있지만, 2년 뒤에는 나이가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앞을 가로막을 거라는 두려움. 이 상태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걸까 하는 고민들. 정신적으로 취약한 게 느껴졌다.


석사 진학 이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해도 괜찮아, 시간 강사로 평생 살아도 괜찮아' 했지만 그건 내가 잘 곳이 있을 때 이야기였던 거다.




사실 일을 하던 중이었다. 2년까지 연장이 가능한 연구원 비슷한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퇴근도 늘 정시에 하는, 업무도 쉬운 자리였다. 일하고 돈 벌면서 유학 준비해야지 했던 자리. 그런데 숨이 막혔다. 일이 특별히 어렵지도, 직장 내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정신적으로 점점 내몰리는 게 느껴졌다.


내 머릿속에서는 계약직의 직업 경로에 대한 너무 많은 통계자료가 있었고, 그걸 모른 척하기에는 그 자료들을 너무 여러 번 들여다보았다.


갑자기 사기업 취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빠 나 취업하려고"

"갑자기 왜?"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잘 생각했어. 말은 안 했지만 얘가 앞으로 불안해서,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했지. 너야 잘하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짜증이 밀려왔다. 그걸 미리 말했어야지. 내가 대학 졸업하고 갈 수 있는 기업과 대학원 졸업하고 갈 수 있는 기업은 전혀 다른데.


대학원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받으려고 아등바등해서 만들었던 학부 학점이 그제야 아쉬워졌다. 진작 취직하는 데 쓸 걸. 이제는 의미가 없는 시기가 되어 있었다.


앞서서 취업 시장을 뚫고 지나간 친구들은 평균적으로 원하는 직장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 합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내게 말해주었다. 자신들이 모았던 정보, 본인이 쓴 혹은 주변에서 전달받았던 자기소개서 및 준비 자료들을 전달해주었다. 천천히 지금부터 준비해서 불안해하지 말고 첫 단추를 잘 끼우라고.




일하던 곳에서도 천천히 준비하라고 했다. 자리가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 원하는 곳에 붙을 때까지 좀 천천히 준비해서 가라고. 그런데 나는 막상 당장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그대로 주저앉아버릴 것 같았다. 유학이고 공부고 뭐고.


정확히 말하면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서 GRE 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연구 보조원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학원비를 충당하고 싶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내가 내 짐을 두고 쉴 수 있는 방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고 싶었다.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고 싶었다. 아니다. 돈을 벌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구하지 않아도 내가 몸을 눕힐 공간이 있기를 바랐다. 부모가 원룸 보증금이나 전세 보증금을 주길 바랐다.


내가 연봉에 신경 쓰자 주변에서 물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의외네."

"아니,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게 아냐. 돈이 그냥 많이 있기를 바라는 거지."


재미있던 논문도 책도 통계 자료도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다. 미래의 커리어를 계산하면서 사회과학 분야가 아닌 곳으로 가고 싶어 졌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던 것들은 정부에서 지원하던 전세 계약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변했다. 혹은 기업에 갈 수 있는 나이의 마지노선 즈음이 다가오자 갑자기 변했다.




나를 흔쾌히 자신의 집에 살게 해 준 친구에게 종종 한탄을 했다.


"내가 가진 모든 문제 중에 돈이 제일 쉬운데, 왜 이게 제일 어렵게 느껴질까?"


가족 간의 용서,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 트라우마, 불안함. 애정 관계의 문제. 나 자신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 오락가락하는 기분. 무기력함. 가끔씩 우울로 침전하는 것. 누군가를 믿는 것. 미래가 계속 유지될 거라고 믿는 것. 안정적인 관계에서 안정감을 만끽하는 것. 사회과학 공부를 계속하는 것. 유학을 가는 것. 학문으로 어딘가에서 자리 잡는 것. 이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 맞다고 확신하는 것.


나의 감정, 신념, 욕망과 얽힌 그 모든 것에 비하면 돈은 너무 가볍고 쉬운 문제였다. 그러니까 다른 것들과 달리 해결 방법이 가장 명확한 것.


분명 돈 문제가 제일 쉬워 보이는데 그게 해결이 안 된다는 게 분해서 가끔 울었다. 그러고 나면 운 게 속상해서 더 서글펐다.




"그래도 정말 그게 문제였으면 진작 취업했겠지."


나를 흔쾌히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해 준 친구는 나랑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정부지원의 우선순위가 되는 경제적 조건. 대학원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받기 위해서 학점 관리를 하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생활을 보내고. 그러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않고 이것저것 사소한 취미를 즐기고, 동아리 생활을 하고, 연애를 하고, 술을 먹고. 가끔 자기 연민에 빠져 신세한탄을 하다가 가지고 있는 행운들에 멋쩍어하고.


우리는 스스로 조금 애쓰는 걸로 대학원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돈이 그렇게 없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여유가 없다는 건 내가 조금 애쓴다고 대학원 같은 걸 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취직을 하고 나서는 친구들 또는 애인과 이런 대화를 하며 웃었다.


"너는 성공한 거지. 지방에서 올라와서 서울에 자리 잡았는데."

"집은 없잖아."

"그건 서울에서 자란 사람도 없는 거잖아."


"결혼시장 혹은 인적자원 시장에서 몇 퍼센트일까?"

"너 자체로 보면 상위 20%는 넘겠지. 10%? 5%? 글쎄? 우수하지. 근데 너무 가진 게 없어."

"배경까지 합치면 어느 정도지?"

"글쎄, 하위 20%?"

"와, 정확하네. 대학에서 국가장학금 소득 분위 산정할 때 2 분위였는데."


아직도 해결 중인 문제다. 다만 이젠 그게 가장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는 걸 알 뿐. 그렇다고 다른 문제들이 더 쉬워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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