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유가족에게 위로가 되었던 말
엄마가 죽기 전 남겨두고 간 메모 뭉치를 발견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 사주 분석이 적힌 종이. 사주를 메모한 종이에는 엄마의 삶이 마흔 이후 더 나아진다고 적혀있었다. 엄마는 만 40세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나는 사주를 믿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이 불안할 때는 종종 사주나 타로카드를 본다.
사주 보는 아주머니는 고등학생인 내게 많이 울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는 건 네가 아니고 네 엄마야. 네가 너네 엄마 대신에 우는 거야."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이후로는 울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아빠는 장례식장에서 친구와 통화를 하고 온 내게 "그런 건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라고 했다. 자살은 금기시된다. 남은 유가족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눈물은 마음속에 계속 고여서 썩어갔다. 엄마가 죽고, 아무도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갑자기 증발해 버린 엄마. 남겨진 나. 나는 그래도 엄마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꽤 친했던 중고등학교 친구.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대학에 오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친구, 연인, 교환학생 시절 친해진 프랑스인 친구, 유가족 소모임, 어쩌다 길게 이야기하게 된 택시 아저씨.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신기한 일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스스로 세상을 저버린 누군가를 알고 있었다는 거다. 가까운 사이든 아니든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 그게 슬펐다. 프랑스인 친구는 내게 편지를 써주었다. 자신의 친구가 떠난 이야기와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었다. 필기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나를 위해 편지를 직접 소리 내어 읽어주던 목소리. 미국의 어느 작은 시골 학교 벤치에 앉아 우리는 우는 대신에 서로를 위로해 줄 수 있음에 웃었다.
자살유가족들은 대개 말하지 않는다. 침묵은 안전하기도 하고, 말을 차마 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지나치게 외로웠다. 그래서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가볍게 마치 그런 일이 있긴 했었다는 식으로 던졌다. 이야기할 때 나는 울지 않았고, 가끔 상대방이 울었다. 대부분은 모두가 웃고 있었다. '그런 불운한 일이 있었지. 근데 지금은 이렇게 우리가 웃고 떠들고 있구나.' 하며 웃었다.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나는 내 이야기를 하며 울 수 있게 되었다. 어린 내게 운다는 건 무너지는 일이었지만, 알고 보니 운다는 것은 아픔을 느끼고 해소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울 수 있게 된 만큼 강해진다는 뜻이었다. 울 수 있게 되자, 주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날의 기억들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황하는 사람들, 고생했고, 대단하다고 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본인이 겪은 주변인의 자살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 유가족 모임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으로 가족이 자살한 경우를 만나진 못했다. 다행히 유가족이 흔히 겪게 되는 책임을 묻는 눈초리와 부정적인 시선은 나를 비켜갔다. 나는 겨우 중학교 3학년이었다. 사람들은 그 나이에 책임은 없다고 쉽게 말해줬다. 그래도 누군가와는 말을 한 뒤에 조금 멀어졌다. 내가 아무리 가볍게 던져도 그 주제는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관계에 틈을 만들기도 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마음이 너무 아팠겠다.' 같은 말들은 사실 내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신 그냥 그때 같이 있어준다는 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 엄마에 대해 누군가 같이 생각해 준다는 것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 말보다는 존재가 위로가 되던 시기지만, 내게 오래도록 힘이 되었던 말도 있었다.
"그 이전의 정상 상태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정상을 찾을 수 있다." 자살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며, 미국 자살유가족 페이스북 그룹에 내 사연을 올렸다. 부족한 영어에 대한 양해를 구하며 쓴 글에 따뜻한 댓글들이 달렸다. 그 일이 있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고통스럽다는 글을 올렸다. 누군가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지만, normal 상태를 찾을 수 있다'라고 댓글을 남겼다. 아마 같은 자살 유가족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댓글을 읽고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네가 뭘 알아? 뭘 알고 그런 말을 해?'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사연을 함께 길게 적어주었다.
지금의 상태가 abnormal(비정상)이 아닌 new normal(새로운 정상)이다.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normal을 찾아갈 수 있다. 그 말이 내게 16년이 지나도록 큰 힘이 되어주었다. 정말 가능한 건지는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무언가를 믿어야만 했다. 사실은 믿는 방법 말고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힘든 날들은 그 말을 붙들고 버텼다. 일기장에 여러 해에 걸쳐 몇 번이고 다시 옮겨 적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타인이 아니라 나의 존재도 위로가 된다는 걸. 지금이 아닐 뿐 찾을 수 있다. 내가 나와 함께 새로운 정상을 찾아가고 있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1부 「처음 겪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제가 주변에 말할 수 없던 제 속마음에 대해서 꺼내보려 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