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짜 꿈
상담 선생님이 무엇을 바라냐고 물었다. 삶에서든, 상담에서는 바라는 게 뭔지 생각해 보고 다음 회기에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상담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면 마음을 들킬 것 같아 테이블 구석을 바라보며 '잘 모르겠어요'하고 답했다. 사실 마음속에서 바로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너무 바보 같이 느껴져서 말하지 못했다.
"그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일어나지 않았었으면 좋겠어요. 극복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보다 더 형편없는 나여도 좋아요. 그냥 그 일만 없었으면 좋겠어요."
10년이 넘어서도 바라는 게 이런 거라는 게 내가 고장 나버린 증거 같았다. 이혼한 부모가 함께 한 집에 살기를 바라던 아이는 가능하지 않은 꿈을 여전히 간직한 어른이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다른 사람의 가족도 모두 죽는다. 별일 아니다.'라는 생각과 '하지만 모두가 스스로 죽는 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나를 번갈아 가며 찾아왔다.
어쩔 수 없이 삶에 닥친 불운을 견뎌야만 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냥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해야만 하는 사람들. 가볍게는 부모의 이혼이 있었고, 무겁게는 학대하는 부모, 갑자기 찾아온 불치병, 아직도 그때의 악몽을 꾸는 학교 폭력 피해자. 우리는 길게 서로의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그들도 나를 사랑했던 거 같다.
사람들은 다 각자의 전쟁 속에 산다. 내 이야기를 주변에 함으로써 타인이 겪은 극단적인 어려움도 들을 수 있었다. 순간의 위로를 건네고, 집착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으면서 응원해 주고, 그런 다음 각자의 삶을 잘 살았다. 우리는 서로 도와주려고 애쓰지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서로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을 그저 받아들이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네가 더 힘들겠다 하고 웃어주었다. 가끔은 진심으로 상대방이 더 힘들다고 생각했고, 가끔은 내가 더 힘들지만 그냥 위안 삼기 위해 그들의 고통을 가져다 썼다. 양심이 찔렸지만 그들도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쉽게 스스로를 용서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처받는 일도 있었다. 누군가 오래 잠겨있는 나를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화가 났다. '네가 겪었어도 그렇게 말할래?'라고 속에서 소리쳤지만, 금방 '아냐, 그래 이해 못 하는 게 나은 것 같아.'하고 생각했다. 아무도 이 고통을 모르고, 계속 외로워도 되니,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고, 사실 내가 한심한 사람이라도 괜찮으니까 아무도 스스로 죽지 않았으면. 그게 나의 진짜 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과거로 돌아가 삶을 바꾸는 웹툰이나 소설들이 유행했다. 나는 웹툰이나 소설을 즐겨 봤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지겹고, 외롭고, 서늘한 터널이었다. 늘 삶은 과거보다 현재가 나았다. 과거로 돌아가도 엄마를 살릴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은 잘 되지 않았다. 삶의 문제를 척척 해결하는 회귀한 주인공들을 보며 내 삶을 되돌아본다. 돌아갈 것인가? 늘 아니요를 택했다.
이제는 안다. 받아들이면 이 고통이 더 가벼워질 거라는 것. 그러니까 그 일이 없었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 일이 있었던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모든 게 더 좋아질 거다. 결국 엄마가 스스로 죽었고, 나는 남겨졌지만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 된다.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이 모든 게 해결될 거다. 그런데, 내가 진심으로 받아들였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이효리가 뉴스에 나와서 말했다. "유명하고 싶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고 싶지만 잊히긴 싫다." 그건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묻는 손석희 앵커에게 이효리는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답했다. 이효리가 좋았다. 나도 계속 꿈꾸고 싶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1부 「처음 겪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자살유가족이 끝내 답을 알 수 없는 질문, '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